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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박 Apr 28. 2024

'약수첩'이 시급하다

처방약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에 대하여

데일리팜 기사 <일본은 전자약수첩 활용해 복약지도하면 수가 지급> 2023. 07. 11.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의사 <돌 맞을 각오로 말하는 한국의료의 진짜문제> 유튜브, 언더스탠딩



일차진료의 중요성


정희원 교수가 말하는 한국의료의 문제점에 너무나 공감한다. 현재 의료대란은 선거용이라는 것 외에도 알맹이 없는 공허한 싸움인데 이유는 수가 조정이나 의대생 수를 늘리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수가 인상은 의료계 내의 부익부 빈익빈을 더 심화시키고 의대생 수를 늘려도 현재 예정된 수도권 병상수 증가분으로 흡수된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지방과 수도권의 의료격차만 더 커질 뿐이다. 


대안은? 정교수가 말하는 것을 거칠게 정리하자면 진찰료 인상이다. 사람값을 쳐줘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3차 진료 중심의 한국의료는 수많은 검사기계를 돌리고 사람은 1분 컷으로 진료한다. 수련을 거친 대부분의 의사들은 환자와 10분 정도 얘기를 하다 보면 상태 파악이 된다고 한다. 특히 노년으로 갈수록 진료를 보는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현 체계에서는 환자 얘기를 제대로 들어줄 시간이 없다. 삶의 질을 우선으로 하는 치료와 조정보다는 검사 결과에 따른 공격적 처방을 하게 된다. 


OECD 국가 중 한국이 가장 심각한 것은 1차 진료체계가 무너진 것이라고 한다. 싸고 좋은 의료질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 좋다고 그동안 말했던 것은 한국이 젊은 국가였기 때문이다. 고령화가 될수록 가까운 거리의 의사(가정의학과, 주치의)와 의논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처방약의 통합 관리가 필요하다. 이에 대한 준비는 한국이 전무하다. 일본, 대만, 중국, 인도에도 훨씬 떨어지는 미개국이다. 초고령사회로 한국이 진입한다고 연일 떠들어대는 언론은 같은 말만 도돌이표 하는 바보인형 같다. 노인혐오만 부추기고 있다.


1차 진료비 증가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고 했을 때 정교수는 같은 파이 내에서(건강보험료를 올리지 않을 경우) 불필요한 지출정리로 가능하다고 한다. 예컨대 별 도움이 안 되는 뇌영양제 처방이 많은데 가격도 매우 높다. 사실 불필요한 처방인데 이런 투약에 보험공단은 인심이 후하다. 현재 한국의 보건시스템은 예방이 아닌 치료 중심이고, 투약이 곧 치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빼는 것이 중요한 상황(예방)에서 더하기(불필요한 투약)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재정 낭비만 없어도 사람 보는 값을 제대로 쳐줄 수 있다는 얘기다.


약수첩을 만들어 달라!


나의 엄마처럼 중한 질병을 몇 개 갖고 있으면 처방받는 약의 수가 많아진다. 혈액암, 심방세동, 망막출혈 등. 최근 심장 문제로 폐부종과 다리부종으로 입원을 했었는데 퇴원 후 받은 약이 9가지이다. 그중에 포함된 이뇨제 때문에 수시로 병원을 찾아갔다. 몸무게가 급격하게 줄면서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 양을 조정하거나 종류를 바꾸거나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현재 엄마는 1,2,3차 병원에서 모두 진료를 받고 있다. 1차 의원은 수시로 가고(영양제 주사, 눈물약 등), 혈액암과 안센터는 3차 병원이고 심장질환은 2차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다. 


왜 진료받는 기관을 일원화하지 않느냐고? 한때 일원화했었다. 3차 병원인 강남성모로 모든 자료를 몰아줬다. 그런데 유지가 되지 않았다. 노인 질환은 자잘한 것도 많고 다급한 일도 수시로 발생한다. 고혈압은 없는 엄마지만 가끔 혈압이 180 이상이 될 때가 있다. 그러면 가까운 곳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다. 그곳이 2차 병원이다. 응급 상황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은 심장질환이다. 응급실이 근처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병원을 옮기거나 입원을 결정할 때 다른 병원에서 했던 검사결과와 처방전을 요구받은 경험은 다들 있을 것이다.     


강남성모병원의 한 의사가 내게 화를 낸 적이 있다. 엄마같이 심각한 중병을 갖고 있는 사람을 여러 군데 병원에서 진료받게 한다는 것이다. 환자 상태를 한눈에 파악할 데이터가 없다는 얘기인데, 이미 그 사람의 책상 위에는 내가 갖고 간 다른 병원의 검진기록과 처방전이 잔뜩 있었다. 그 자료들이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투였다. 그래서 강남성모로 자료를 일원화했었다. 그러나 노인질환은 그렇게 한 병원으로만 다닐 수가 없다. 빌어먹을!   


정말 비효율적인 시스템이다. 환자나 보호자가 검사기록물과 처방전을 직접 떼고 제출하는 방식말이다. 어차피 병력이나 투약 상태를 오픈하는 것을 이렇게까지 힘들게 해야 하는 것인지. 

일본에 전자약수첩이 있다고 한다. 대만에는 건강보험 의료정보 클라우드 시스템이 있다고 한다. 불필요한 의료자원 낭비를 줄이기 위해 도입한 시스템인데, 다양한 의료기관에 흩어져 있는 개인 의료 데이터(진료, 검사, 복약 이력)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누군가 노인성 질환을 통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면 그것은 1차 병원 의사이다. 수많은 복용약 중에서 서로 대항관계에 있는 약을 구별하고 시급한 약 외에는 투약을 줄이고 운동처방 등 생활처방을 해서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 3차 병원으로 달려가 각종 검사 끝에 수술을 해서 그 병은 고쳤지만 다시는 걸을 수 없는 상태가 되는 상황을 막는 것. 이 모든 것이 초고령 사회의 의료재정 낭비를 줄이기 위한 최선책이 맞다. 그것이 요원하다면(진짜 요원하다), 약수첩이라도 빨리 도입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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