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나?"
"그려, 니도 살아있네? 별일 없제? 얼굴 한번 볼까?
"니가 올래?내가 갈까?"
그런데 부엌일을 하다가 폰을 들여다보니 한 시간이 지났는데 답이 없다.
" 백수가 뭘 한다고 빨리빨리 답은 안하노?"
급한 성격의 내가 다시 폰을 누르려는 찰나에 답이 온다. 다음 주 월요일 본인이 온단다. 이제 운전은 겁나고 대구에서 내가 사는 곳까지 기차 타고 온단다. "알써, 모시러 갈게."
내게는 대학 오리엔테이션 할 때에 내 옆자리에 앉아 지금까지 수시로 만나는 친구, 늘 그 자리에서 있는 그녀가 있다. 고향이 경남인 그녀는 대구로 대학교를 왔다.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그래도 그녀보다는 대구 선배인 셈이었다. 대학 입학식 첫날부터 친구가 되어 우리는 붙어 다녔다. 둘 다 공부를 안 한 것인지 발령이 어려웠는지 경북에서 아주 오지인 곳으로 발령이 났다. 물론 서로 다른 군이었으나 인접한 아주 깊은 산골학교였다. 그녀와 나는 둘 다 그야말로 아주 깊은 산골벽지학교로 발령이 나서 물리적인 거리가 멀었지만 털털거리며 먼지 내며 달려가는 시골버스를 타고 내가 가거나 그녀가 오거나 하며 자주 만나고 그랬다.
세월이 흘러 이제 60대 중반에 들어서는 요즘, 생각해 보면 참 아름다운 시간이었던 것 같다. 살아오면서도 서로 다른 환경으로 바뀌었느나 우리 둘 사이의 마음은 늘 변함이 없다. 어쩌다 보니 아이 둘(딸, 아들 똑같은 나이)과, 남편(똑같은 직업군)들도 서로 비슷한 면이 있으나 우리는 그런 것은 그런 것대로 그냥 그런 것이다 생각하고 둘이 만나면 그냥 서로 편하고 스트레스가 풀렸다. 내가 대구에 가거나 그녀가 내가 사는 곳으로 오거나 시간적으로 멀리 있어도 늘 그 자리에 나를 기다리겠거니 한다.
이번에도 거의 넉 달만에 만난다. 그래도 우리는 이야깃거리가 수북하게 쌓였다. 빨리 다음 주 월요일이 왔으면 싶다. 나를 둘러싼 주변 지인은 거의 그녀를 안다. 그러나 나는 그녀와 나 사이에 공통점이 뭔지? 그래서 무엇으로 인하여 4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주욱 변함없이 만나면 좋고 안 만나도 별일 없이 잘 있겠지 하는 사이인지 모른다. 그녀와 나는 만나면 우리 둘만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다.
"그동안 뭐 하고 시간 보냈노? 어디 여행 갔다 왔노? 가니까 어떻더노? 요즘 너네집 반찬은 뭐 하노? 너의 요즘 관심사는 뭔데? 취미로 뭐 하면서 배우고 있노? " 등등 경상도 아지매 사투리가 방방 튀어나온다. 그러다 보면 시간은 금방 흘러서 남편 밥 챙긴다고 일어선다. 그리고는 또 연락할게 하고는 끝이다. 나는 그런 점이 좋다.
잠시 순간에 이야기가 멈추면 금방 "니 지금 무슨 생각했제?" 한다. "니 우째 알았는데?" "내가 니 머릿속에 들어가 있다 아이가?" 한다. 이것이 45년이라는 세월 속에서도 만나는 친구 사이가 아닌가 싶다. 가끔은 남편과 이야기하면 좁 답답한데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집으로 오면 속이 시원해진다. 벌써부터 그녀가 내가 사는 이곳으로 오면 그날 초복이던데 삼계탕? 그리고 저녁은 먹여서 보내야 하는데 바닷가 여기 회가 싱싱한데 그녀는 회를 안 좋아한다. 그냥 한식을 좋아하니까 예약하고 기차역까지 태우고 보내야겠지? 하는 계획을 세운다.
무엇이든지 그녀를 위해서라면 아깝지 않다. 유일하게 그녀는 내가 대구에 가면 꼭 그녀의 집으로 오라고해서 밥을 차려준다. 내가 누구에게서 차려진 밥상을 받아보겠는가? 생각만해도 가슴이 울컥해진다. 요즘 현관비밀 번호를 가르쳐줘도 믿을 수 있는 친구 하나쯤만 있어도 행복하다고 하지 않은가? 그냥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