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익어가는 것일까?)
나이가 있어서 혹시나 당뇨병으로 인한 시력저하인지를 먼저 검사하였다. 그리고 그 외 기타 등등 여러 가지를 점검하고는 백내장이라는 진단을 하시더니 아주 간단하다고 하시면서 나이 들어 노안이 오는 현상일 뿐이라며 걱정을 하지 마라고 하셨다. 나는 각종 검사하는 그 사이에 벌써 서울에 있는 두 아이에게 쪽지를 날렸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겁을 먹었는지 아니면 그동안 수술이라고는 한 적이 없던 남편인지라 걱정이 컸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바로 서울로 오라고 하였다. 나는 여기도 유명한 분이라고 걱정 말라고 하였다. 바로 이틀 뒤에 수술을 하기로 시간을 잡고 우리는 집으로 왔다. 남편은 69세이지만 여태껏 병원 신세를 져본 적이 없다. 수술하기까지 이틀이 남은 동안에 남편은 그만 입을 꾹 다물었다. 옆에서 보니 심각한 생각에 빠진 것 같았다. 밥맛도 없다고 하였다. 수술날 우리는 둘 다 아무런 말 없이 도착하여 기다리다 수술을 하는데 1시간쯤 걸렸다. 병실에서 좀 누워 수술 경과를 살피다가 수술 상태가 좋아서 하루 만에 바로 집으로 왔다. 물론 오른쪽 눈에는 볼록렌즈처럼 생긴 입체 안대를 하고서 말이다. 안약을 비롯하여 약봉지를 한 아름 안고 집에 도착하여서 나는 일부러 장난을 쳤지만 남편은 아무런 말없이 소파에 누워만 있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병원에 가서 상태를 점검하고 집에 와서 안약을 넣고 약을 복용하다 보니 정신없이 일주일이 지나갔다. 드디어 안대를 풀고 마지막 점검을 하는 날, 의사 선생님이 아주 깨끗하게 수술이 잘되었다고 하시고 이젠 일주일 뒤에나 병원으로 오라고 하셨다. 병원문을 나서던 남편이 수술한 오른쪽 눈에 비친 세상이 너무 밝다고 하면서 수술 안 한 왼쪽 눈이 오히려 갑자기 이상하다고 하였다.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다. 왼쪽눈하고 시력이 안 맞을 것이고 서서히 왼쪽 눈도 시력을 잃어 수술을 조만간 하여야 할 것이라고 말이다. 집에 와서 우리는 시간을 철저히 지키며 안약을 넣으면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거의 한 달간을 우리는 그렇게 지냈다. 나는 나대로 속으로 큰 병을 안고 사는 사람도 많은데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남편의 눈치를 보면서 심정을 건드리지 않았다. 복잡한 감정이 들것이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며칠 전 남편이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아니면 내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배낭을 메고 뒷산에 갔다 온다고 했다. 나는 반가웠다. 이제 서서히 움직여도 좋다고 하더라. 운동도 하라고 하더라면서 의사 선생님의 말씀인 것처럼 말했다. 친구들에게 본인의 수술 후의 모습 사진을 보내고 하더니 그동안 친구들도 말은 안 해서 몰랐지만 대부분 백내장 수술을 했다고 하면서 위로를 한 모양이다. 남편은 아하, 이제 서서히 나이 들어가면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증세가 하나씩 나타나는 모양이다 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아무런 탈없이 건강하게 지내준 남편이 고맙기만 하였었다. 나도 퇴직하고부터는 어깨를 비롯하여 온전신이 자주 통증을 느꼈지만 혼자 애써 참고 혼자 병원을 드나들다 보니 남편은 모르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나도 마음이 자꾸 불안해진다. 노인의 특징이 소심해지고 겁이 많아지고 자신감이 없어지고 세상에서 낙오자가 된 것 같고 등등이 있다는 것을 요양사 자격 대비 공부하면서 들었다. 다 맞는 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애써 모른 척할 뿐이다. 이제 서서히 하나, 둘 아픈 곳이 자꾸 나타날 것이리라. 받아들이고 이겨내야 할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세상사 순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