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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향 Apr 11. 2024

제주 [외돌개]를 보셨나요?

(제주올레 7코스)

   4월 10일 수요일 제주살이 10일 차, 오늘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우리는 지난주 제주에서 사전투표로 국민의 의무를 다했다. 새벽부터 TV가 난리가 났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오늘도 걸을 것인가? 쉴 것인가? 둘은 서로 마주 보고 피식 웃는다. 당연히 걸을 것임을 아는 의미의 웃음이다. 도시락이고 뭐고 치우고 그냥 걷다가 힘들면 오자고 했다. 그래도 통곡물빵 하나를 가방에 슬그머니 넣었다. 세월 참 빠르게 지나간다. 벌써 한 달의 1/3을 지났다. 7코스는 7-1코스가 하나 더 있다. 오늘은 정코스 7코스가 목표였다. 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서 월평이왜남목쉼터까지 총거리는 17킬로이며 6시간 예측했다. 좀 무리인가 싶었다. 오늘따라 걸으면서 수많은 생각이 몰려오고 몰려갔다.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걷는 우리를 향해 달려드는 파도처럼 말이다. 걷는 중간에 친정엄마의 휠체어를 밀어가며 설명하는 젊은 딸의 착한 모습을 보면서 나는 엄마에게 저렇게 못했다 싶었다. 우리보다 더 나이가 많으신 부부가 스틱에 의존하며 가다가 쉬다가 반복하며 서로 손잡아 주는 모습을 보았다. 옆에 걷고 있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우리 둘은 언제까지 이렇게 두 발에 의존하며 걷고 있을까? 싶었다. 펄펄 뛰는 젊은 수학여행단 학생들의 우렁찬 발걸음을 보면서 우리의 젊었던 시절은 상상도 못 하겠고 훗날 손주의 성장한 모습을 떠 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생각이 복잡해졌다. 눈으로 경치를 담고 귀로 소리를 담고 가슴에 나의 생각을 담아 가고 싶었던 제주살이 한 달 계획을 생각하다 문득 내가 지금 이 길을 왜 걷고 있는가? 싶었다. 정답은 살아있음을 확인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별로 말없이 묵묵히 걸으니 남편 역시 묵묵히 걷기만 할 뿐이었다. 수없이 많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어찌 여기 다 담겠는가? 내 마음에 조금 남아있는 것들 위주로 표현하다 보니 빠진 것들도 많으리라. 훗날 다시 이 글을 보면서 가감삭제를 하리라 생각해 본다. 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 차를 세웠다. 칠십리시공원길을 걷다가 삼봉산이라는 오름이 나왔다. 초입부터 급경사의 계단이었다. 헉헉 거리며 올랐다. 조금은 무리인가 싶은 오르막이었으나 쉬운 내리막이 있기에 우리는 또 걸었음을 안다. 오늘따라 유난히 바람이 거칠어서 모자가 날아갈 정도였다. 다시 오솔길을 지나 외돌개 전망대로 오르니 남자고등학생 단체의 무리로 인하여 꽉 찬 길이었으나 우리의 미래인 학생들을 보면서 남편과 둘이는 그냥 좋아서 모든 것을 양보했다. 평생을 교직에 있었던 우리이기에 끌렸던 것이리라. 바위하나가 아주 까칠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외롭게. 그래서 외돌개라 한다. 모진 풍파를 다 받으면서 허허롭게 서 있는 바위를 보면서 그래도  너는 이름하나는 부여받았구나 싶었다. 두머니물공원을 지나니 가족들이 많이 나와서 아이들과 놀고 있었다. 참 평화스러운 모습이었다. 수봉이라는 사람이 손수 만들었다는 오솔길이 나왔다. 아주 험한 해안길이자 아름다운 길이었다. 남을 위해 자기를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는 이렇게 누리면서 살고 있구나 싶었다. 동네 어귀마다 용천수가 많아서 빨래터나 여름에 시원하게 목욕을 할 수 있는 노천탕들이 많이 보여서 살펴보니 그야말로 물이 아주 깨끗하다 못해 투명했다. 공물을 지나 법환포구를 지났다. 대공사 중이었다. 너무 길고 긴 오늘의 여정이었다. 언덕배기에 예쁜 카페가 보였다. 둘은 말없이 바로 들어섰다. 멀리 보이는 바다가 진짜 미치도록 아름답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아주 편안한 의자에 앉아 한참을 쉬었더니 다시 힘이 났다. 올레요 7쉼터가 나왔다. 우리는 중간 인증 스탬프를 찍었다. 그리고는 더 이상 못 걷겠다 싶어서 남편에게 내일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 참 힘든 하루였다. 마음이 축 늘어졌다. 잡념을 버리고 앞만 보고 걷기로 작정을 했었는데, 무작정 시작한 올레걷기 도전이었는데 오늘따라 무슨 생각이 수없이 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또 올 수 있을까? 앞으로의 우리 둘이의 모습 상상까지 하면서 걷다 보니 몇 군데는 자세히 살펴보지 못하고 스치기도 했다. 마무리를 못한 찜찜한 마음으로 주차장에 도착하니 남편이 그랬다. 좀 아쉬우니 그냥 가지 말고 10여 년 전에 우리 아들, 딸과 함께 온 천지연폭포에 들리자고 했다. 주저 없이 핸들을 돌렸다. 그때 그 자리에서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아들, 딸 없이 둘만 사진을 찍은 우리는 여전히 쏟아지는 폭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내려왔다. 숲길은 더 풍성하게 우거졌지만 모습은 그때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내 카카오스토리에 저장된 그때 똑같은 장소에서의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세월이구나 싶었다. 종점까지 걷지 못하고 숙소에 오니 5시 40분쯤 되어 있었다. 알뜰하게 하려고 중간 지점에서는 샌드위치나 김밥을 먹고 아침, 저녁식사는 항상 숙소에서 해 먹고 다닌다. 다행히 우리 차를 가져와서 완전 뚜벅이보다 시간은 아낄 수 있다. 나이 70을 바라보면서 여기까지 건강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싶다. 오늘 하루도 건강하게 보낸 것임에 감사할 뿐이다. 우리 지역에 누가 국회의원에 당선될 것인가? 궁금해서 뉴스를 잠시 보다가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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