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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ve Jan 30. 2021

능력있는 여자들의 거침없는 행보

웹 소설 <여왕 쎄시아의 반바지>를 읽고

* 인용글은 모두 웹 소설 <여왕 쎄시아의 반바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남자들은 여인들에게 이중 잣대를 들이댔다.

 집안의 여인은 정숙하고 현명하며, 남의 눈에 거슬리는 짓을 하지 않아야 하지만 집 밖의 여인들은 상관없었다. 그건 오로지 남자들의 체면 때문이었다.

 유리는 화가 났다. 남자의 체면 때문에 질식한 여자가 이렇게 존재하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코르셋을 입었다.


 어릴 때, 나는 치마 입는 것을 정말 싫어했다. 분홍색도 정말 싫어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것을 좋아한다고 생각되는 게 싫었다.


 언제부터 그런 것을 의식하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초등학생이 되면서 그런 것을 신경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전에는 그저 부모님이 치마를 입으라고 해서 그냥 입었고, 분홍색 옷을 주길래 그런가 보다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런 나를 누군가가 ‘핑크 공주’라고 부를 때, 왜 그렇게 놀리는 것처럼 들렸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감정은 ‘모멸감’에 가까웠던 것 같았다.

 나는 그게 싫어서 바지를 고집하고, 색은 무조건 ‘파란색’을 골랐던 것 같다. 그 당시의 내가 생각하기에 그게 ‘여성’에서 멀어지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더는 나를 ‘핑크 공주’라고 부를 일이 없어졌다. 나는 당시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게 참 마음에 들었다.

 좀 더 컸을 때는 명확하게 내 성별이 무언가의 이유가 되는 것을 더욱 싫어했던 것 같다. 사실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던 로맨스 소설이나 순정만화를 남들 앞에서 질색한 것도 그 때문이었고, 친구들이 한 번 해보라고 했던 고데기(헤어 스트레이트너)도 손대본 적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악착같이 내 성별이 무언가의 이유가 되게 하지 않으려 해도 내 성별은 계속 나의 이유가 되었다. 내가 운동을 싫어하는 이유는 내가 여성이기 때문이었고, 내가 수학을 싫어하는 이유도 내가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덧붙여 내가 스트레스에 취약해 자주 아팠던 이유도 내가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아마 누군가는 누가 그런 식으로 말하나 싶겠지만, 나와 같은 성별은 절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나와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누군가는 내가 그저 할 줄 아는 것 없이 불만만 가득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런 나에게 공감해주는 사람도 분명 있다. 웹 소설 <여왕 쎄시아의 반바지>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그러한 인물들이었다.

 작품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주인공인 ‘유리’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계기로 자신의 전생을 자각한다. 유리의 전생은 의류학과를 졸업하여, 패턴사로 일하던 사람이었다. 전생의 기술을 자각했으니 유리는 그것을 이용해 돈을 많이 벌어 노후를 편히 지내려는 꿈을 꾼다. 그런 유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남장하고, 다른 지역에서 옷 만드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런 유리의 옷이 대륙을 통일한 여왕 ‘쎄시아’에게 가게 되고, 유리가 여왕을 만나 일하게 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것이다.

 나는 이 웹 소설을 기반으로 만든 웹툰 광고 영상을 통해 이 작품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영상에서 여왕 쎄시아가 ‘이 빌어먹을 옷부터 고치겠어.’ 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자마자 웹 소설을 결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대사만 봐도 작품의 내용이 매우 궁금했기 때문에 참을 수 없었던 탓이었다.


 이 웹 소설의 장르가 로맨스 판타지이긴 해도, 로맨스의 비중이 전부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신분제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에 관한 이야기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아마 로맨스만을 기대하고 보는 사람이라면 미묘한 기분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을 참작하더라도 이 작품은 보고 생각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에넌 또한 끊임없이 결혼해 좋은 사람을 만나 아이를 낳으라는 이야기에 시달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내에게 공작위를 양보하고 뒤로 물러서라는 소리를 하는 사람은 없다.


 ‘에넌’은 소설에서 남자 주인공이다. 유리가 여자인 줄 모르는 상태에서 유리라는 사람 자체만을 보고 사랑에 빠진 인물이기도 하다. 이후 유리가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되고, 유리도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지만 그런 에넌을 사랑하는 ‘아르시노에’라는 인물이 있었다. 에넌은 아르시노에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리러 그녀를 만나러 갔다가 그녀와 나이 많은 장관이 하는 대화를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된다. 장관은 그녀에게 ‘여인은 좋은 부군을 만나 자식을 낳고 가문을 번성시키는 것이 의무’라느니, ‘영지민들에게 아르시노에의 가치는 결혼뿐’이라는 식의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아르시노에는 자신의 가치가 그것뿐이라면 신랑감을 뽑는 대회를 열겠다고 하는 것으로 그 대화가 마무리된다. 그 자리를 빠져나가며 에넌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성별에 구애받는 걸 싫어했던 나도 결혼은 하고 싶어 했다. 아버지 같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좀 크고 나서는 결혼은 괜찮지만, 아이를 낳는 건 싫어졌다. 그러다가 더 크고 나서는 결혼도 별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연애나 하면서 혼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연애조차도 별로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이제 나이도 있는데 결혼할 상대를 찾아야 하지 않느냐는 소리를 들어도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

 지금도 사회에서 일하고 있는 미혼의 여성에게는 더 늦기 전에 좋은 사람을 만나라고 한다. 그리고 아이도 낳으라고 한다. 물론 미혼의 남성도 듣는 말이긴 하다. 그렇지만 결혼하고 출산한 뒤에 육아휴직을 쓰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고, 그것으로 경력 단절이 일어나는 것은 대체로 여성이다. 남성과 여성 중 누군가가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면 그것은 여성이 되기 마련이다. 그 여성이 남성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든, 돈을 많이 벌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 악물고 아이가 채 크기도 전에 금방 복직하면 ‘비정한 엄마’라고 손가락질할 것이고, 그대로 일을 그만두면 ‘남편 돈에 기생해서 꿀 빠는 맘충’이라고 손가락질할 것이다. 내가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런 것이 여성의 삶이기 때문에 더 잘 보인다. 왜냐하면, 저것이 내 미래가 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에서 살다가 책에서나마 이런 부분을 생각하는 남성을 보니 상당히 느낌이 새로웠다. 이런 인물이 나오는 것을 보면 그래도 시대가 조금씩 좋은 쪽으로 바뀌고 있긴 한가보다 싶기도 했다.


 이제 개교한 지 3년이 된 클로드 여학교는 온갖 소문이 가득했다. 반사회적인 사상을 가르친다는 소문부터, 남자들을 무시하고 깔보는 법을 가르친다는 이야기가 그득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결국 아버지 몰래 입학신청서를 내주었다.

 입학식을 두 달 남겨두고 마리아에게 돈을 챙겨준 것도 어머니였다. 집안에서 가장 과묵한 하인 짐과 함께였다. 마리아는 온갖 고생 끝에 올랭피아에 도착했다.


 이 장면은 소설 본편의 마지막 장면이다.

 유리는 패턴을 그려서 옷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는 학교를 만든다. 그리고 그 학교에 입학하려는 ‘마리아’라는 지금까지의 주요 등장인물들과 관계없는 인물이 등장한다. 마리아는 자신의 혼처를 알아보는 부모님에게 반대하여 학교에 가겠다고 한다. 당연히 부모님은 그것을 반대한다. 하지만 결국 어머니만큼은 마리아를 위해 입학신청서를 내어주고, 돈을 챙겨 학교로 보내었다.


 어머니와 딸 관계에서 딸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말이 있을 것이다.

 너는 엄마처럼 살지 마.

 고작 그 한 문장인데 딸은 그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야 만다. 살아온 세월도 다르고, 시대도 다르고, 보고 느끼는 것도 다를 텐데도 그렇게 된다. 물론 나는 저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어머니와 한 적은 있었다.

 나는 진심이지만 장난스러운 어조로 ‘나는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종종 말하고는 한다. 이 나이쯤 되면 결혼하라는 이야기를 듣는 게 이상한 게 아니다 보니 그런 말을 하지 말라는 의도였다. 집에서만큼은 빨리 결혼할 사람을 찾으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어서 이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할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머니와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때, 어머니께서 내게 말씀하시길 ‘전이라면 모르겠는데 지금 와서는 네가 혼자서 잘 살 수 있으면 굳이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하고 나서 금방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긴 했지만, 나는 어머니의 그 말씀을 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았다. 어머니의 결혼 생활이 불행하진 않으실 것이다. 실제로 어머니는 아버지와 결혼해서 좋고, 나와 동생들이 있어 좋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너머에는 다른 이야기들도 분명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이야기를 금방 지나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이상의 말이 필요 없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나의 선택을 지지해주었다. 그것이면 된 것이다.


 웹 소설을 쭉 읽었을 때, 어떤 사람은 로맨스 파트가 심심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몇몇 리뷰를 보았는데 ‘남자 주인공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고, 내용이 정치적인 것 같다’는 내용이 있기도 했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남자 주인공이 로맨스에 있어 소극적이고, 여자 주인공도 목숨을 걸고 사랑하진 않는다. 거기다가 성별로 인한 제약을 풀기 위해 이리저리 여성 등장인물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이 작품이 폄하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랑이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뜨겁지 않다. 사랑을 분명 하고 있지만, 하고 싶은 일 때문에 그 사랑을 1순위에 두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랑을 할 수 있다면, 굳이 그 일을 포기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모든 사랑이 같지 않듯, 이런 사랑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로맨스 판타지의 주력 독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작가가 이 작품을 읽는 독자에 대한 신뢰가 상당하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일과 사랑 모두 알뜰하게 챙기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높고 그들이 원하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 웹 소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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