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ve Feb 06. 2021

사랑은 나 홀로 온전할 수 있음에도 하는 것

웹 소설 <상수리나무 아래에서(1부)>를 읽고

* 인용글은 모두 웹 소설 <상수리나무 아래(1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 이 작품은 19세 이상만 볼 수 있음을 참고 바랍니다.

*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가정 폭력'에 대한 언급이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그가 출정 준비를 완벽하게 끝내고서 단단한 팔로 다시 한 번 그녀를 끌어안았다. 맥은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으며 애써 울적한 기분을 떨쳐 내었다.

 앞으로이 사람에게 많은 것을 주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해 줄 거야.

 그녀는 그렇게 속으로 결심했다.


 누구나 한 번쯤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내려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구나’에 나 역시 포함된다.


 첫 연애를 할 때쯤의 나는 사랑이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아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한 점이 있고, 그렇기에 그 부분을 누군가가 사랑으로 채워주면서 완벽해지는 것이 아닐까 했다. 불완전한 둘이 만나 완전한 하나가 된다는 말은 상당히 로맨틱하게 들렸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만나는 인간마다 되먹지 못한 인간들을 만났다. 지금 내가 연애조차 관심 없게 된 건 몇 번 없는 연애 경험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 되먹지 못한 인간 중에 특히 나에게 집착하는 인간이 있었는데 그게 처음에는 사랑인 줄 알았다. 그 인간도 나름대로 사연이란 게 있었고, 나는 그것을 가엾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그 부족한 면을 채워주고, 잘 보듬어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나이가 좀 있고, 연애 좀 해본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면 내가 당시 얼마나 어렸을지 짐작할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사랑을 표현했지만, 그 인간은 그것을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원할 때 연락이 되지 않으면 불안하게 느꼈고,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싫어했다. 당연히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연애하고 있다고 해도, 나에게도 일상생활이 있고 연인 외의 인간관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 인간은 내가 자신을 1순위로 두지 않는 점을 불만으로 여겼고, 불안으로 여겼다. 하루는 내가 과제를 한다고 핸드폰을 보지 않아 한 시간 정도 연락을 받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 인간은 그것으로 화를 냈다. 나는 뒤늦게 연락을 보고 과제 하느라 보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인간은 내 말은 제대로 듣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이 연락하는데 어떻게 보지 않을 수 있느냐고 자기감정만 내세웠다. 그런 인간이니 결국 당연히 헤어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생각했다. 인간은 불안정한 상태로 사랑하면 안 된다고 말이다. 그러면 사랑은 뭘까. 어떨 때 사랑을 하는 게 좋은 걸까.

 현재 내가 내린 결론은 ‘나 홀로 온전할 수 있음에도 하는 것’이다. 내가 혼자 있어도 전혀 문제가 없지만, 나의 온전함을 나누고 싶은 것이 사랑이 아닐까 하고 홀로 정의 내리고 있다. 그리고 내 생각과 비슷한 결을 드러내는 것이 웹 소설 <상수리나무 아래에서>라고 생각한다.

 웹 소설에 대해 말하기 전, 내가 다루는 부분은 어디까지나 ‘1부’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1부에서는 가정에서 학대를 당해 자존감이 낮은 ‘맥시밀리언(맥시)’와 천한 신분에서 기사가 되어 맥시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리프탄’의 서투른 사랑 이야기가 로맨스의 주축을 이룬다. 그들은 모두 정신적으로 어딘가 부족하고 연약한 부분이 있다. 그 부족하고 연약한 부분을 1부에서 다루며, 그 끝에는 그들이 성장하리라는 암시로 끝나게 된다.


 나는 이 웹 소설을 주변의 추천으로 보게 되었다. 당시 나는 19금 로맨스 소설 중에 괜찮게 볼만한 것이 없느냐고 주변에 묻고 있었다. 소위 ‘남성향’이라고 불리는 무작정 선정적인 것이 아니라, 뭔가 서정적인 느낌이 나는 것을 바란다고 하니 다들 입을 모아 웹 소설 <상수리나무 아래에서>를 추천했다. 읽어보니 제법 ‘씬’이 많은 편인데도 야한 소설을 읽는 느낌이 아니었기에 정서적인 부분에 집중할 수 있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또한, 맥시와 리프탄의 로맨스 외에도 눈여겨볼 관계들이 있었기에 그 부분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너무 과한 것은 제하고 찬찬히 다시 기록해 보세요.”

  맥은 경직된 얼굴로 깃펜을 바라보았다. 영락없이 그가 장부를 대신 정리해 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 트, 틀리면…”

 “앞으로 직접 관리하셔야 하잖아요.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아 드릴 테니 일단 기입해 보세요.”


 맥시는 드래곤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리프탄을 따라 그의 영지인 ‘아나톨’로 오게 된다. 아나톨에 온 맥시는 성 내부를 꾸미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는 맥시는 상당히 서툴렀다. 그렇지만 자신이 말도 더듬고 모자란 부분이 많은데, 이런 것조차 못하겠다고 도움을 요청하면 아랫사람들이 저를 무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홀로 끙끙거리다가 우연히 ‘루스’라는 리프탄의 기사단 소속 마법사에게 도움을 받는다. 루스는 불친절하긴 해도 맥시에게 이것저것 가르쳐주고, 그것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래서 맥시는 그런 루스를 조력자로 여기게 된다.


 누구나 살면서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몇몇 있을 것이다. 나에게 그런 사람 중 하나가 중학교 시절 가장 친한 친구였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 1학기까지 시골 학교에서 학교생활을 했다. 반이 한 반밖에 없고, 전교생이 50명도 안 되는 학교에서 생활하다가 2학기에 갑자기 한 반이 거의 40명 정도 되는 학교에 전학을 오게 되었다. 전학 온 것도 정신이 없는데, 갑자기 반 친구들까지 많아져서 상당히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특히 남의 얼굴과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는 편이라 그것으로 친구들이 싫어할까 봐 쩔쩔맸다. 그런 나에게 다가온 것이 그 친구였다. 그 친구는 자신의 이름이 연예인과 같다는 것을 어필하며 자기소개를 했다. 그 정도면 기억을 할 법도 한데, 애석하게 나는 다음날에도 그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친구는 기분 나빠하지 않고 전날과 똑같은 자기소개를 했다. 나를 재촉하지도 않았고, 내가 이름을 못 외우는 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행동해주었다. 나는 그것이 고마워서 더욱 열심히 이름을 외웠고, 그 친구 이름을 가장 먼저 외우게 되었다.

 물론 작품에 등장하는 루스는 친절한 성격은 아니다. 그렇지만 말을 더듬고, 처음 하는 일에 서투른 맥시에게 왜 그것도 못하냐고 탓하지 않는다. 그저 틀린 건 틀렸다고 곧게 말하고, 잘한 것은 잘했다고 칭찬을 해준다. 가식 없이 대하는 그 모습에 맥시도 금방 그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이 장면을 보면서 사람을 지지하는 일은 생각보다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저 그 사람의 속도를 맞춰 기다려주고, 그가 스스로 속도를 붙일 수 있을 정도의 지지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평생 그 누구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을 거야. 믿는 것도 불가능하겠지. 그러고 싶어도, 안 돼. 마치 망가진 것처럼 마음 한구석에서 제동을 걸어. 다가오는 사람마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시험하고, 결국은 밀어내 버리지. 내가 이런데… 언니는 어떻겠어?”


 맥시에겐 ‘로제탈’이라는 이복여동생이 있다. 로제탈은 아주 아름다운 아가씨로, 맥시와 사이가 썩 좋은 편은 아니다. 맥시는 로제탈이 자신과 다르게 아버지에게 사랑받는다 생각해왔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맥시가 아버지에게 가혹한 체벌을 받을 때 로제탈은 그것을 숨어서 지켜봐야 했고, 그 때문에 아버지에게 버림받지 않도록 완벽해지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러면서 로제탈은 타인을 믿을 수 없게 되었고, 그것은 맥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나도 자존감이 바닥을 찍어 고생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나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좀처럼 믿지 못했다. 평소에는 생각 없이 잘 어울리다가 한 번씩 불쑥 그런 의심이 들었다. 이 사람이 왜 나와 어울리는 걸까. 나에게 뭔가 바라고 어울리는 건 아닐까. 나에게 필요한 것을 얻으면 이 관계는 사라지지 않을까.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삽질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에 휩쓸려서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주변인을 시험하듯 굴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시험을 통과해도 다음에는 어떨지 모른다고 불안해했고,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그럴 줄 알았다며 냉소적으로 굴었다. 주변에 그것으로 사람이 떠나도 잡지도 못했다. 내가 잡아서 그 사람이 곁에 남으면 언제 돌아설지 모른다는 이유였다. 내가 정신적인 상황이 나아지면서 나를 시험하는 사람을 피곤하게 생각했던 것처럼, 내가 시험하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라고 나중에는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로제탈과 맥시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오랜 학대로 그들의 자존감은 싹을 틔울 새도 없이 짓뭉개졌으니까.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상 그들은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부디 그들이 자존감을 되찾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웹 소설을 읽으면, 몇몇 사람은 전개가 답답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작품에 달린 댓글 중에 전개가 느리고, 주인공이 답답하다는 평가도 제법 있는 편이다. 그렇지만 나는 오히려 이것이 이 작품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맥시는 극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신체적으로 벗어났지만, 정신적으로 벗어나지 못한다. 조금 변할 기미가 보이면 다시 움츠러들고, 변할 기미가 보이면 답답하게 굴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느껴지기에 위로가 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정신적으로 튼튼하고 자존감이 높으면 좋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정신적인 질환으로 고통받는다고 한다. 가정폭력에 노출된 사람도 생각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고통이 외부적 요인이 아니라 내부적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을 탓하고, 한없이 움츠러들게 된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그것이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그런 당신이 아무리 느리다고 해도 결국 좋은 쪽으로 변할 수 있다고 용기를 준다. 나는 그런 점에서 충분히 이 작품을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런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는 여왕 ‘쎄시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