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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ve Feb 07. 2021

아주 천천히 성장하는 ‘맥시’

웹 소설 <상수리나무 아래에서(1부)>를 읽고

* 인용글은 모두 웹 소설 <상수리나무 아래(1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 이 작품은 19세 이상만 볼 수 있음을 참고 바랍니다.

*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가정 폭력'에 대한 언급이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웹 소설 <상수리나무 아래에서(1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등장인물은 주인공인 ‘맥시밀리언(맥시)’이다.


 처음에는 맥시가 어디가 매력적일까 싶을지도 모른다. 말도 더듬고, 남자 주인공인 ‘리프탄’을 무섭다고 생각하며 겁먹는 모습까지 보이니 말이다. 거기다 최근 추세는 ‘사이다’같이 시원시원한 여성 캐릭터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니 그와 반대되는 답답하고 자존감이 떨어져 움츠러들어 있는 맥시를 좋아한다고 하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맥시는 아주 천천히 나은 방향으로 성장한다. 그 과정은 물론 쉽지 않다. 좌절도 하고, 주저앉기도 하고, 고민도 많이 한다. 그렇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맥시를 응원하는 마음이 생기게 한다. 괜히 맥시를 좋아하는 독자들을 ‘맥시맘’이라고 하는 게 아닐 것이다.


 그녀는 채찍질과 고함, 욕설, 그리고 구타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렇게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거짓말이 제일 싫다는 그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는 머뭇거리다 진실 중 하나를 내뱉었다.

 “내 자, 자신이요.”

 리프탄은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듯 가볍게 말했다.

 “나는… 나 자신이 시, 싫어요.”


 이 장면은 남자주인공인 ‘리프탄’과 주인공인 맥시가 함께 승마하고 있는 장면이다.

 말을 타고 호수를 향해 달려가며 리프탄은 맥시의 대부분이 베일이 싸여 있다며 맥시의 호불호에 관해 묻는다. 그러자 맥시는 리프탄부터 호불호를 이야기하라고 한다. 리프탄은 먼저 호불호에 대해 말하고, 맥시의 차례가 된다. 맥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조금씩 이야기 하다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답한다.


 중학생 때쯤 인상 깊게 기억에 남은 수업이 있다. 나에게 소중한 다섯 가지 무언가를 쓰는데, 그것에 순위를 매겨 버려보는 수업이었다. 다섯 가지를 다 적고 순위를 고민하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보통 많이 쓰는 단어에 관해 이야기해주셨다. 그중에 ‘나’라는 단어를 말씀하셨는데, 내가 쓴 것에는 ‘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소중한 것을 상당히 고민하면서 썼다. 끙끙거리면서 어렵게 다섯 개를 간추려서 썼는데, 거기에 ‘나’라는 단어는 없었다. 내 주변에 있는 친구들은 대부분 ‘나’를 썼고, 나는 그 단어를 쓴다는 것조차 생각하지 못한 쪽이었다.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나는 당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말을 종종 입에 담고는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래서 나를 가장 먼저 생각할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러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의 나는 나의 모자란 부분을 크게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시골에서 학교에 다닐 때는 사람이 워낙 없다 보니 내가 남들보다 모자란 게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사람이 많은 학교에 다니다 보니 나보다 여러 분야에서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노래를 잘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 평범한 편이었고, 나는 그림을 잘 그리는 줄 알았는데 사실 평범한 편이었다. 내가 특출나게 잘하는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란 것에 실망했고, 그런 나를 나도 모르게 싫어했던 것 같다.


 당시의 나는 모르고 있다가 깨닫고 충격을 받았는데, 맥시는 항상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모자란 것을 느끼고 자신을 싫어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 무언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굉장히 지치는 일인데, 하물며 그 대상이 자신이니 그 마음으로부터 도망가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맥시가 안타까워 더욱 맥시가 나아질 수 있도록 응원하게 된 것 같다.


 만약, 여기서 그 모든 걸 단념한다면 그녀는 평생 열등감을 벗어던질 수 없을 것이다. 아버지의 말처럼 평생 무능한 실패작으로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생각에 잠긴 얼굴로 걸음을 옮기던 맥은 이내 결연하게 눈을 빛냈다.
 밑에서 올려다봤을 때보다 훨씬 더 견고해 보였다. 과연 자신의 마력으로 떨어뜨릴 수 있을까. 그녀는 아슬아슬하게 기울어져 있는 바위를 간절한 눈으로 응시했다.

 ‘…해 보는 수밖에 없어.’

 아주 작은 균열이라도 일으킬 수 있다면 바위의 무게에 의해 스스로 무너져 내릴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서리라도 낀 듯 불분명한 시야에, 서서히 어마어마한 규모의 낙석과 그 밑에 깔린 마물들의 모습이 들어찼다.

 그녀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눈을 깜빡거렸다. 바위가 떨어지면서 그 여파로 아슬아슬하게 기울어져 있던 암벽이 한꺼번에 무너진 것이다.


 맥시는 아버지에게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당하며 자라왔다. 그래서 맥시는 자신이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 맥시는 마법사 ‘루스’에게 마법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듣고, 리프탄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마법을 갈고 닦는다. 물론 그 길은 순탄하지 않고, 맥시의 마법 재능이 천재적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맥시는 꾸준히 마법을 연습하여 조금이나마 자신의 특기를 만들어낸다.

 이 장면은 맥시가 리프탄의 원정을 몰래 따라왔다가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몰래 따라왔던 것을 들킨 맥시를 지키는 기사들이 그녀를 대피시키려고 했다. 그러다 그녀는 자신이 머물던 성이 마물들에게 둘러싸인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커다란 바위가 있는 절벽을 무너뜨릴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그녀의 작은 마력으로 힘든 일이었다. 그렇지만 맥시는 죽을 각오를 하고 흙벽을 쌓았다가 무너뜨리는 마법을 반복했고, 마침내 암벽을 무너뜨리게 된다.


 우연히 발견한 재능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다. 거기다가 그것을 인정받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욱 좋은 일이다. 나의 경우는 사진이 그러했다.

 처음 사진기를 잡은 계기는 별것 없었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와 나는 비슷한 시기에 백수 생활을 했는데, 그때 친구가 혹시 자기 사진을 찍어줄 수 있겠느냐 물었다. 친구에게 새로 사진기가 생겼는데 찍어줄 사람이 없어서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다는 이유였다. 딱히 할 일도 없었고, 당시는 벚꽃이 한창일 때라 꽃놀이를 갈 겸 좋다고 했다. 둘이서 벚꽃이 만발한 낮은 산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데 기분이 좋았다. 처음에는 사진기를 조작할 줄 몰라서 친구가 조작을 해주면 그냥 찍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도 친구가 잘 찍었다고 말해주자 함께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일이 점점 늘었다.

 사진 찍는 것에 재미를 붙이자 더 잘 찍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카메라 사이트로 들어가 카메라 상세 설명 페이지도 열심히 읽고, 사진 찍기에 대한 설명이 있는 글이나 영상도 보게 되었다. 그 친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사진도 찍게 되었다. 그러면서 다양한 사람에게 사진을 잘 찍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것이 매우 좋았다. 이후에 찍었던 사진들을 모아 사진집처럼 소장용 책도 만들었는데 그 실물을 받았을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요새도 종종 아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가끔 그 사진으로 이루어진 엽서나 책자를 받는 일이 있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삶의 원동력이 되어 내 행복이 된다.


 아마 맥시도 자신이 마법에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무능하게 여겨지던 때, 남들이 알아주고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아주 큰 힘이 되는 법이다. 나는 맥시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맥시가 마법사로서 충분히 자리 잡을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리고 맥시가 그것을 꼭 해낼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나, 나는…”

 바늘을 삼킨 것처럼 목이 따끔거렸다. 그녀는 치맛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동생이 단언하는 미래에 대한 반발심이 끓어올랐다. 그것을 토해 내듯 말했다.

 “나는… 벼, 변할 거야.”

 로제탈은 무겁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대꾸해 왔다. 맥은 눈을 질끈 감으며 거듭 외쳤다.

 “나는, 변할 거야.”


 이 장면은 맥시와 이복여동생인 ‘로제탈’의 대화이다.

 맥시가 아버지에게 가혹한 체벌과 정신적 학대를 받을 때, 로제탈은 그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로제탈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가 원하는 완벽한 딸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학대에 자존감이 자랄 수 없었던 맥시처럼 로제탈도 똑같이 자존감이 자랄 수 없었다. 로제탈은 아버지의 태도 때문에 타인을 믿을 수 없었고, 맥시 역시 그럴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 맥시는 자신은 변할 것이라고 말하고, 로제탈은 그런 맥시에게 행운을 빈다고 말해준다.


 누구나 변하고 싶은 순간은 온다. 그렇지만 그 순간에 용기를 내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변화가 반드시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지는 않기 때문이리라.

 나는 변화하고 싶다고 강한 마음을 먹고 변화한 건 아니었다. 거의 반은 살다 보니 차차 변하게 되었고, 반은 이전처럼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이전의 나는 예민했고, 조급했고, 냉소적이었다. 그게 멋있어 보였고, 그렇게 사는 게 멋있는 줄 알았다. 그렇지만 살다 보니 그게 멋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에 누군가가 상처받고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런 것을 고민하다 보니 절로 이전보다 나은 사람이 된 게 아닌가 싶다.

 물론 나의 변화에 어떤 사람은 ‘좀 낯설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내가 아는 네가 아닌 것 같다’라는 말도 듣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변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전으로 돌아가라고 해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내가 변할 수 있도록 묵묵히 기다려준 주변 사람들과 내가 겪었던 경험이 헛된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다.

 나는 변해본 사람이기에 맥시가 변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을 응원하고 싶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현재의 자신을 인정하는 것은 괴롭겠지만, 그것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맥시가 온전하게 자신을 찾고, 리프탄과 제대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생각보다 맥시 같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다들 아닌 척 애써 자신을 포장하고 있어도 내부에서 곪아 들어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포장된 자신의 모습을 원하는 게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 그 포장을 풀어도 자신이 원했던 모습의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응원해주고 싶었다. 당장 내가 보잘것없어 보여도 끝의 끝까지 그렇게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으니까 말이다. 어둠 속에 있는 사람도 고개를 들면 그 어둠에 눈이 익어 결국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보이게 되는 법이다.

 조금만 용기를 내고, 조금만 자신을 사랑해줬으면 좋겠다. 자신의 내부를 보듬고, 잘못 없는 자신을 인정해주면 좋겠다. 맥시가 그랬듯, 이 작품을 읽을 사람들이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나는 이 웹 소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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