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ve Jan 21. 2021

한 번쯤 상상해보는 소설 속 남주와의 로맨스

웹 소설 <남주의 첫날밤을 가져버렸다>를 읽고

* 인용글은 모두 웹 소설 <남주의 첫날밤을 가져버렸다>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저 내가 이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만으로 끝낼 수가 없었다.
 원작이든, 운명이든 다 필요 없었다.
 내가 여기에 끼어든 순간, 내 운명이 이걸로 정해져 버렸으니까 말이다.
 "저, 리플리 드 리버풀 백작 영애는 지금 이 자리에서 제로니스 드 잉글리드 공작님께 혼인을 청하는 바입니다."


 로맨스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작품 속 남자 주인공과의 로맨스를 꿈꿔볼지도 모른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비슷한 경험이 있다.


 어릴 때는 순정만화를 좋아하는 것이 ‘여자’라는 이유로 치부되는 것이 싫어서 남들 몰래 혼자 보는 편이었다.

 그 당시 가장 열심히 챙겨보던 순정만화는 ‘너에게 닿기를(시이나 카루호 作)’이었다. 그 작품 속에 있는 ‘사나다 류’라는 캐릭터를 정말 좋아했다. 내가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말한 이유는 이 등장인물이 남자 주인공이 아니라 흔히 말하는 ‘서브 남자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류는 무뚝뚝하고, 소위 말하는 ‘쿨’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런 그는 어릴 때부터 소꿉친구를 짝사랑해왔다. 그리고 그 소꿉친구는 자신의 형을 짝사랑했다. 그걸 알면서도 류는 소꿉친구의 곁을 지키고, 소꿉친구가 형에게 차일 때 위로해준다.

 나는 그런 류의 행동을 보고 두근거려서 밤에 잠도 못 이뤘었다. 누군가를 오래도록 소중하게 좋아할 수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데도 그 곁을 지키는 건 얼마나 좋아해야 가능한 일일까. 그런 생각에 결국 다시 그 부분을 또 읽게 되는 것이었다. 몇 번이고 그의 행적을 좇았다. 무뚝뚝하던 그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미소를 짓는 장면을 보게 되었을 때, 내가 만약 이런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좀 부끄러운 경험이지만, 혼자 그런 상황을 상상해보고 글을 써본 적도 있었다. 류의 소꿉친구가 나였다면, 이런 사랑을 받는 사람이 나였다면 하고 말이다.


 나는 지금도 감정이 말랑말랑해지고 싶을 때 이 순정만화를 찾고는 한다. 아마 웹 소설 <남주의 첫날밤을 가져버렸다>의 주인공(리플리) 역시 그런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웹 소설 내의 로맨스 판타지 웹 소설인 ‘에르넬의 꽃’을 몇 번이나 읽었다고 작품에 서술되어 있으니 말이다.

 작품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주인공인 ‘나’는 로맨스 판타지 웹 소설인 ‘에르넬의 꽃’에 나오는 엑스트라인 백작 영애 ‘리플리’에게 빙의된다. 얌전히 남자 주인공인 ‘제로니스’와 여자 주인공인 ‘에트와르’의 해피 엔딩을 보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편히 있으려고 했지만, 이야기는 그녀의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게 된다.

 나는 사실 이 웹 소설을 웹툰으로 처음 접했었다. 웹툰이 너무 재미있고 귀여워서 좋아하고 있던 찰나, 웹툰의 댓글을 통해 원작이 웹 소설이라는 것을 알았다. 웹툰은 일주일에 한 번 연재가 되는 상황이었고(현재도 그렇다), 웹 소설은 완결이 난 상황이었으니 참지 못하고 웹 소설을 단번에 전편 구매하고 말았다. 웹툰의 다음 장면이 궁금해서 읽던 것이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리플리와 주변 인물들이 사랑스러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웹 소설에서 주된 내용은 리플리와 제로니스의 로맨스이다. 그렇지만 그 이외에도 부가적으로 인상 깊은 요소들은 당연히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로맨스보다는 그런 부분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아가씨, 제가 아가씨보다 조금은 나이가 더 많고, 조금은 술도 더 마셔 봣고, 또 술 취한 사람도 좀 더 많이 봤을 거잖아요. 제가 봤을 땐, 술에 취하면 사람이 변하는 게 아니라 본인의 본성이 나오는 거예요."
 "그, 그래?"
 "네. 확실히요. 술에 취했다고 좋았던 것이 싫어질 수는 없고, 싫었던 사람이 좋아지는 법은 없어요. 오히려 술에 취하면 본능만 남아서 더 정확하게 그 사람의 본성이 나오고, 호불호가 더 강해지는 법이죠. 그래서 취중진담이라는 말이 있는 거잖아요."

  

 이렇게 내용만 놓고 보면 심각한 내용 같아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런 내용은 아니다.

 리플리가 자신의 하녀인 ‘실비아’에게 제로니스와 첫날밤을 보낸 이야기를 할 때 나온 대사이다. 리플리는 백작 영애라는 점을 제외하면 평범한 외형과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인상적으로 남을 인물이 아니었다. 그런 리플리에게 ‘에르넬’에서 가장 잘생기고 잘난 제로니스가 반했다고 하니 대체 어느 부분이 매력적이었을까 하는 토론을 하게 된다. 아무리 두 사람이 이야기해도 답이 나오지 않자, 리플리는 사실 기억하지 못하는 첫날밤에서 아주 섹시하게 굴었기 때문에 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자 실비아가 진지하게 리플리에게 말하는 장면이다.


 내용 면에서 봤을 때는 분명 개그적 요소인 것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나는 개그적 의미보다는 다른 의미로 내 기억에 깊게 남았다.

 나는 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폭력을 행사하거나 폭언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술 취한 아버지와 대화하면 내가 뭐하러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어야 하나 싶어졌다. 정작 그런 이야기를 했던 아버지는 술에 취했기 때문에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다음날에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거나 잊어버리고는 했다. 그러면 그걸 맨정신으로 진지하게 듣고, 싸운 내가 바보가 되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술 취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치부하고 싶었다. 상처받는 내가 멍청이 같았다. 그렇지만 나도 알고 있다. 그게 아버지의 본심이라는 걸.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싫어하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걸. 술의 힘을 빌려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문득 인터넷상에서 술에 관해 돌던 말이 떠올랐다. 술 취해서 실수했다는 말은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술 취해서 실수로 토익 공부하는 사람 본 적 있느냐고. 그냥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그래서 술 취한 상황에 관한 좋지 않은 기억을 이 소설로 덮어쓰고 싶었다. 내가 상처받을 그 상황이 되어도 ‘리플리와 실비아는 이런 대화를 했지.’ 라고 생각하며 덜 상처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소설을 몰입해서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재밌는 대화를 하는 두 인물을 보며 웃었다.


 "저는 원래대로라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아이였어요. 왜냐하면 아버지도 누군지 모르는, 열여섯 살의 어머니가 저를 낳으셨으니까요. 어머니는 당연히 저를 키울 수가 없었어요. 어머니도 아이였으니까요. 결국 저는 고아원에 보내졌어요.
 저는 원래대로라면, 거기서 계속 살아야 했어요. 적어도 독립할 나이가 되거나, 누군가에게 시집을 가거나, 혹은 어느 부자의 첩으로 가기 전까지는요.
 하지만 저는 아주 우연히 지금의 아버지인 남작님을 도와드리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남작님의 양딸이 되어, 과분하게도 남작 영애가 되었죠."
 "그리고 또 원래대로라면, 저는 지금 여기 있는 게 아니라 혼자 남작가에 있었을 거예요. 아마 혼자서 서류 정리를 하고 있거나, 혹은 혼자 저녁을 먹고 있겠죠. 하지만 저는 지금 이렇게 리플리 님과 함께 있어요."
 우매한 백성을 깨우치는 성녀처럼, 에트와르가 웃었다.
 나의 눈에는 지금 이 순간, 그녀에게서 아우라가 뻗어 나가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원래라는 건 없어요. 그냥 지금이 있을 뿐이죠."


 개인적으로 리플리와 제로니스의 로맨스를 제외하고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이다.

 리플리에 빙의된 주인공은 원작과 다르게 제로니스가 여자 주인공인 ‘에트와르’를 사랑하지 않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다. 처음에는 두 사람을 이어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주인공은 제로니스를 사랑하게 된다. 그렇지만 원작을 읽었던 주인공은 제로니스의 짝이 에트와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고뇌하게 된다. 그래서 원래 제로니스의 곁에 에트와르가 있어야 했다고 말하며 죄책감을 드러낸다. 그런 리플리에게 에트와르는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실 누구나 자신의 한계를 쉽게 설정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겸손을 미덕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을 더욱 작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 인터넷 카페에 소설을 써서 올렸던 적이 있었다. 별로 조회수가 많은 건 아니었지만, 내 생각을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이 즐거워서 열심히 썼던 기억이 난다. 자기만족으로 소소한 즐거움을 얻던 어느 날, 나는 하나의 글을 보게 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글에 내가 쓴 글의 문장을 사용한 것이었다. 내가 어릴 때는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크게 자리 잡고 있을 때가 아니라서 그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그것은 그냥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내가 쓴 의도와 전혀 다르게 쓰인 문장은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내 문장은 그런 의도로 쓴 것이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조회수도 적은 내 글에서 문장 좀 가져다 쓰는 게 어떠냐는 말을 들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를 해보기도 전에 자포자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 뒤, 다른 누군가가 글을 하나 올렸다. 나는 그걸 우연히 봤는데 그 글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담겨 있었다. 그 문장을 쓴 사람이 나이고, 그 문장은 이러한 의도로 쓰였는데, 아무리 인용이라고 해도 본래 쓴 사람의 의도와 다르게 쓰면 안 되지 않느냐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인용이라면 인용했다고 표기를 해야 한다는 적절한 주장도 있었다. 나는 그 글을 보면서 눈이 부어오를 정도로 울고 말았다. 그 글을 쓴 사람에게 장문의 쪽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울면서 보내서 두서없었지만, 이 말을 쓴 것은 확실히 기억이 난다.

 ‘나는 이게 억울하고 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당신이 이 글을 올린 순간 나는 알게 되었어요.’

 그 뒤로 나는 원래 그런 것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힘이 되어주기도 했다.


 웹 소설을 읽으면서 행복한 결말을 위해서 주인공 일행들이 열심히 달려나가는 것이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사랑을 향해 열심히 달려간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용기를 내고 기꺼이 손을 뻗는다. 주인공은 사랑을 위해 자신의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제로니스의 곁을 선택할 정도니까 말 다했다.

 읽어보면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운 로맨스 서사에 개그감 넘치는 장면들도 군데군데 존재해서 질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굳이 그런 장면들을 전부 소개하지 않는 것은 이 웹 소설을 읽게 될 사람을 위한 배려이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봐도 재미가 없는 법이다. 아무리 뻔한 클리셰 같은 소설이라도 말이다.

 그러니 나는 그저 열렬한 사랑을 잊은 사람에게, 언젠가 소설이나 만화 속 주인공과의 로맨스를 상상해본 적 있는 사람에게 이 웹 소설을 보는 것을 추천할 따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더 나은 나를 향해 발을 딛는 ‘은별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