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에는 관상에 관련된 내용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적벽대전이후 유비는 형주 남부의 영릉, 계양, 무릉, 장사 접수에 나섭니다. 먼저 조자룡을 내세워 선봉장 형도형을 죽이고 영릉을 접수하자 계양의 조범도 조자룡에게 항복합니다. 장비마저 무릉을 접수하자 관우가 장사를 맡겨달라고 청했습니다. 관우는 예상외로 장사를 지키는 황충과 막상막하의 싸움을 벌이지만 황충이 배신할까 의심한 장사태수 한현이 황충을 죽이려하였고 위연이 황충의 목숨을 구하고 태수 한현의 목을 베어 항복합니다. 관우가 위연을 소개하자 유비가 상을 내리려 했지만 공명은 반대합니다.
“위연의 상을 보니 뒤통수가 튀어나온 것이 반골상입니다. 이것은 반역을 일으키는 자에게 흔히 보이는 상입니다. 지금 작은 공을 세웠다고 해서 휘하에 들이시면 나중에 반드시 모반을 꾀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오히려 지금 위연을 제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갈공명은 관상을 이유로 위연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유비의 만류로 어렵게 살아납니다. 하지만 이는 나관중이 초한지에 등장하는 범증의 일화와 유방의 조카 오왕 유비의 일화를 섞어서 만든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초한지에서 한고조 유방의 장인인 여공은 가난한 건달 유방의 관상을 보고 “이 자는 영험하고 귀한 상을 가지고 있다”며 자신의 큰 딸 여치를 백수건달인 유방에게 시집보냈고 같은 이유로 항우의 책사 범증은 유방의 관상이 범상치 않다며 제거하려고 하였습니다. 황제에 오른 한고조 유방은 작은형 유증의 아들이며 자신의 조카인 유비를 오왕으로 책봉하여 보내면서도 관상을 보고 후회했다고 합니다. 허나 이미 임명했으므로 조카에게 “네가 반란의 상이지만 이는 50년 뒤라고 하니 네가 그럴리는 없을 것이다.”라며 토닥거려 주었다고 합니다. 조카인 유비도 충성을 맹세했다고 전합니다. 하지만 훗날 오왕 유비는 오초7국의 난을 일으켰다가 멸망했는데 어쩌면 이 스토리는 당시 황제인 한고조의 손자 경제가 반란이 일어난 것에 대한 황제인 자신의 책임을 덜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로 의심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정사 삼국지 촉서>에는 위연의 반골상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단지 촉서에 반역열전은 없지만 관우를 죽게 만들어 유비에게 자살을 명령받은 유비의 양자 <유봉전>, 재능은 뛰어났지만 유비에게서 지방 전출을 지시받자 화가 나서 마초를 찾아가 “그대가 바깥을 맡고, 내가 안쪽을 맡으면 천하는 충분히 평정되지 않겠습니까?”라는 반역의 말을 하여 37살에 처형된 <팽양전>, 자신의 재능과 명성이 제갈량 다음 간다고 자부했지만 한직에 임명되어 이엄 아래의 낮은 자리로 가게되자 유비와 관우의 뒷담화를 하다 폐출된 <요립전>, 유비에게 탁고대신에 임명되었지만 출병한 제갈량을 모함했다가 서민이 된 <이엄전>, 자신의 아내가 황제 유선과 사통했다고 생각해 구타했다가 저잣거리에서 처형된 <유염전>, 위연과 항상 불화하며 제갈량의 후계자를 자부하다 장완이 선택되자 분노하여 반역을 모의하다 자살한 <양의전>과 같은 묶음에 <위연전>이 편성되었습니다. 진수는 이편을 마무리하면서 “재앙을 부르고 허물을 취한 원인이 자신들로부터 나오지 않은 경우는 없다”고 결론을 내리며 제갈량이 위연과 양의의 갈등으로 힘들어 했다고 합니다.
<정사>에서는 위연이 오래전부터 유비를 따라 다닌 부곡신분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삼국지연의>처럼 적장으로 만나 투항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유비가 한중왕이 되어 모든 장수들이 수도경비사령관이라는 중요한 직책에 누가 임명되나 궁금해할 때 파격적으로 위연을 임명합니다. 유비가 위연을 임명한 다음 소감을 묻자 위연은 “조조가 천하를 들어 쳐들어 온다면 대왕을 위하여 이를 막고 10만 병사가 이르러도 대왕을 위하여 그들을 소멸시킬 것입니다.”라는 말을 담대하게 말하여 유비의 칭찬을 한몸에 받았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용맹한 장수 출신으로 항상 선봉장을 도맡다보니 제갈공명의 신중한 병법보다는 북벌 초반에 자오곡을 통하여 기습할 것을 건의하였고 제갈공명이 이를 거부하자 불만을 품고 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특이한 이야기는 위연이 죽기 전에 머리에 뿔이 돋아나는 꿈을 꾸었다는 것이 정사에 기록되었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꿈을 풀이하는 직책의 조직에게 문의하자 조직은 위연을 속여 말했습니다. “기린은 뿔이 있습니다. 이것은 싸우지 않고 적군이 자멸하려는 징조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뿔 각(角)이라는 글자는 칼(刀) 아래에 쓰였습니다. 머리 위에 칼을 쓰고 있으므로 매우 불길합니다.“라고 말하였고 위연은 결국 제갈공명의 비밀 명령을 받은 마대에 의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하지라는 촉의 관리가 우물 안에 뽕나무가 있는 꿈을 꾸고나서 조직에게 해몽을 부탁하자 뽕나무는 우물 안에 나는 것이 아니므로 옮겨 심어야 하고 뽕나무(桒)는 속자로 48을 의미하므로 48세에 사망한다고 했고 하지는 48세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제갈량, 비의, 동윤과 함께 촉의 4명의 재상에 속하는 장완도 관직에서 파면된 후 밤에 소머리 하나가 문 앞에서 피를 흘리는 꿈을 꾸고 나서 궁금한 마음에 조직에게 해몽을 부탁했습니다. 조직은 피를 본다는 것은 분명하다는 것이고 소뿔과 코에는 공(公)이라는 글자의 형상이 있으므로 장완의 지위가 공(公)에 이르는 대길의 징조라고 풀이해주었다고 합니다.
제갈공명이 죽자 위연은 결국 반란을 일으켰고 위연은 결국 마대에 의해 목이 베어져 양의에게 전해졌다고 합니다. 양의는 그 머리를 밟고 말했습니다.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놈아! 또다시 나쁜 일을 할 수 있겠느냐!“ 그런 다음 위연의 삼족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하지만 <정사>를 기록한 진수도 위연의 마음을 추측해볼 때 위연이 북쪽으로 가서 위나라에 항복하지 않고 남쪽으로 돌아온 것은 양의에 대한 악감정 때문일 뿐이며 자신이 제갈량을 대신하여 촉군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 촉을 배반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황충전>에도 황충이 장사 태수 한현의 통제 아래 있다가 유비에게 귀순하여 유비를 따라 촉에 들어갔다고 기록되면서 늘 먼저 달려가 진지를 함락시켰으며 용감하고 강인함이 삼군의 으뜸이었다고 칭찬하였지 위연에 의하여 목숨을 구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삼국지연의>가 내용을 드라마틱하게 전개하기 위하여 훗날 결과적으로 비참하게 죽은 위연을 반골의 상이라는 프레임을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유비와 손권은 모두 인재를 잘 알아보는 군주라는 평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손권은 노숙이 추천하는 방통을 추한 외모를 이유로 거절하였고 유비도 자신을 찾아온 방통을 꺼리면서 시골 현령 자리에 발령을 내리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삼성에서 신입사원 면접에서 관상을 보았다는 이야기는 오랜 동안 사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삼국지에는 관상과 꿈 해몽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고 지금도 이와 관련하여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리스토텔레서가 ‘관상학’에서 신체에는 정신의 특성이 드러난다고 주장한 이래 이러한 믿음은 계속되었습니다. 100년전에 조지프 갈(1758~1828)은 ‘골상학’으로 나치와 노예제를 옹호하였습니다. 범죄학자로 유명한 롬브로조(1835~1909)는 ‘생래적 범죄인’이라는 개념을 탄생시켜 범죄자와 일반인은 얼굴과 뇌 형태에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였고 이는 범죄자 차별의 근거로 활용되기도 하였습니다. 21세기 과학은 발달했지만 우리는 아직도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분하는 일에 대하여 힘들어 하는지도 모릅니다. 골상학이 악의 도구로 활용되었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므로 우리 안의 편견을 기억하고 이것을 거부하려는 의지를 갖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과거의 역사적 비극을 다시 우리의 일상에서 재현하지 말아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