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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가방 Jul 28. 2023

<제20화> 사마의의 고평릉 사변

정월 초이틀. 고평릉 정변까지 고작 하루를 남겨두고 있는 시점이었습니다. 사마의는 사마사와 사마소를 불러놓고 긴급 가족회의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 참석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는데, 바로 사마의의 바로 아랫동생 사마부였습니다. 사마의는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내일 정변을 일으켜 조상 일파를 전멸시킬 계획을 남김없이 털어놓았습니다. 사마의가 가장 주목한 핵심은 두 가지였습니다. 무력과 명분의 확보였습니다. 사마의가 배정한 임무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먼저 사마사는 3천의 결사대를 이끌고 무기고를 점거하여 무기를 탈취한다. 주력군은 사마사와 사마부가 인솔하고 나와 함께 궁궐로 가서 사마문에 주둔한다. 성 전체에 계엄을 선포하고 통행을 금한다. 남은 인원은 사마소가 통솔하면서 태후의 영녕궁을 보호한다.” 무기고를 점거하여 무력을 확보하고 태후를 확보하여 명분을 확보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었습니다. 사마의는 말하는 동시에 사마소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사마소는 처음으로 모든 계획을 알게 되었지만 크게 놀라는 기색 없이 진지하게 지시를 듣고 있었습니다. 참석자들은 하나라도 잘못되면 가문이 결딴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결사대를 이끌고 곧장 궁성에 들어가 수도에 있는 고관들을 소집한 뒤, 조상 일당의 관직을 파면한다는 태후의 조령을 발표할 것이다. 그리고 고유에게 가절을 가지고 임시로 조상의 대장군 직무를 수행하게 하면서 조상의 주둔지를 점거해 그의 무장 역량을 빼앗게 한다. 또 환범에게도 마찬가지로 조상의 동생 조희의 중령군 직무를 대리하면서 그 주둔지를 점거해 조희의 무장 역량을 빼앗게 한다. 그 후에는 낙수의 부교를 끊어버린 다음 상황에 맞춰 일을 처리한다.” 


사마의는 이어서     

“고유와 환범이 우리 지시에 따르기를 거부하면 그 자리를 왕관에게 맡기는 방법도 있다. 어찌 되었건 내일까지 이 일은 우리만 알아야 한다. 절대 다른 사람이 알아서는 안 된다.” 

두 아들들이 돌아간 뒤 사마의는 늙은 하인을 불렀다. “가서 둘이 어쩌는지 살펴보거라.” 

얼마 후 늙은 하인이 돌아와 보고했습니다. “사마사 님은 베개를 베자마자 잠드셨고 코까지 골고 계십니다. 사마소 님은 뒤척이며 잠을 못 이루시더니 지금 가지 깨어 계십니다. 잠이 안 오시는 모양입니다.” 사마의는 고개를 끄덕였고 하인은 물러갔습니다. 사마의는 누가 자신의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지 결정하였습니다. 사마의는 당시의 정국을 어떻게 보았을까요?      


238년 조예가 죽으면서 8살 나이의 조방이 황제가 되고 태위 사마의와 대장군 조상이 국정을 보좌하였습니다. 말이 보좌였지 사실상 황제의 권력을 대행하였습니다. 곽태후가 형식상 존재했지만 나라의 대소사는 사마의와 조상이 의논하여 결정하였고 중요한 일만 곽태후에게 보고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마의와 조상이 권력을 분점 하는 방식은 결코 오래 지속되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이는 223년 유비가 제갈량과 이엄에게 유선을 부탁하였지만 이엄의 존재가 유명무실하게 되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마의는 조상의 부친인 조진과 같은 세대였고, 조신은 사마의를 부형의 예의로 대했지만 갈등은 필연적이었습니다. 조진과 같은 세대인 종요, 화흠, 왕랑, 조휴, 하후상 등은 다 죽었고 장수했던 동소, 유엽, 신비 등도 다 죽었습니다. 남아있는 인물은 장제, 사마부, 유방, 손자, 위진, 노육, 최림 정도였습니다.      


젊은 조상 주변에는 신진세대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이 소장파 사류들의 중심인물은 하후현 등 4명을 4총이라 불렀고, 제갈탄 등 8명은 팔달이라 했고, 인물은 조금 떨어지지만 부친이 고관이었던 3명을 3예라 부르며 서로 칭찬하고 추어주며 무리 이외의 사람들은 소인배라 하며 경시하였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명문사족 출신들로 배경이 든든하였고 훌륭한 교육을 받아 교양 수준이 높아 서로 교류하며 인물평을 하면서 인맥을 다져나갔습니다.      


하후현은 하후상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조진의 여동생이고 친동생은 사마사의 첫 아내인 하후휘이며 조상의 사촌이었는데 사람을 평가할 때에는 집안 배경과 교양 수준을 중시하였습니다. 한 번은 황제 조예를 알현하게 되었는데 조예의 첫 황후인 모황 후의 동생 모증도 입시하여 나란히 앉게 되었습니다. 모황 후는 조예가 조비의 눈밖에 나던 시절 인연이 되어 황후가 되었지만 아버지 모가는 수레를 만들던 천한 신분의 장인이었습니다. 모증은 열후에 봉해졌지만 아비 모가처럼 무식하고 교양이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연회석상에서 하후현은 모증의 교양 없는 행동에 짜증이 났고 자신도 모르게 그 기색이 얼굴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조예는 자신의 처가에 관대하였고 당시 모황후가 한창 총애를 받던 시절이라 하후현을 매우 괘씸하게 여겨 하후현을 좌천시켰고 황제의 심기를 눈치챈 동소의 상소로 4총8달의 무리들은 관직에서 폐출되고 면직되었습니다.     

 

하지만 조방이 황제가 되자 하후현과 조상은 고종사촌 관계로 하후현은 조상의 오른팔이 되었고 조예에 의하여 축출되었던 무리들은  다시 모여 조상 세력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조상은 동생 조희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사마의의 지위를 높이자는 표문을 황제에게 상주하게 지시하였습니다.

“사마의는 본래 조정의 중심으로 명성은 여러 사람들을 누르기에 충분하며, 그 의로움은 아랫사람들을 이끌기에 족합니다. 폐하께서는 사마의를 태부, 대사마로 임명해 조정의 으뜸가는 자리에 있게 하소서.” 

조정에서는 사마의에게 조상과 똑같이 입전불추, 찬배불명, 검리상전 등 한나라 소하의 특전을 누리도록 조치하였습니다. 사마의는 태부가 되어 직위는 높아졌지만 이로써 조정의 보고라인에서 제외되었고 권력은 조상의 수중에 집중되었습니다. 조상은 동생 조희를 중군령, 조훈을 무위장군에 임명하여 궁성과 도성 내외의 군권을 장악하였고 동생 조언은 산기상시, 다른 동생들도 다 열후에 임명하여 천자를 시종 하도록 하였으며 하안과 등양, 이승과 정밀, 필궤 등을 조정의 핵심요직에 임명하였습니다.     

 

사마의는 조정의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배제되었지만 군사 문제에 있어서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상 등은 실전경험이 전혀 없었고 국방문제에는 문외한이었습니다. 241년 손권은 두려워하던 사마의가 권력에서 물러나고 백면서생인 조상과 하안, 등양, 정밀 등이 위나라의 국권을 장악한 사실을 알고 손권 생전에 위나라를 토벌할 마지막 기회로 보았습니다. 이해 손권의 나이 61세였습니다. 손권은 육손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으로 군사를 일으키면서 장휴, 고승, 전서, 전당 등 오나라 명문가의 후손들에게 실전경험을 쌓는 기회를 주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위나라 군은의 대승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러자 오는 5만의 병력으로 번성을 공략하였고 사마의가 나서자 조상, 하안 등은 반대했으나 조정 여론은 번성의 구원을 지지하였으므로 사마의는 직접 출전하여 오군 대파하고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242년에는 사마의는 운하 설치를 건의하여 개설하였고 243년에는 오나라의 제갈각을 몰아내고 연이은 승전을 거듭하여 사마의가 출전할 때마다 천자가 직접 송별해 주는 등 국가원로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조상 진영에서는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고 244년 이승과 등양의 건의를 받아들여 촉을 공격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조상은 관중의 백성들과 인근 저족과 강족을 모조리 동원하였고 소와 말, 당나귀와 노새를 다 강제 징발하였으며 군량 등 물자수송을 위하여 강제 노동을 시켰습니다. 위나라 병사들은  촉군에 막혀 오도 가도 못하였고 촉의 비의의 대군이 도착하여 퇴로를 차단한다는 소식도 듣게 되었습니다. 조상의 대군은 간신히 활로를 뚫고 달아났으나 퇴군하는 길 내내 촉의 유격병들에 의하여 습격당하였습니다. 낙곡에서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은 무수히 많았고 관중 내외에 거주하는 이민족들은 위나라 조정에 원한을 품게 되었습니다. 244년 말에 조상은 회군하여 낙양으로 돌아왔으나 아무런 공적을 내세울 수 없었고 조상은 촉을 정벌하려다가 망신만 당하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촉 정벌에서 돌아온 조상은 떨어진 위상을 만회하기 위하여 권력기반을 강화하는 조처를 취하였습니다. 245년 지휘권이 나뉜 중앙군을 하나로 모아 동생인 조희에게 집중시켰습니다. 사마의는 중앙권 병권이 일원화되는 것에 위험을 느꼈으나 반대의사를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조상과 맞서 싸울 힘이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247년 조상은 황제 조방의 나이가 16세가 된 것을 이유로 친정을 선언하고 태후의 거처를 영녕궁으로 옮겼습니다. 곽태후는 정사에 깊이 간여하지 않았으나 태후가 섭정으로 있는 한 중요 사안에는 태후의 결재가 필수적이었습니다. 조상은 원로집단이 곽태후를 움직일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조방이 친정을 선언한 이후 조상 일파의 국가 권력의 전횡은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이제 아무도 조상을 견제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조상은 음식과 수레, 복장이 황제의 것과 방불하였고 궁전의 상방에서 제작한 보물과 진귀품이 가득 찼습니다.      


247년 사마의의 부인 장춘화가 죽자 사마사는 모친상을 이유로 사직하고 집에 칩거하였습니다. 사마소도 의랑이라는 한직으로 좌천되었으므로 거의 하는 일이 없어서 주로 집에 머물렀습니다. 조용하게 삼부자가 한집에 거주하였으므로 모의하기에 좋은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사마의는 사마사와만 흉금을 터놓고 모의를 진행하였습니다. 사마의와 사마사는 정변을 준비하였습니다. 정변이 성공하려면 3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했습니다. 첫째, 정변을 실행할 최소한의 무력이 있어야 한다. 둘째, 정변이 끝내 성공하려면 조정 내외에 광범위한 지지 세력이 포진되어야 한다. 셋째, 실권을 잡고 있는 측에서 허점을 보여야 한다.      


첫째 조건은 사마사가 평소에 호협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으며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마의는 사마사가 결코 빈말을 하는 성격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마의는 병력 동원은 사마사에게 일임하였습니다. 둘째 조정 내외의 지지를 얻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조상이 정권을 장악한 지 19년 동안 조정 내외에 피해를 당한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은 서민들의 권익을 침탈하고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집권자에게 분노하였고 조상 일파에 대한 적개심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사마의는 자신을 도울 사람들을 찾았습니다. 태위 장제는 절친한 관계였고 책략에도 뛰어났습니다. 사공 고유는 조상 등이 법과 제도를 어지럽히는 것을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사도 위진은 조상을 싫어하였습니다. 조상은 위진에게 상서대를 맡기려고 하였으나 거절하였고 동생과 사돈을 맺으려 하였으나 거절당하였습니다. 광록훈 노육도 이부상서를 담당하다 조상이 집권한 후 하안에게 자리를 빼앗겼습니다. 태복 왕관도 소부에 재직 중 조상, 하안과 알력이 생겨 좌천된 것에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성문교위 손례는 정직하게 일을 처리하다 조상에 의하여 5년의 금고형을 받은 것에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정변에 가담하거나 협조할 사람들은 충분히 조직되었습니다.      


사마의는 외방을 지키는 거기장군 왕릉, 진남장군 관구검, 정동장군 호질 등도 다 변란이 일어나면 자신을 지지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중립을 지킬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사마의는 거사 당일 새벽까지 거사에 참가할 무사들을 사마문 앞에 집결시켜 놓으라고 사마사에게 지시하였습니다. 거사 당일 태위 장제, 사도 고유, 상서령 사마부, 태복 왕관 등이 사마문 앞에 나타났습니다. 각자 집안의 문객들과 가동 몇몇을 무장시켜 데리고 나왔습니다. 이때 사마의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마사가 3,000명의 정병을 지휘해 문 앞 광장에 섰는데 안팎의 질서가 정연하고 군진이 심히 정돈되었습니다. 사마의가 감탄하였습니다.

“이 아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고는 없구나.”      


사마사는 사마의와 모의를 진행하면서 생사를 같이 할 무사들을 극비리에 모집하였습니다. 이들은 각각의 군영이나 관부의 장교나, 병사, 관리인 자들도 있었고 또 그저 낙양성내에서 민간인들 사이에 섞여 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마사가 조직한 창의군은 도합 3,000명이나 되었습니다. 사마의와 함께 거사에 참여하기로 한 사람들조차 이 많은 병사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아는 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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