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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리 Jan 31. 2021

하루가 버거울 때 읽기 좋은 <눈이 부시게> 대사 모음

드라마 대사 모음 | JTBC <눈이 부시게> (2019)

* 엄청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드라마를 보지 않으신 분은 읽지 않는 것을 권장합니다.

주어진 시간을 다 써보지도 못하고 잃어버린 여자와 누구보다 찬란한 순간을 스스로 내던지고 무기력한 삶을 사는 남자, 같은 시간 속에 있지만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두 남녀의 시간 이탈 로맨스


    로그라인만 보면 로맨스 드라마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이 드라마에는 엄청난 반전이 숨겨져 있다. 로맨스 요소는 반전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연막이다. 한지민과 남주혁의 연애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드라마를 본다면 조금은 실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 드라마로 꼽히는 이유는 우리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울림이 너무나도 깊어 기대가 무너졌다는 실망감을 느낄 새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드라마는 따뜻한 대사들로 하여금 우리에게 위로를 건넨다. 내가 너무 애틋할 때, 하루가 버거울 때, 나라는 존재가 한없이 작아 보일 때 한 번씩 읽으면 좋을 대사들이다.






"나는 내가 너무 애틋하거든. 

나란 애가 제발 좀 잘 됐으면 좋겠는데…. 

근데 애가 또 좀 후져."


    최악의 첫 만남으로 기억된 혜자와 준하는 서로에게 가졌던 오해를 풀고 동네 술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나는 이렇게까지 힘들어봤다'며 불행 배틀(?)을 하던 두 사람. 혜자는 결국 마음 속 깊은 한 구석에 담아놓았던 진솔한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오랫동안 아나운서를 꿈꿔왔지만 사실 혜자도 은연중에 알고 있다. 아나운서가 되기 힘들 거라는 걸. 새로운 꿈을 꾸기엔 너무 두렵고 겁이 나서 가망도 없는 지금의 꿈을 꾸역꾸역 안고 가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혜자가 가장 잘 안다.




"나는 내가 너무 애틋하거든. 나란 애가 제발 좀 잘 됐으면 좋겠는데…. 근데 애가 또 좀 후져."


"이게 아닌 거는 확실히 알겠는데, 근데 또 이걸 버릴 용기는 없는 거야. 이걸 버리면 내가 또 다른 꿈을 꿔야 하는데, 그 꿈을 못 이룰까 봐 막 겁이 나요…."








"잘난 거는 타고나야 하지만

잘 사는 거는 너 할 나름이라고."


    오랜만에 대학교 방송부 동창회에 나간 혜자. 짝사랑했던 선배의 얼굴도 볼 겸 방송부 친구들의 근황도 들을 겸, 즐거운 마음으로 동창회에 나갔지만 돌아온 건 '나와의 비교'뿐이었다. 나보다 어린데도 불구하고 방송국 아나운서가 된 후배, 대기업에 들어가 거액의 보너스를 받은 동기. 그리고 그 틈에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만 같은 나. 세월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흘러가는데, 나는 왜 그 세월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지…. 


    자괴감도 들고 자존감이 바닥을 쳐 한바탕 울고 있는 혜자에게 혜자 엄마(이정은)는 이런 말을 한다.




"거기 방송반 모임 가니까 다 잘된 것들밖에 없디? 그걸 거기 가야 알아? 거기 안 가도 너보다 잘난 것들 세상천지야! 너 그럴 때마다 이렇게 질질 짜면서 밥도 안 먹고 드러누워 있으면 그게 방법이 돼? 해결이 되냐고?"


"잘난 거랑 잘 사는 거랑 다른 게 뭔지 알아? 못난 놈이라도 잘난 것들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서 '나 여기 살아있다', '나 보고 다른 못난 놈들 힘내라' 이러는 게 진짜 잘 사는 거야."


"잘난 거는 타고나야 되지만 잘 사는 거는 너 할 나름이라고."






"이것만 기억해놔. 등가 교환.

거저 주어지는 것 없어."


    교통사고가 난 아빠(안내상)를 살리기 위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시계를 수도 없이 사용한 혜자. 그에 대한 대가로 하루아침에 얼굴이 70대 노인(김혜자)처럼 늙어버린다. 혜자는 오빠 영수(손호준)의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젊은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준다. 청춘을 한창 즐기고 있던 25살이었는데 그 시간을 다 누리지도 못하고 한순간에 늙어버린 혜자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해준다.




"너희들 취직 못해서 맘고생 많은데 그럼 늙어, 나처럼. 늙으면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아무것도 안 해도 주변에서 취직하라는 말 안 해."


시청자: 이번에 입사했는데 야근도 많고 부장이 괴롭혀서 힘들어요 ㅜㅜ

"그럼 늙어. 늙으면 일 안 해도 돼."


시청자: 여자 친구가 없어서 힘들어요

"늙으라고. 늙으면 여자 친구 없어도 안 힘들어. 내 몸이 좀 힘들지. 뭐, 또, 뭐. 아무것도 안 해도 돼. 그냥 방 안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면 되는데 얼마나 편해?"




"'등가 교환의 법칙'이라는 게 있어. 이 세상은 등가 교환의 법칙에 의해서 돌아가. 등가 뭐시기가 무슨 말이냐. 물건의 가치만큼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사는 것처럼 우리가 뭔가 갖고 싶으면 그 가치만큼의 뭔가를 희생해야 된다 그거야."


"당장 내일부터 나랑 삶을 바꿔 살 사람? 내가 너희들처럼 취직도 안 되고 빚은 산더미고 여친도 안 생기고 답도 없고 출구도 없는 너네 인생을 살 테니까 너네는 나처럼 편안히 주는 밥 먹고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도 받고 하루 종일 자도 누가 뭐라고 안 하는 내 삶을 살아."


"열심히 살든 너희처럼 살든 태어나면 누구에게나 기본 옵션으로 주어지는 게 젊음이라 별 거 아닌 것 같겠지만은 날 보면 알잖아. 너희들이 가진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당연한 것들이 얼마나 엄청난 건지. 이것만 기억해 놔. 등가 교환. 거저 주어지는 건 없어."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시간을 돌릴 줄 안다는 혜자의 능력은 사실 치매에 걸린 혜자의 망상이었다. 치매로 인해 아들(안내상)과 며느리(이정은)까지 모두 기억 너머로 묻어버린 혜자.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려보라는 아들의 말에 혜자는 남편(남주혁)과 보냈던 시간을 떠올린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경찰의 고문으로 삶을 마감해야 했던 남편. 홀로 남아 편견 어린 시선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며 악착같이 아들을 키워내야 했던 젊은 시절.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저는 아들이 혹여나 이 가혹한 세상에서 뒤처질까 걱정하며 나부터라도 일부러 단호하고 모질게 대했던 가슴 아픈 시간들.


    지난 시간을 떠올리던 혜자는 사랑을 나눴던 그때 그 젊은 모습 그대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준하를 만난다. 작별인사를 할 시간도 없이 헤어져야만 했던 남편, 살아서는 못 다 이룬 그들의 사랑, 하루하루 치열하게 사느라 정작 순간의 소중함을 놓쳤던 지난 날들.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혜자는 눈이 부시게 살아가길 기원하며.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의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부터 부는 달큰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 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JTBC <눈이 부시게>
2019.02.11~2019.03.19 / 12부작
최고 시청률 9.7%
제작사 드라마하우스 / 연출 김석윤 / 극본 이남규, 김수진

* 넷플릭스, 티빙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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