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리뷰 | Netflix <Mindhunter> (2017)
* 지극히 주관적인, 오로지 제 시선에서만 바라본 리뷰입니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시즌1만 보고 작성하였습니다.
1977년, 새롭게 등장한 미치광이 살인자들을 이해할 방법이 없어 좌절한 FBI 요원 홀든 포드가 동료 빌 텐치를 만나 살인범들을 인터뷰하면서 프로파일링 연구의 틀을 잡아가는 이야기
넷플릭스의 페이스북에서 봉준호 감독의 추천작 목록을 봤다. 영화 <아이리시맨(2019)>, <결혼 이야기(2019)>, 그리고 드라마 <마인드헌터>. 두 영화 사이에 끼어있는 드라마를 보고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도대체 대한민국 영화의 거장이 좋아하는 드라마는 어떤 걸까.
(봉준호 감독은 시즌2가 감명 깊었다고 말했지만, 나는 시즌1만 봤다. 아직 보지는 않았지만 이야기의 흐름만 봐도 시즌2가 훨씬 더 재미있어 보인다. 시즌1은 이어질 다음 시즌의 초석을 다지는 느낌이랄까. 시즌1은 긴박한 사건보다는 배경 설명, 주인공이 처한 상황, 주인공의 마음 가짐 등에 초점을 맞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드라마는 꽤나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우리나라 스타일의 수사 드라마를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할 것이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흔히 보여주는 속도감 있는 수사, 위기에 빠져 곤경을 겪지만 음모에 서서히 접근해 가는 주인공,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최종 흑막은 이 드라마와는 거리가 멀다. 다만 전개 속도에 상관없이 입체적인 캐릭터와 몰입할 수 있는 심리전을 좋아하는 시청자라면 이 드라마에 흠뻑 빠지게 될 것이다.
나는 불호와 호 사이, 그 애매한 지점 어딘가에 있다. 사건 해결이 중심이 된다는 시즌2를 본다면 아마 호로 바뀔 확률이 높을 것 같다 :-)
<마인드헌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1970년대 미국은 베트남 전쟁과 오일 쇼크를 겪으면서 사회가 전반적으로 암울한 시기였다. 그래서일까, 60년대까지는 소수였던 연쇄살인이 70년대에 들어서 급증하기 시작한다. 이 작품의 배경인 1970년대 후반은 미국 역사상 살인 범죄율이 가장 높았던 시기라고 한다. 살인 범죄로 관심이 쏟아지는 이 시기에는 아직 프로파일링이 자리를 잡지 못했고 범죄자는 선천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생각, 즉 악은 타고난다는 사상이 지배적이었다.
이때, 주인공 홀든 포드(조나단 그로프)가 궁금증을 던진다.
'정말 태어날 때부터 범죄자가 정해져 있는 걸까?'
홀든 포드는 연쇄 살인범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범죄자의 입을 타고 흘러나오는 범죄 이야기가 꽤 흥미롭다. 이들이 사람을 죽인 이유와 그런 방식으로 죽였던 까닭 모두 그들의 결핍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드라마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들을 소외시킨 세상, 인간 취급도 해주지 않는 사람들, 매일 좌절하고 항상 우울했던 일상. 살인범의 이야기가 저마다 다른데 특색마저 뚜렷하다. 살인범을 옹호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정말 잘 만든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범죄자들의 심리가 정말 섬세하게 잘 드러나 있어서 '캐릭터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과정의 중요성'을 또 한 번 깨달았다. 물론 실제 범죄자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었기에 캐릭터가 더욱 입체적인 거겠지만.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런 드라마를 만든다면 방영도 하기 전에 '가해자 옹호 서사'라는 엄청난 논란에 휩싸일 것 같다. 나조차도 이 드라마를 보면서 아슬아슬하다는 느낌을 여러 번 받았다. 덤덤하게 털어놓는 살인범의 이야기가 살인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논리적이다. 살인을 저지를 나름의 이유도 있는 데다가 그들이 그 당시에 느꼈던 감정을 들으면 얼추 말이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도덕적인 규범을 갖춘 일반적인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저 궤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마인드헌터>에서는 가해자를 옹호하지 않고 사건을 잘 다루고 있을까? '파워 유교걸'의 입장에서 보자면 사실 나는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눈을 찌푸릴 만큼의 잔인한 살인 현장의 사진들로 살인자에게 동화되는 것을 막기는 하지만 너무 찰나의 순간이다.
Cf) 나는 개인적으로 비현실적인 연출이 감정의 몰입, 혹은 공감을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펜트하우스>에서 민설아(조수민)가 오윤희(유진) 때문에 고층에서 떨어져서 흰 조각상에 붉은 피가 튀어 조각상이 붉게 물들어가는 장면에서도, <빌어먹을 세상 따위>에서 제임스(알렉스 로더)가 성폭행범의 목을 칼로 찔러서 막힌 수도관이 터지듯 피가 뿜어져 나온 장면에서도 감정적인 몰입이 깨졌다. <마인드헌터>처럼 가해자와 거리를 둬야 하는 드라마에서는 비현실적인 연출을 활용하는 게 어떨까 생각한다.
홀든 포드의 목표는 매우 뚜렷하다. 살인범들을 면담하며 데이터를 모으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범죄 사건의 해결을 넘어 범죄를 미연에 예방하는 것. 그리고 홀든 포드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정말 충실하게 행동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홀든 포드의 목표를 방해하는 장애물이나 홀든 포드를 위협하는 위기가 없다.
위기는 시즌1의 후반부에 가서야 몰아친다. 홀든 포드는 살인범에게서 자백을 끌어내기 위해 저급한 단어를 사용했던 전적이 발각되어 감찰을 받고, 내부 감사의 압박으로 홀든 포드의 팀이 분열된다. 여기에 더해 홀든 포드의 첫 번째 면담자이자 '살인범 면담'이라는 영감을 준 에드 켐퍼(카메론 브리튼)가 홀든 포드의 목숨을 위협하려고 하고, 그의 여자 친구는 이별을 고한다. 그러나 이 모든 위기가 단 두 화, 9화와 10화에서만 이뤄진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초반부나 중반부에서는 별다른 위기나 장애물이 없다.
무기를 반납해 손에 쥔 거라고는 녹음기와 수첩, 그리고 펜뿐인 홀든 포드가 수갑도 차지 않은 연쇄 살인범을 면담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 순탄하다. 물론 그들도 처음에는 면담을 거절한다. 그러나 피자와 담배 몇 갑이면 금세 입을 연다. 연쇄 살인범이 코 앞에 있고 언제든 그의 심기가 불편해지면 포드의 목을 움켜쥘 수 있다는 긴장감을 더욱 살렸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게 된다면 '살인범을 면담'하는 홀든 포드의 행동이 그의 목표이자 목숨을 위협하는 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심리 묘사는 훌륭했지만, 사건이 아닌 설명을 위한 대사 위주에 느린 전개 때문에 우리나라 드라마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지루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입체적인 악역 캐릭터가 궁금하다면 한 번쯤 보는 것도 추천한다! (시즌2까지 본 친구의 말에 의하면 시즌2가 시즌1에서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이야기라서 훨씬 재미있다고 한다 :-) 나도 곧 봐야지!)
Netflix <마인드헌터>
2017.10.13 / 10부작
원작 존 더글라스, 마크 올세이커 소설 <마인드헌터>
*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