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나 Jan 21. 2021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정인이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분노와 주체 할 수 없는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그런데 오늘  47개월 아이가 친부모에게 폭행당해 두개골이 골절되어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며, 더 이상 할 말을 잃어버렸다.  


어린아이에게 부모는 처음 만나는 세상이고 온 우주이다. 그런 부모가 자신을 학대한다는 것은 그 아이의 온 세상이 무너는 절망감과 고통을 그 아이에게 안겨주고, 앞으로 그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 불신의 안경을 씌워준다.


타인에게 학대를 당했던 피해자들은 가해자를 마음껏 미워할 수 있다. 그들은 가해자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며 스스로를 지키고 치유할 수 있다. 하지만 부모에게 학대당한 아이들은 부모를 미워해서도 안되고, 미워할 수도 없다. 그러다 부모의 사랑을 잃게 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신이 아무 잘못 없이 학대를 당하더라도, 전부 자신이 잘못한 거라 생각한다. 부모를 미워하는 것보다 차라리 본인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이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신체적 학대는 신체뿐만 아니라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상처를 남긴다. 존재만으로도 귀한 아이들은 학대를 받으며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점점 잃어버리게 된다.


아이는 순결하고 무고하며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로 태어난다. 그런 존재의 귀함을 알기 때문에 나에게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늘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한 생명을 키운다는 것은 사랑과 책임 외에도 많은 것이 필요한 여정이다. 경제적 능력이 있더라도,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나와 아이 모두에게 더 큰 상처가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주변에서 아이를 통해 오히려 자신의 어린 시절의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지만, 나의 치유를 위한 목적으로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 온전히 아이를 위해 사랑을 줄 수 있는 건강한 상태가 되었을 때 아이를 갖고 싶다.


완벽한 부모는 될 수 없다 하더라도, 아이를 때려서는 안 된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이에게는 죄가 없다.안타까움에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