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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남 Apr 26. 2024

한국 남자가 주부로 산다는 것

현모양부는 존재할 수 없는 걸까?


"뭐 하시는 분이세요?"

"저, 주부예요."


주부(主婦, 主夫) / Housewife, Homemaker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서 꾸려가는 사람

가정에서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


세상 사람들은 나를 부러움의 눈으로 바라볼까? 아니면 한심한 눈빛을 보낼까? 나는 이 물음에 쉽게 답해줄 수가 없다. 주부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많은 이들이 Stay-at-home mom/dad(전업주부)를 떠올리기 때문이겠다.


나는 실제로, 전업주부를 꿈꾸는 사람이다. 나의 아내가 나보다 더 높은 사회적 위치, 더 윤택한 경제권을 지닌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런 나의 바람을 당당히 밝혔다가는 당장 나의 부모로부터 깊은 갈등의 골이 시작될 것이다. '남자가 자존심이 있지. 한심하게 그런 생각을 해?' 하며 호통칠 것이 눈에 훤하다. 그리고 나 역시도 어느 정도 전통을 무시하지 않고 남자는 처자식을 먹여 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딱히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말하는 주부란 '가정에서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집안일을 좋아한다.

물론 나에게도 집안일이란 귀찮고, 매일 해도 어느새 돌아서면 다시 해야 할 것들이 쌓이는 그런 것이다. 다만 조용히 한숨을 한번 푹 쉬고, 해야 할 작업에 몰두한다. 옷을 개고, 종류별로 가지런히 정리한다. 바닥에 머리카락이 보인다. 청소기를 돌린 김에 바닥 청소를 말끔히 마친다. 주방 싱크대에 설거지를 끝낸 그릇과 수저세트를 찬장에 정리해놓고 보니, 가스레인지에 이물질이 묻어 신경에 거슬린다. 세제로 때를 불린 후 행주로 반짝반짝 닦는다. 기왕 여기까지 했으니, 여기저기 산개 된 책들을 가지런히 모아 세워둔다. 책장에 원하는 형태로 잘 정리가 안된다. 전부 끄집어내서 새로운 정리법을 이용해 가능한 삐져나오는 것 없이 정리한다.


이렇게 한참을 정리해 낸 뒤 집 안을 한바뀌 싹 돌아본다.

'개운하다.'

시계를 본다. 대략 30분 정도 걸린 듯하다.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닌, 이 일들이. 누군가에겐 다소 괴롭고 힘든 일인 듯싶다. 아마도 우연이겠지만, 나와 같이 사는 사람에게만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 듯싶다.


'이 정도는 평소에 이렇게 정리해 놓으면 편하지 않을까?'

'너는 청소를 그다지 잘하는 건 아닌 듯싶네.'


본인은 결코 그런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자신은 자신만의 정리 방법이 있고, 나중에 한 번에 할 거니까 전혀 문제가 없단다.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오늘 입었던 저 재킷, 옷방이 주방보다 더 가까운데도 버젓이 식탁 의자에 걸린 저 재킷, 심지어 이미 그저께 입은 운동복 바지가 걸려있음에도 투명 바지라서 그 위로 쌓아 올려진 저 재킷. 알아서 치울 거니까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하는 저 재킷은 결국 내가 그녀 모르게 치우게 되기까지 앞으로 4일간은 저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여전히 사회에서 일을 한다. 돈을 벌기 위한 노력을 한다. 녹록지 않다. 심지어 그다지 잘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편하게 살고 싶어서 주부를 생각한 적은 단 한순간도 없다.


나는 당당히 말하고 싶다.


"나는 주부가 딱이야."


나는 주부로 살고 싶다. 이러한 목소리를 당당히 낼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을까. 기왕이면, 이러한 내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이 내 옆에 있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물론, 다행히 그녀도 아는 듯싶다.


"내가 보기에도 넌 주부가 체질이야. 야무져 아주."


그녀와 나 사이에는 이미 숱한 갈등을 이겨내고, 어느 정도 집안의 룰이 정해져 있다. 가끔은 이런 나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기를 바라지만, 한국에서 집안일의 중요성은 남자에게만은 그다지 중요한 역할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은 듯싶다. 도와줘서 고맙긴 하지만 (거의 모든 대부분을 내가 하고 있음에도) 그보다 더 중요한 일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 너의 능력은 충분히 더 좋은 곳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말과 함께.


나는 그녀의 일에도 보탬이 될 수 있다. 부족하게나마 사회 경험도 쌓은 덕에(사업을 오랫동안 해왔으니) 그녀가 회사에서 더 좋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내조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다. 고된 회사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함께 상사 욕을 해줄 수도 있고, 그녀의 필요에 따라 현실적인 조언과 더 넓은 시야를 제공해 줄 의향도 있다. 외벌이로는 윤택한 삶을 살기에는 힘든 현실이지만, 만약 한 명에게 기회가 있고 더 넓은 세상에서 높은 자리를 향해 올라갈 수 있도록 내가 서포트할 수 있다면, 그 이상 더 좋을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과연 나는, 한국에서 주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아직은 요원해 보이는 내 작은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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