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의리축구’의 시작인가?-
2024년 홍명보 의리축구의 축이 고려대학교에서 울산 HD로 옮겨간 것일까. 아니면 홍명보 감독이 그 의리축구의 핵심인 걸까. 지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부터 2014 브라질 월드컵으로 이어진 ‘홍명보-박주영’의 의리축구 논란은 고려대를 고리로 한 개인적 차원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대표팀 명단은 특정 개인이 아닌 울산 HD라는 보다 심화·확장된 차원의 의리축구를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지난 26일,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오는 9월 5일 팔레스타인, 10일 오만과 열리는 2026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에 나설 26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이번 명단에 대해 홍 감독은 ‘안정적이면서 미래지향적인 선수들’로 구성했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 대표팀의 축을 담당하던 손흥민, 이재성, 김민재, 황인범 등의 선발과 K리그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양민혁, 황문기(이상 강원), 최우진(인천) 등의 선발을 보면 일견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이번 26명의 선발 명단에서 홍명보 감독의 직전 직장인 울산 HD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선수만 10명이다. 즉, 무려 38.4%의 선수가 현재 울산 HD 소속이거나 홍명보 감독과 울산 HD에서 같이 뛰던 선수들 인 것이다. 이에 이번 명단을 두고 다시 한번 대한민국 축구에 ‘의리축구’가 부활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2010년으로 돌아가보자. 편의상 2012년 런던올림픽부터 2014년 브라질월드컵까지를 홍명보호의 1기라고 하겠다. 당시 1기 홍명보호는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그 중심에는 홍명보 감독의 고려대학교 후배 박주영 선수가 있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준결승전에서 한국 대표팀은 숙적 일본을 물리치며 올림픽 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한일전에서 보여준 박주영 선수의 드리블은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현란했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 홍명보 감독의 박주영 와일드카드 선택은 결과적으로 성공이었으나, 과정에서 이미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당시 박주영 선수는 AS모나코 소속으로 있으면서 모나코 공국으로부터 장기 체류 허가를 받았다. 이것이 법적으로 문제는 아니었으나, 병역 기피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런 상황에서 홍명보 감독은 박주영 선수를 직접 설득했고, 심지어 기자회견에 함께 나와 ‘박주영이 군대에 안 가면 내가 대신 가겠다’며 형님 리더십을 한껏 보여주었다.
2년 후, 2014 브라질월드컵은 그야말로 처참한 실패였다. 2년 전 현란한 드리블의 박주영은 온데간데없고, 그 유명한 박주영 ‘따봉’만을 남기고 말았다. 월드컵 예선 2경기에서 박주영은 무득점은 물론 단 한 개의 슈팅도 기록하지 못했고, 동료 패스를 향해 ‘따봉’만을 남기며 조기교체되었다. ‘0득점, 0슈팅, 1따봉’이라는 비아냥과 함께, 벨기에와의 마지막 경기에는 그저 벤치에 있어야 했다.
결국 월드컵 개막 전부터 시작된 홍명보 감독의 ‘의리축구’ 논란은 월드컵이 끝나면서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당시 의리축구 논란이 심했던 이유는 홍명보 감독이 스스로 내세웠던 선수 선발 원칙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2013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으며 홍명보 감독은 선수 선발과 관련해 ‘소속팀에서 꾸준히 경기에 출장하는 선수를 뽑는 게 원칙’이라고 분명히 제시했다. 이 원칙에 따라 프리미어리그 아스널 전력에서 제외된 박주영을 1년 가까이 소집할 수 없었다. 그런데 별안간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홍명보 감독은 자신의 원칙을 스스로 저버리며 박주영을 선발한 것이다.
브라질월드컵에서 1무 2패를 기록하며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처음으로 본선 무승 탈락이라는 수모를 기록했다. 브라질 월드컵 이후로도 홍명보 감독과 관련해 ‘의리축구’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논란의 종지부를 무려 10년이 지나 홍명보 신임 감독이 스스로 찍었다. 홍명보 감독은 지난달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당시 의리축구 논란에 대해 ‘10년 전엔 정보가 많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깊게 파악하고 있는 선수 중에서 뽑았다’고 밝히며, 당시 ‘의리 축구였다는 지적을 받아들인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2기 홍명보호에서는 ‘의리축구’는 사라질 것처럼 보였다.
이 같은 기대와 달리 홍명보 감독의 의리축구는 심화·발전된 것처럼 보인다. 26일 처음 발표한 명단에서 홍명보 감독은 자신의 직전 직장이던 울산 HD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선수만 무려 10명, 38.4%를 선발한 것이다. 현재 울산 HD 소속 5명(조현우, 김영권, 이명재, 정우영, 주민규), 이적 직전 홍명보 감독과 울산 HD 소속이었던 5명(설영우(즈베즈다), 정승현(알 와슬), 박용우(알 아인), 이동경(김천), 오세훈(마치다))이다. 이로 인해 벌써부터 여러 비판이 나오고 있다. K리그에서 맹활약 중인 이승우, 지난 시즌 스토크시티의 MVP 배준호, 제2의 박지성으로 불리며 벨기에 헨트 주전 미드필더 홍현석, 스위스 리그로 이적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영준 선수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필자는 선수 선발 관련 전권은 감독에게 있으며, 단순히 특정 구단 소속의 선수가 많다는 것만으로 감독을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실제 유럽의 축구 선진국에서도 자국 리그 특정 팀 소속의 수비 라인을 대표팀으로 그대로 옮기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탈리아가 그런 경우다. 그러나 이것은 선발된 선수들이 현재 소속팀과 리그에서 확실한 성과와 폼을 보여주는 것을 전제로 한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당시처럼 박주영 선수가 아무리 벵거의 아스널 소속이라고 하더라도 리그 경기에 출전 횟수가 전무하다면, 과연 그 선수를 선발하는 것이 맞는가.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선수 선발과 관련해 ‘의리축구’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선수들이 여럿 있다. 공교롭게도 그들이 대부분 현재 울산 HD 소속이거나, 이적 직전 울산 HD 소속이었던 선수들이다. 박용우, 주민규, 오세훈, 김영권 등의 선수들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박용우 선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2022-23 시즌 울산에서 빼어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클린스만 감독 체제의 아시안컵 내내 저조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결정적인 실점의 빌미가 되는 실수는 물론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속도와 수비력에서 거의 낙제점을 받았다.
공격 라인에서는 주민규, 오세훈 선수 모두 최근 폼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주민규 선수는 최근 K리그 9경기에서 단 1골에 그치고 있다. 시즌 전체로 살펴봐도 26경기에서 8골만 기록하며 지난 시즌과 달리 확실히 경기력이 떨어진 상태다. 여기에 더해 최근 수원 FC와의 경기에서는 공과 전혀 상관없이 상대 선수를 가격하며 다이렉트 퇴장까지 당했다. 일본 J리그 마치다 소속의 오세훈 선수도 최근 성적이 우려스럽다. 마치다로 이적하며 올해 초에는 팀 돌풍의 핵심이었으나, 지난 5월 세레소 오사카전 득점 이후 무려 세 달이 넘도록 무득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두 선수의 부진, 붙박이 주전이던 조규성 선수의 부상 등으로 수비와 미드필더에 비해 공격진 구성에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전혀 대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 스위스 그라스호퍼로 이적한 이영준 선수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영준 선수는 190cm가 넘는 큰 키를 활용한 포스트 플레이가 좋고, 유럽 선수들을 상대로도 전혀 밀리지 않는 볼 경합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바이에른 뮌헨과의 친선전에서 김민재, 에릭 다이어, 고레츠카로 이뤄진 뮌헨 수비진들을 상대로 공중볼 경합에서 7회 시도에서 5회 성공했다. 또한 지난 25일 스위스 리그에 출전한 이영준 선수는 공중볼 경합에서 5회 시도해 4회를 성공했으며, 패스 성공률은 무려 87% 기록하며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이를 바탕으로 이날 경기에서 선제골까지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이번 ‘의리축구’의 핵심은 수비라인의 김영권 선수라고 할 수 있다. 김영권 선수는 지난 10년 가까이 한국 수비라인의 핵심이었고, 특히 왼발을 사용하며 경기 조율과 전진패스가 미드필더급으로 뛰어난 수비수다. 이에 전투적인 스타일의 김민재 선수와 오랫동안 한국 축구의 수비를 책임졌다. 그러나 아시안컵 이후 이번 시즌 김영권 선수의 폼은 확실히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K리그 2024 시즌 김영권 선수는 실점의 직접적인 빌미가 된 실수만 무려 4차례 기록했다. 경기장에서 90분 동안 보이지 않다가 1골을 기록하면 그 골로 기억되는 게 공격수라면, 90분 동안 잘하다가 결정적인 실수로 1골을 내주게 되면 그 실점으로 기억되는 게 수비수다. 그런 측면에서 최종 수비수, 그것도 한국을 대표했던 김영권 선수가 시즌 전반기에 그런 실수를 무려 4차례가 기록했다는 건 믿기 힘든 수치다. 3라운드 인천전, 5라운드 대전전,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요코하마전, 그리고 12라운드 김천전까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김영권 선수는 지난 6월 1일 전북전에서 부상을 당하고 두 달 넘게 재활에 매진했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김영권 선수를 선발하는 것이 맞는지, 이를 두고 홍명보 감독이 의리 축구의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번 선수명단을 보며 괜히 10년 전 박주영 선수가 받았던 비난의 화살이 김영권 선수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러나 단순히 선수선발이 아닌 지난 20여 년 간 한국 축구의 맥락에서 의리, 인맥축구의 가장 큰 수혜자는 ‘홍명보 감독’이다. 아래는 홍명보 감독의 공식 프로필이다.
- 2002 대한축구협회 이사
- 2006.7~2007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제18회 독일 월드컵)
- 2007~2008 제29회 베이징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 2009.2 U-20 청소년 국가대표팀 감독
- 2009.10~2012 제30회 런던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2013.6~2014.7 제20회 브라질 월드컵 국가대표팀 감독
- 2017.11~2020.12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
- 2020.12~2024.7 울산 HD 감독
- 2024.7 국가대표팀 감독
완벽한 커리어다. 2002년 월드컵 4강과 함께 대한축구협회 이사가 된 홍명보.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코치 라이센스가 없는 상황에서도 국가대표팀 코치로 월드컵에 참여한 홍명보.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최강희 임시 감독이 떠나자 정몽규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의 전폭적인 신뢰 속에 대표팀 지휘봉을 이어받은 홍명보. 처참한 월드컵 실패에도 불구하고 축구협회의 유임 결정을 받은 홍명보(비록 당시에는 사퇴했지만). 이후 중국 2부 리그에서 실패하고 다시 대한축구협회 전무로 돌아온 홍명보. 그리고 화룡점정은 2024년 면접 과정도 없이 다시 한번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한 홍명보.
심지어 얼마 전 정몽규 현 축구협회장은 자서전에서 지난 2020년 홍명보 당시 대한축구협회 전무에게 축구협회장 출마를 권유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홍명보 감독과 의리축구는 바늘과 실의 관계처럼 보인다. 어쩌면 이번 2기 홍명보호의 첫 선수 선발 명단에 무려 38.4%의 선수가 전/현직 울산 HD 선수라는 게 당연해보이기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