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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yper Feb 21. 2024

[한국-쿠바 수교] 윤석열정부, 훼방꾼이라도 되어라!

-1차원적인 쿠바와의 수교-

 지난 15일 오전 9시, 현직 기자인 친구가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카톡 대화 내용>

친구: 이번 쿠바와의 수교는 어떻게 생각해? 

나: 뭐야? 갑자기 쿠바랑 수교를 했어?


 기자 친구의 카톡을 받고 나는 두 가지가 궁금했다. 하나는 ‘언제’ 두 정부는 수교에 합의했는지였으며, 다른 하나는 ‘어떻게’ 이 수교과정이 이루어졌을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사진-1> 2024년 2월 14일, 한국과 쿠바가 미국 뉴욕에서 양국의 유엔 주재 대표부가 외교 공한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한국이 쿠바와 수교를 했다고?


 전자의 경우는 친구의 카톡 메시지를 받기 전까지 체 게바라로 우리에게 익숙한 쿠바와 우리 정부가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한다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쿠바가 북한과 가까운 사회주의 국가인 것도 있지만, 그보다 이와 관련된 어떠한 언론보도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정부의 국무위원들조차 수교 사실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하루 전날인 13일 국무회의에서야 알았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미국 측에도 수교를 발표하기 몇 시간 전에 이 사실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이번 쿠바의 외교관계 수립은 그야말로 전격적으로 성사된 것처럼 보인다. 


 후자의 경우는 과연 이번 수교과정이 한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한 것인지, 아니면 미국 정부의 전략 하에서 이루어진 것인지에 대한 여부였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지난 2년 동안 한국 정부의 거의 모든 외교는 미국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 하에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의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는데 우리 정부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개최된 한미일 정상회담이며, 최근 한국 정부가 NATO 회원국이 아님에도 2년 연속 NATO 정상회의에 참석한 일이다. 우리 정부는 최근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데 마치 대한민국이 자유주의 진영의 선봉장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윤석열 대통령은 그렇게 요란하게 외쳐댔지만, 실제 우리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얻은 실질적인 국가이익은 전무하다. 오히려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가 무너지면서 무역수지에 적신호가 켜졌다. 


 그럼에도 이번 쿠바와의 수교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 가운데 그나마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정책이다. 그 이유는 우리 정부가 미국의 지시를 그저 수동적으로 따른 것이 아닌 지난해부터 나름 공을 들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실이 평가하듯이 이번 수교가 ‘사회주의권 외교의 완결판’이며, ‘북한으로서는 상당한 정치적·심리적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든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의 외교 지평이 더 확대됐다’고 자화자찬하는 것은 차마 눈 뜨고 보기가 어렵다. 


이번 수교의 출발은 김대중 정부였다! 


 그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첫째, 이번 수교는 단순히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이 아니다. 한국과 쿠바의 외교관계는 1949년 쿠바가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하면서 시작된 나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쿠바의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내부적 요인과 냉전이라는 외부적 요인으로 한국과 쿠바는 1959년 이후 공식적인 외교관계가 단절되었다. 이 시기 쿠바는 이념적 요인으로 인해 북한의 형제국가로 평가되고 있다. 


<사진-2> 2018년 미겔 디아스카넬 당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공식환영을 받고 있었다 (출처: 아주경제)

 이러한 상황에서 쿠바에 처음으로 공식 수교를 제안한 것은 2000년 4월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당시 남북 정상이 분단 이래 최초로 정상회담을 가진 6.15 남북공동선언을 고려하면,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하면서 북한의 형제국가인 쿠바와의 관계개선도 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이듬해 2001년 4월에는 당시 이만섭 국회의장이 쿠바를 직접 방문했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만섭 국회의장은 국제의회연맹총회에서 카스트로 의장에게 한반도 평화를 위해 남북한을 동시에 방문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당시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같은 해 12월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하며 한반도에 평화적인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이에 김대중 정부는 단순히 북한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쿠바와도 외교관계 수립을 위해 주도적으로 움직였다고 할 수 있다. 


 비록 김대중 정부의 노력이 수교라는 결실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이러한 노력은 2005년 9월 코트라(KOTRA) 아바나 무역관 개설로 이어진다. 이후 진보/보수 정권 모두 쿠바와의 외교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예를 들어,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쿠바에 영사 관계 수립을 제안했으며, 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 외교부 수장이었던 윤병세 장관과 조태열 제2차관(현 외교부장관)이 쿠바를 직접 방문해 수교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다. 또한, 2018년 문재인 정부 당시 강경화 외교부장관도 한-쿠바 외교장관 회담을 열고 연락사무소 개소를 제안했다. 


 그러나 현재 다수 언론과 대통령실은 마치 이번 수교가 윤석열 정부 들어서 처음 추진한 정책인 것처럼 보도하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는 아래 그래픽에서 볼 수 있듯이, 김대중 정부가 기울였던 외교적 노력은 물론 다른 정부들의 노력은 (의도적으로) 생략하고, 윤석열 정부의 행보만을 부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은 마치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영도력’을 발휘해 북한에게 ‘상당한 정치적·심리적 타격’을 입힌 것처럼 선전선동을 하고 있다. 


<사진-3> 16일, 조선일보는 한국과 쿠바의 수교 관련 기사를 보도하면서 (의도적으로) 이전 정부의 외교 사실들이 생략된 그래픽을 제작했다. (출처: 조선일보)


대통령실의 허황된 꿈


 둘째, 궁극적으로 이번 수교로 인해 한반도 외교에서 북한은 또다시 ‘변수’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수교에 대한 여러 전문가들의 분석은 물론 대통령실의 발표를 보면, 쿠바와의 수교를 통한 한국 정부의 궁극적인 목적은 북한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대통령실은 “이번 수교는 결국 역사의 흐름 속에서 대세가 어떤 것인지, 또 그 대세가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히 보여준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스스로 이 같은 평가를 하는 것 자체가 윤석열 정부가 이번 수교를 얼마나 1차원적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김대중 정부와 같이 진보정권에서 북한과 쿠바를 동시에 접근하는 것은 두 국가와의 관계개선을 통한 한반도 평화정착이 목적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와 같은 보수정권에서는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고립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북한도 이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쿠바의 수교가 발표 그 순간에는 북한에게 충격이 될 수 있지만, 북한에게 우리 정부가 기대하는 실질적인 타격은 미미할 것이다. 그 이유는 이미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어 있고, 이 수교 이후에 쿠바가 비공식적으로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양해를 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실질적으로 북한을 고립시키고자 했다면, 오히려 쿠바와의 수교 협상에서 한편으로는 북한과의 대화창구를 보유하고 있었어야 한다. 이 대화창구의 목적은 진보정권과 같이 적극적인 대화와 타협이 아니다. 북한이 한반도 문제를 두고 일본을 비롯한 다른 국가와 외교를 할 때 우리 정부를 패싱 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북한도 기본적으로 남한은 물론 보수정권에 대한 불신이 크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에 최소한 이러한 대화창구를 통해 북한이 급격하게 외교노선을 선회하거나 외교의 주도권을 가져가지 않도록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이 중요하다. 쉽게 말해 북한의 외교에 ‘훼방꾼’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남한의 보수정권에서 특히 ‘훼방꾼’ 역할이 필요한 이유는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 행위자들이 북한은 주요 독립변수로 생각하지만, 남한은 미국의 종속변수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와 언론을 통해 한반도 문제를 보면 이러한 경향은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외신과 외국 정부들은 한반도 문제는 곧 북한의 핵문제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경향에서 한반도 문제는 결국 그들이 북한을 어떻게 다루느냐로 귀결된다. 즉 미국, 중국과 같은 국가들이 북한과 어떻게 협상 또는 억제하느냐가 그들의 주된 관점이다. 한반도에 위치한 대한민국은 전혀 낄 자리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수로 우리(보수정권)가 주도적으로 북한을 고립시킬 수 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우리 정부가 수교를 발표하고 바로 다음 날인 15일 북한 김여정 부부장은 담화를 발표했다. 이 담화는 우리 정부와 쿠바의 수교에 대한 논평이 아닌 북일정상회담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 발표에서 김 부부장은 일본이 납치자 문제 등 몇 가지 사안에 대해 서로 합의한다면 일본의 기시다 총리가 ‘평양을 방문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16일 기자회견에서 북한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진-4>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출처: 조선중앙 TV)

 결국, 북한은 우리 정부의 수교행보에 북일정상회담이라는 이슈로 맞대응하면서 한반도 외교에서의 주도권을 다시 가져가는 모양새다. 특히, 자존심이 강한 북한으로서는 자신들을 겨냥한 이번 쿠바 수교의 의미를 간파하고 외교 전술을 펼치기 시작한 것으로 봐야 한다. 대통령실의 발표처럼 윤석열 정부가 취임하면서부터 쿠바와의 수교에 공을 들였다면, 초기부터 쿠바와 함께 북한과 간헐적 대화창구를 마련하는 투트랙으로 접근해 한반도에서의 외교 주도권을 이렇게 쉽게 내주지 않도록 관리했어야 한다. 대통령실이 말한 ‘대사회주의권 외교의 완결판’이었던 이번 한국-쿠바 수교의 파급은 북한의 북일정상회담이라는 맞대응으로 하루 만에 그 효과가 사라져 버린 셈이다. 


윤석열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쿠바와 수교를 공식화한 윤석열 정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는 한반도 외교의 맥락에서 ‘훼방꾼’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하며, 다른 하나는 쿠바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후손을 잘 대접해야 한다. 


 그동안 보수정권들은 북한의 외교적 고립을 시도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제로는 남한 정부가 한반도에서 외교적 고립을 면치 못했다. 예를 들어, 겉으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각각 비핵개방 3000과 한반도신뢰프로세스를 내세웠지만, 실제로 미국과 함께 그 어떤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이유는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를 기치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수 정부는 미국을 설득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제3자인 미국이 가만히 있으니 당사자인 한국 정부도 그저 눈치 보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면서 한반도 외교에서 변수는 ‘북한’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북한은 외교적으로 고립이 아닌 중심에 서는 결과가 되었다. 보수정권은 이러한 과거를 면밀히 살펴보고 북한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고자 한다면, 북한 외교에 있어 확실한 ‘훼방꾼’ 역할을 해야 한다. 대통령실은 말만 하지 말고, ‘대세가 어떤 것인지, 대세가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이번 쿠바와의 수교를 통해 윤석열 정부가 그 무엇보다 역점을 두어야 하는 부분은 1921년 일제강점기 멕시코에서 쿠바로 이주한 한인 후손 1,100여 명을 정부차원에서 살피는 것이다. 쿠바에 정착한 1세대 한국인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시간의 춤]에 따르면, 1905년 제물포항에서 1,033명의 한국인이 일포드호를 타고 멕시코로 이민을 간다. 그리고 이 가운데 300여 명이 1921년 다시 쿠바로 건너가는데, 이들이 바로 1세대 한국인이다. 이 300명 가운데 임천택의 아버지 임은조 씨도 있었다. 임천택 씨는 그 머나먼 타국에서 힘든 삶을 살면서도 조국을 잊지 않았고, 직접 농장에서 학교를 설립해 한글을 가르쳤다. 이 임천택씨가 바로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 기록된 ‘쿠바의 임천택’이다. 백범일지 321페이지에 보면, “쿠바의 임천택·박창운 등 제씨가 임시정부에 후원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머나먼 타국에서 조국을 잊지 않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상해 임시정부에 후원했던 그들의 후손 1,100여 명이 쿠바에 있다. 우리 정부는 독립 이후 70여 년의 세월 동안 그들을 기억하지도, 돕지도 못했다. 이번 수교를 통해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돕는 것이 이번 수교의 어찌 보면 가장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쿠바와의 수교를 울었던 현직 기자 친구의 카톡에 이렇게 답을 했다. 


“나는 다른 것보다 이 수교를 계기로 쿠바에 계신 그 후손들을 정부 차원에서 챙긴다면 나는 그것이 윤석열정부라 하더라도 무조건 칭송할 거야!” 


<사진-5> 1937년 ‘아바나 지방회 3·1절 기념식’에 자리한 대한인국민회 대표들 모습이다. 이들의 후손들이 지금 쿠바에 1,100여 명 있다. (출처: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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