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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yper Apr 30. 2024

고장 난 윤석열 정부의 GPS

-2024년 G7 정상회의에 초청받지 못한 대한민국 외교-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Global Pivot State)”


 최근 한국 외교와 관련된 기사를 보면 ‘글로벌 중추 국가’라는 표현을 쉽게 볼 수 있다. 글로벌 중추 국가는 윤석열 정부의 6대 국정목표 가운데 하나다. 2022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며 제40대 외교부 수장으로 임명된 박진 전 장관은 이 표현의 영문명을 보고 GPS라고 명명했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내비게이션, 길 찾기 시스템 등 매일 활용하는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기능을 국정목표이자 외교 방향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를 두고 당시에는 한국 외교의 방향성을 잘 표현한 것이라며 자화자찬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윤석열 정부의 외교는 GPS가 잘못 작동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진-1> 지난 22일, 윤석열 대통령이 롯데호텔에서 열린 재외 공관장 만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출처: 머니투데이)


 그렇다면, 지난 22일 2024년도 재외공관장 회의 만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우리 정부의 시그니처’라고 강조한 ‘글로벌 중추 국가’란 무엇일까?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글로벌 중추 국가 비전은 대한민국이 지정학적 숙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국력과 위상에 걸맞은 더 큰 역할과 기여를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국제사회에서 선진국과 개도국 간 소통과 타협의 촉진자, 개도국의 번영과 국제 공공제 증진에 기여하는 후원자, 새로운 국제규범 제정 작업을 주도하는 선도자 역할”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좋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느낌은 있지만, 여전히 모호하다. 이 모호한 개념에 대해 국립외교원이 운영하는 국민외교아카데미에서 중추국가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강대국이 탐내는 군사적, 경제적 또는 이념적 전략 자산을 가지는 국가”
“국제정치 질서에서 상황 변화 과정에 ‘가장 중심적이고 가장 중요한’ 행위자”


 이렇게 중요한 국가가 오는 6월 이탈리아에서 개최되는 G7 정상회담에 초청받지 못했다. 글로벌 중추 국가를 자임하는 한국은 2020년, 2021년 각각 미국과 영국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에 연속으로 초청을 받았고, 지난 2023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에 초청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해 G7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윤석열 정부는 'G7 플러스 외교'를 펼치며, 마치 한국은 곧 G7의 새로운 회원국이 될 것 같았다. 심지어 여권에서는 한국이 ‘심리적 G8’ 국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런 글로벌 중추 국가가 2024년 G7 정상회의에 초청받지 못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 GPS가 고장 난 것처럼 보인다. 

     

G7 정상회의에 대한 반응들


 G7은 국제 정치·경제 사안에 대해 토의하는 서방(Western) 7개 선진국 정상 간의 다자협의체다. 현재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기구는 1970년대 소위 오일 쇼크로 알려진 세계경제 위기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7개 국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G7 회원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들이다. 불과 70여 년 전 전쟁을 겪고, 여전히 분단된 국가인 한국이 이런 협의체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세계가 주목할 사안일 뿐만 아니라 우리 입장에서는 엄청난 외교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사진-2> 2023년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에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이러한 배경에서 윤석열 정부는 지난 2023년 일본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초청을 받자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환영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특히 이러한 일본 정부의 조치를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에 따른 결정’이라며, 윤석열 정부의 외교성과인 것처럼 자평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를 포함해 호주, 베트남,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코모로, 쿡제도를 함께 초청했다.) 급기야 언론과 여당은 다소 노골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였다. 2023년 5월 15일 자 문화일보는 윤석열 정부가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들과의 양자회담을 통해 한국의 G8 진입을 위한 외교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 이후 한·일 관계가 개선되어 한국의 G8 입성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는 것이 외교가의 중론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여러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은 심리적 G8 국가’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한국은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곧 G8 국가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얼마 전 외신을 통해 오는 6월 이탈리아에서 개최되는 G7 정상회담에 한국 정부가 초청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에 대통령실은 지난 20일 언론에 'G7 초청 문제 관련 참고자료'를 배포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 자료를 통해 "올해 의장국인 이탈리아는 자국 내 이민 문제와 연결된 아프리카·지중해 이슈 위주로 대상국들을 선정“했다며, 의장국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야당과 언론의 비판을 의식했는지 윤석열 정부는 G7과 주요 국제 현안에 대해 ‘연중 상시 공조 형태’를 유지하며 올해도 여러 장관급 회의에 초청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애써 의연하게 대처하고자 했던 윤석열 정부에 대해 22일 중국 환구시보의 영문판인 Global Times는 G8 회원국이 되고자 했던 한국 정부의 바람이 ‘산산이 조각났다’(shatter)고 일갈했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무엇이 문제인가?


 윤석열 정부는 2024년 G7 정상회담에 초청받지 못한 것을 두고 그들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023년 의장국인 일본이 우리 정부를 초청한 것은 미국과 일본의 인도·태평양 외교전략에서 한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의 국내정치를 면밀히 검토하는 미국과 일본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충실하게 대변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국내 지지여론은 그들에게도 중요하다. 한국에서 윤석열 정부에 대한 긍정평가가 높을수록 윤석열 정부가 미국과 일본의 이익에 부합하는 외교정책을 펼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과 일본은 한국을 G7 정상회담에 초청해 한국 정부가 이를 윤석열 정부의 외교 성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올해 G7 정상회담의 의장국인 이탈리아와 유럽의 관점에서 윤석열 정부는 그들에게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윤석열 정부 이후 한국은 외교무대에서 미국이 원하는 대로 의견을 피력할 뿐이다. 그 외에는 북한 인권과 같은 이슈에 대해서만 간헐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 세계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후, 이민자 등과 같은 이슈에 대해서는 윤석열 정부의 목소리가 없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관점에서는 한국을 주요 행위자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지난 2022년 G7 정상회담의 의장국이었던 독일이 윤석열 정부를 초청하지 않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국제정치 현실은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그리고 국내정치와 달리 특정 국가의 전쟁과 같은 분명한 범죄에 대해서도 국내정치와 같이 강력한 처벌을 할 수 없는 국제정치의 현실은 가혹하다. 최병구 전 노르웨이 대사는 자신의 저서에서 “외교관이랑 가장 불쾌한 일을 가장 유쾌하게 말하고, 이웃의 목을 자르면서도 목 잘린 사람이 그런 줄 모르게 하며, 지옥으로 가라는 말을 하는데 듣는 사람이 그 여행을 손꼽아 기다리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이게 곧 외교의 현실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2년 동안 미일 중심, 그리고 다양한 행위자들이 참여하는 다자외교보다는 미일과의 양자외교에 지나치게 집중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한미일 정상회담을 한국 외교의 성과라고 자랑하고 있다. 만약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는 것처럼 그 어느 때보다 미국과 일본이 한국과의 외교를 강화하고 있다면, 오히려 의심해야 한다. 웃지만 말고 그들의 속내가 무엇인지 간파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입장에서 ‘가장 유쾌하게 들리는’ 한미일 공조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한반도에 가장 불쾌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게 외교다. 


<사진-3> 2023년 8월 18일,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조 바이든, 기시다 총리가 기념촬영하고 있다. (출처: 대통령실)

3조 1,659억 원을 쓰고도..


 위의 비판에 대해 아마 윤석열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공산주의 국가인 러시아의 침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서고 있다고 강력하게 반박할 것이다. 공산주의의 위협에 맞서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이 성스러운 전쟁에 윤석열 정부는 그 어느 국가보다 앞장서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사진-4> 14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우크라이나 지원과 관련해  일랑 고우드파일 미주개발은행 총재와 면담 후 악수를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지난 17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제5차 우크라이나 지원회의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최 장관은 한국 정부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재건에 23억 달러 규모 지원패키지를 본격적으로 이행할 것을 밝혔다. 이 지원 패키지는 지난해 9월 G20 정상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발표했던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이다. 이는 다자개발은행(MDB) 1억 달러, 인도적 지원 2억 달러,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20억 달러 등으로 구성된다. 무려 3조 1,659억 원이다. 


 2023년 재정적자가 무려 87조 원에 달하는 최악의 경제여건 속에서도 윤석열 정부는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의 역할을 이행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3조 원이 넘는 지원 방안을 이행하기로 한 것이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 정부는 지난 2월 14일 우크라이나 재건 지원 협의체인 ‘우크라이나 공여자 공조 플랫폼’(MDCP)의 신규 회원국이 되었다. 이 협의체는 다름 아닌 G7 국가들과 유럽연합, 그리고 IMF와 같은 국제금융기구들로 구성된 기구다. 결국 윤석열 정부는 무려 3조 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고도 이번 G7 정상회의에 초청받지 못한 것이다.


 분명 대통령실은 이번 G7 정상회담에 초청받지 못한 것과 관련해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이탈리아 내 이민 문제와 연결된 아프리카·지중해 이슈’ 위주’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19일 자 로이터 통신의 보도(“G7 pledges swift aid for Ukraine, seeks to calm Middle East”)를 보면 ‘우크라이나 재건 지원’은 분명하게 이번 G7 정상회의의 주요 의제 중 하나다. 실제 지난 18일 데이비드 캐머런과 같은 G7 국가들의 외무장관들은 이탈리아 카프리 섬에 모여 우크라이나 지원을 두고 협의를 진행했다. 


 결론적으로 윤석열 정부의 외교를 보면, ‘글로벌 중추 국가’(GPS)라는 자동차에 탑재된 내비게이션 시스템(GPS)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아니 잘못 작동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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