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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군가 Sep 18. 2023

나의 문어 선생님이 사는 곳

from. 문화예술트렌드매거진 _ prism chap 1. 이제는 우리도


*해당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금 특이한 사제지간


2020년 개봉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은 인간과 문어, 자연과 나의 관계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문어와 인간의 교감 그리고 이별을 얘기하는 ‘나의 문어 선생님’은 제93회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상을 받으며 그들의 특별한 관계를 인정받았다. ‘나의 문어 선생님’은 가히 다큐멘터리의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에 보기 드문 ‘감정의 서사’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감정의 서사를 시청자들이 따라가게 되고, ‘나의 문어 선생님’은 일반 다큐멘터리와 달리 조금 다른 관계 속에서 시청하게 된다. 그러다 문어와 시청자 사이에도 특별한 관계가 맺어진다. 감독 크레이그 포스터와 문어 그리고 시청자까지의 삼각관계는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과 후가 확연하게 달라지는 하나의 메시지를 가지게 되는데, 그 메시지는 바로 ‘환경보호를 해야겠다.’이다. 너무나 단순한 이 메시지는 해마다 다양하게 만들어지는 환경 다큐멘터리에서 줄곧 외치는 말이다. 그런데 ‘나의 문어 선생님’은지금껏 외쳐왔던 그들의 메시지를 종결시켜 버릴 정도로 우리를 단번에 바꾸어 놓는다.



값진 진실함


‘나의 문어 선생님’의 첫 장면은 감독 크레이그 포스터의 내레이션으로 다소 어둡게 시작한다. 당시 크레이그는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감히 그의 고통과 힘듦을 말할 수 없지만, 그는 슬럼프와 꽤 오랜 시간 다퉈왔고, 버텨왔다. 하물며 그에겐 어린 아들이 있었고,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슬럼프에서 벗어나 새로운 목적의식을 가지려 노력했다. 결심 끝에 그를 일으킬 새로운 목적의식은 바로 남아프리카의 바다, 대서양에 가는 것이었다. 크레이그는 춥고, 물살이 센 대서양의 바다에 점차 적응하기 시작했다. 몸의 긴장을 풀고, 10분에서 15분 정도가 지나면 어느새 거센 바다도 잠잠해져, 그는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었다. 크레이그는 특이하게도, 매번 바다에 들어갈 때마다, 온전한 ‘나’의 자세로 입수한다. 바다와 ‘나’ 사이의 장애물이 없도록, 잠수복도 입지 않고, 온몸으로 바다를 느끼고 충전한다. 이렇게 매번 진심을 가지고 바다에 입수하다 보니, 바다가 준 선물인 건지 그에게는 특별한 문어와의 만남이 생겼다.


출처 _ 넷플릭스 나의 문어 선생님


그가 처음 문어에게 다가갈 때는 문어와 체구가 비슷하거나 작은 카메라를 활용했다. 문어는 처음 카메라가 자신의 집 앞에 놓였을 때, 다양한 방법으로 경계하고 살폈다. 조개껍데기로 방패막이를 내세워 다가오고, 만져도 보고, 먹어도 보면서 카메라를 용의 주시하는 문어는 꽤 치밀하지만 귀엽게 느껴진다. 문어는 자신이 판단하기에 카메라가 위험성이 없는 물체임을 확인한 건지, 혹은 매일 앞에 놓여있는 이 카메라에 정을 붙였는지 어린아이처럼 카메라를 가지고 놀기 시작한다. 긴 다리로 카메라를 건들고, 쓰러뜨리며 제멋대로 카메라를 다루면 크레이그는 다시 그 카메라를 세워놓는다. 나름의 시간이 흘러, 둘의 만남이 어느새 서로에게 익숙해졌을 그때쯤 문어는 문득 크레이그를 궁금해했다. 어느새 그를 경계하기보다는 자신의 일상에 매일 등장하는 그가 도대체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지를 말이다. 첫 만남과 반대로, 이제는 문어가 크레이그에게 관심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문어는 또다시 자기 몸을 보호할 수 있는 굴 안에서 긴 다리를 뻗어 그를 만진다. 크레이그는 이날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아마 매일 문어를 ‘보러 왔던’ 사람에서 문어를 ‘만나러 온’ 사람이 된 순간이지 않을까 싶다. 크레이그는 이날을 위해 매번 온전한 ‘나’, 거짓 없는 상태로 바다에 들어온 것처럼 턱 끝까지 숨을 참아가면서 마음껏 문어와 교감했다. 그러한 노력에 응해준 것인지, 문어도 며칠 뒤, 굴 밖으로 나와 온전히 자기 모습을 보여준다. 즉 어떠한 경계심도 없이, 크레이그와 ‘나(=문어)’ 사이에 온전한 ‘나’로 그를 마주한 것이다.


출처 _ 넷플릭스 나의 문어 선생님



사실 문어를 향한 크레이그의 노력은 곧 그가 인생을 바꾸고 싶은 희망이자 열망이기도 하다. 새롭게 변하고 싶어 했던 크레이그가 바닷속 세상에 거짓 없이, 온전한 ‘나’로 입수한 것 또한 새로운 변화, 새로운 삶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그’만의 자세이다. 즉 보다 신중한 자세로 새로운 세상, 나를 받아들이고자 노력했고, 도전했다. 결국 더 맑은 숨을 쉬기 위해 바닷속 세상을 택한 그에게 문어가 뻗은 손은 새로운 삶의 기회가 허락된 것처럼 느껴지고, 더욱 값지게 다가온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온전한 모습으로, 꾸밈없이, 보다 진실하게 다가간 순간에 이루어진 교감의 경이로움은 시청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솔직한 ‘나’로서 교감한 두 생명체의 관계에서 크레이그에게 문어는 새롭게 태어나고, 변화된 ‘나’를 진정으로 봐주었던 존재였지 않을까.



인생 선생님, 자연 선생님


둘은 ‘소중한 맞닿음’ 이후로, 많은 경험을 함께했다. 지금 보니 크레이그는 문어와 함께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문어의 일생에 많은 삶을 나누고, 바라보았다. 특히 문어에게 많은 애정이 생긴 크레이그는 문어에게 고비가 생길 때마다, 감히 도와줘도 되는지 고민하기도 했는데, 사실 고민한 시간이 머쓱할 정도로 문어는 스스로 고비를 넘겼다. 이처럼 문어는 여러 차례 크레이그에게 경이로움을 선사했다. 당시 인생의 큰 고비를 넘기고 있었던 크레이그에게 문어는 더욱 존경스럽게 다가왔고, 강인한 문어는 점차 크레이그의 선생님이 되어준다. 이때 시청자들도 함께 이 두 생명체의 관계를 보면서 자신을 방어할 줄 알고, 치료할 줄 아는 문어를 크레이그의 인생 선생님이자 우리에게 배움을 주는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동안, 시청자들이 문어를 선생님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문어 선생님과 제자 크레이그의 관계는 둘 만의 삶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관계가 아니게 된다. 다큐멘터리 속 크레이그는 우리 인간, 사람을 대표하는 한 인물로서 그려진다. 시청자들은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크레이그에게 투영되어 스스로에게도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가 되어버린 문어를 기억하고, 추억한다. 그리고 소중한 문어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 역시 몽글몽글 피어나곤 한다. 결국 스크린 속 문어를 지키고 싶어 문어가 사는 그곳을, 더 나아가 바다를, 자연을 지키고 싶어 진다. ‘나(=시청자)’에게 소중한 문어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말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자연에 대한 애틋한 다정함이 함께 들어있다. 결국 ‘문어’는 자연을 대하는 자세, 우리가 어떻게 자연을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자연을 대표하는 선생님이 된다. 그리고 크레이그는 그 속에서 시청자들을 표방하는 역할로 문어의 제자로서 자연을 대하는 모습을 배우고, 깨닫게 된다. 자연을 대하는 방법을 깨닫게 해 주고, 자연의 소중함, 보호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알려준 문어 선생님은 끝내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환경보호의 욕구를 고취하도록 만든다.



공생을 말하는 특별한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 내내 시청자들이 자연을 지키고 싶게 만드는 과정에는 ‘환경을 보호해야 합니다.’의 단호하지만 절절한 한마디는 담겨있지 않았다. 기존 많이 보여 왔던, 다큐멘터리 속 장면에는 누군가는 굶어서 죽고, 누군가는 피 흘려 죽는 모습이 가득했다. 늘 눈살을 찌푸리기에 바빴던 다큐멘터리에 ‘나의 문어 선생님’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나의 문어 선생님’을 마주했을 때 신선함은 대단했다. 평소 보던 스크린 속에는 사람만 가득했던 탓인지, 화려하고 압도되는 바닷속 세상에서 쉽게 눈을 뗄 수 없었다. 사실 ‘나의 문어 선생님’은 아름다운 바다만을 보여준 것도 아니다. 감독이 매일 들어간 바닷속은 뿌옇기도 때론 맑기도 했다. 그냥 ‘문어’가 사는 환경을 보여줄 뿐이었다. 다만 그 속의 문어의 ‘삶’을 보여준다. 문어를 비롯한 크레이그 감독이 파도치는 순간의 바다, 환경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모두 함께 자연과 숨 쉬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그대로를 보여준다. 즉 온전한 ‘나’의 상태로 함께 살아가는 바다를 보여주고 이로 하여금 시청자들은 대자연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문어와의 아름다운 삶을 공유하고 함께 살아갔던 크레이그는 우리에게 있어 자연은 어떤 곳인지 생각하게끔 만든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는 ‘내 친구, 내 선생님이 살아가는 곳, 비로소 나도 함께 살아가는 곳’이 아닐까. 결국 ‘나의 문어 선생님’ 속 크레이그 감독과 문어의 작은 바람인 함께 살아가는 삶은 곧 자연과 인간 간의 공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한 시청자들은 함께 살아가는 자연 속, 나의 친구이자 선생님인 인생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문어에게 삶을 배우고, 자연에 대해 배운다. 그러면 어느새 자연과 ‘나’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형성된다. ‘나의 문어 선생님’은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날카롭게 외치지 않고, 은은하지만 오랜 파도와 같이 우리에게 남는다. 부담스럽지 않게 온전한 ‘나’의 상태인 자연과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로써 환경을 보호하고 싶게 만드는 ‘나의 문어 선생님’은 진정한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내가 어디에 살아가고 있는지, 나와 누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가 궁금하다면, 이 ‘나의 문어 선생님’을 만나 뵙길 추천한다.




"우린 방문자가 아니라 이곳의 일부라는 거예요. 그 둘은 큰 차이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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