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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May 14. 2024

[4월의 축구핑] 축구 아니고 달리기

못함을 견디는 마음


운동도 하고 딸아이에게 보여주고자 등록한 축구 동호회에 가는 첫날, 12km 떨어진 그리 멀지 않은 길이 왜 이리 길게 느껴지던지 가는 내내 축구를 하러 간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색하게 찾아 들어간 풋살장에서 더 어색하게 기존 회원 분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활동이 시작되었다.


처음 온 나를 위해 풋살화도 빌려주시고 다정하게 대해주시면서도 적당히 무관심한 분위기에 조금 마음이 놓였다. 처음 1시간은 몸을 풀고 드리블이나 패스 연습을 했는데 그날 연습한 것은 2인 1조로 패스를 주고받고 날아오는 공을 허벅지나 가슴(배)으로 받아내는 연습이었다.


패스는 어떻게든 주고받았지만 허벅지로 공을 받을 때는 뼈에 금이 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프게 느껴져서 오두방정을 떨며 요란하게도 공을 받아냈다. 다음 1시간은 세 팀으로 나누어 한 골 내기 경기를 했는데 생각해 보니 경기 규칙도 온전히 모르고 간 것이라 눈치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야 했다.

생각보다 컸던 구장. 몇 번만 왔다갔다하면 숨이 찬다.


어쨌든 넓은 축구장을 뛰고 또 뛰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흡사 달리기를 하는 기분이었는데(공은 저 멀리.. 나에겐 오지를 않거나 스쳐 지나간다. 공이 그렇게 빠르게 구르는지 처음 알았다!) 그저 뛰기만 했는데도 '밤공기가 상쾌하다'는 말이 이런 건가 싶을 정도의 쾌감이 일었다. 약간의 땀이 나고 심장이 쿵쾅거리며 온몸에 피가 빠르게 도는 것 같은 느낌까지 더해지자 결국 그날로 회원 가입을 해버렸고 주 1회 운동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다음 주 운동 전까지 풋살화도 사야 하고, 당장 입을 운동복도 필요해서 싫어라 하는 인터넷 쇼핑을 몇 시간이나 해야 했는데 특히 풋살화를 고르는 것이 힘들었다. 발볼이 넓은 편이라 그냥 운동화를 신어도 발가락이 아프곤 해서 어떤 풋살화를 사야 하는지 검색의 검색을 거쳐 고른 것이 아래의 풋살화!(나이키 풋살화 머큐리얼 베이퍼 15 아카데미) 크게 사라는 조언대로 평소 사이즈보다 +10 해서 샀는데 앞부분이 꽤 남아서 착화감도 모양도 썩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그래도 발이 안 아픈 것으로 만족하고 2회 차 운동 때부터 신고 뛰었다.

나이키 풋살화 머큐리얼 베이퍼 15 아카데미


2회 차 운동 때부터는 라인을 따라 드리블하는 연습을 했다. 오른발로만, 왼발로만, 번갈아서의 순서로 하는 것부터 천천히 공을 몰다가 속도감 있게 치고 나가거나, 오른발로 공을 굴려 왼발로 받아 드리블하는 등 여러 방식이 있었다. 앞사람이 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따라 하려는데 생각으로는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몸은 다르게 움직였다. 수학문제를 풀 때 답을 보면 안다고 생각해도 막상 다시 풀려면 모르겠는 것처럼, 머리로 이미지트레이닝하는 것과 실전은 너무 달랐다. 발은 허우적대고 공은 저 멀리 가버린다. 그렇게 3회 차, 4회 차가 되어도 당연히 실력은 늘지 않았고 축구장을 뛰었다 쉬기를 반복하는 순간의 밤공기에선 상쾌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땀이 마르며 으슬으슬한 기운이 ㆍ돌고 경기에 집중도 안되었다.


이대로 정말 계속해도 될까 고민을 하며 돌아온 다음날, 김하나. 황선우의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여둘톡) 에피소드 94화(어른의 성장)를 들으며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때 그 에피소드에 나에게 너무 필요한 말들이 흘러나왔다. 듣고 적은 것이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글로 남기고 싶어 적어보았다.


황선우: 어른의 성장이라고 해서 완벽함을 향해 가는 것은 아니잖아요. 자기가 가진 여러 가지 자질과 역량과 능력들을 조금씩 조금씩 낫게 만들면 그것 또한 성장입니다.  ...... (플롯학원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어린이들이라고 해서 꼭 빨리 발전하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가 생각할 때는 어린이들이 당연히 굉장히 빠르게 성장할 거라 생각을 하잖아요. 그런데 반드시 그러는 것은 아니고 대신에 어른들은 빨리 포기를 한다는 거예요. 그 이유가 금방 잘하고 싶어서. 왜냐, 어른들은 훌륭한 음악을 많이 들어왔잖아요. 이미 능숙하게 너무 잘하는 사람들의 모습만 봐왔는데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불만스러운 거예요. 부끄럽고. 그래서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은 못하는 자신을 견디면서 노력을 좀 해야 되는데 어린이들은 그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죠. 그래서 꾸준하게 몇 년씩 할 수가 있는데 어른들은 그 단계에서 주저앉고 포기해 버린다고 하더라고요.     
김하나: (드럼을 배우시는 중년 여성 분이) “나는 나이가 있어서 안 늘어” 하시니 드럼 선생님께서 “그거 편견이에요. 애들이라고 빨리 배우는 거 아니고 나이 드신 분이라고 해서 늦은 게 아니에요. 근데 그런 말씀하시는 분은 나이 든 분 밖에 없어요.” 어떤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고 새로운 경험을 해 본 나는 그런 경험을 나에게 선물하지 않았던 나와는 분명히 달라져 있는 거죠. 그런 것도 일종의 성장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새로움을 느끼는 그 즐거움 자체가 자신의 못함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물론 조금 더 잘하게 돼서 정체기가 오고 내가 이것보다 좀 더 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초보시절을 생각해 보면서 그 즐거움을 되새긴다면 못하는 구간을 조금 더 넘어설 수 도 있지 않을까.


고작 네 번의 운동으로 무언가를 잘하고 바뀌길 기대하며 조바심을 냈던 스스로가 참 못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흔이 되도록 번도 운동을 하면서, 활동일 말고 다른 날에는 연습 안 하면서 남들처럼 잘하고 싶은 마음만 앞섰던 것이 축구의 재미마저 가져가 버린 것이다. 게다가 잘 못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그 자리가 민망하게 느껴져서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나 스스로 위축되고 자신감이 없는데 운동 력이 늘리 만무했겠지.


처음 축구를 해보겠다던 그때의 마음, 축구핑이 되겠노라 장난치며 웃던 즐거운 마음, 밤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지던 마음을 다시 떠올리며 나의 못함을 견디는 5월을 맞이해야겠다.

축구를 하다보면 주 마다 다른 모양의 달을 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소원빌기 딱 좋은 보름달님이 뜨셨다.
달님, 못하는 나를 견디고 꾸준히 하려는 마음과 즐거워하는 마음을 잃지 않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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