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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십사 Jan 24. 2023

클러스터링으로 구분된 세상

나는 내가 보는 세상 안에 살게 된다

나는 이번 주말에 이사를 앞두고 있다.

우연히 '풍수지리'에 관한 팟캐스트를 듣게 되었고 듣다 보니 굉장히 그럴듯해서 빠져들게 되었다.

풍수지리 연구가는 이런저런 사례와 역사를 들어가며 나를 설득했다. 


특히 인상 깊게 들었던 구절은,

사주를 보니 올해 객사할 팔자였고 유명 점술가에게 물어보니 집안에 저승사자가 있다 하여

이를 피하기 위해서 택시를 잡아타고 근처 미분양 아파트 아무 곳이나 데려다 달라하고 거기로 거처를 옮겼다는 것이다. 저승사자는 내 운명을 따라올 것이니, 택시기사가 정한 곳으로 가면 따라오지 못한다는 논리였다.


나는 이 말자체보다 신기한 건 이 역술가가 이 이야기를 얼마나 깊게 신뢰하고 있느냐였다. 그는 매우 깊게 이야기에 공감하고 놀라워하고 있었다. 그는 역술적인 관점에서 모든 세상을 바라본다. 사람과의 만남, 일이 잘되고 되지 않고, 사랑을 하고 하지 않고를 모두 같은 관점에서 본다. 


그런 관점으로 사는 사람이기에 위의 스토리가 귀에 흘러들어 갔고 그에 반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관점에서는 부동산 투자를 위해 미분양 아파트를 추천받아 이사 간 것이 전부인데 말이다. 어떻게 같은 일을 보고 누구는 영적으로, 누구는 물질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이렇게나 모두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음에도 조화를 이루어 살아간다는 것이다.


대중의 '상식'을 정하고 퍼뜨리는 수단이 갈수록 많아지면서 갈수록 사람들의 생각이 비슷해져 간다는 의견에 매우 동감하지만 한편으로는 극단적으로 다른 생각도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도 현대사회를 묘사하는 의견이라는 생각이 든다. 


엔지니어로서 이런 현대사회는 '클러스터링'되어 있다고 해석해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갈수록 더 끼리끼리 놀게 된다는 것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대표되는 '추천' 콘텐츠들의 가장 근본 알고리즘은 클러스터링이고, 그 중심 가설은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은 비슷한 콘텐츠를 좋아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 가설은 실제로 효과가 입증되어서 성행하고 있으나 알고리즘이 심화되고 콘텐츠가 다량으로 쏟아지자, 이는 심한 취향 양극화로까지 이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컨대 강제로 내 취향이 정해지고 그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강요받는다고 설명할 수 있다.


단순히 스낵콘텐츠라면 그다지 문제 될 점이 없다. 하지만 이런 양상은 국내 정치, 경제 전반에 문제가 되고 있다. 정치에서는 가짜뉴스인지 알면서도 지속적으로 가짜뉴스를 접하게 되고, 내 정치성향이 뭔지 정확히는 몰라도 특정 성향의 콘텐츠를 접하게 됨으로 선거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경제에서는 유동성으로 부자가 된 신흥 부자들이 나타나면서 부업, 코인, 부동산 투자의 큰 물결을 만들어 결국 엄청난 시장을 형성하게 했다. 


사람들은 결국 본인이 보는, 듣는 것을 바탕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어려운 체로 소우주에 살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내가 오래 보고 자주 보는 영상과 글이 과연 내가 선택한 것인지 선택당한 것인지 잘 구별이 안 간다는 것이다. 과연 추천 알고리즘이 개인의 의사를 결정할 권한이 없음에도, 단순히 광고를 많이 소비하게 하기 위해서 이다지도 많은 영향력을 끼치게 놔두어야 하는지 굉장히 의문이 든다. 


유일하게 나를 구분 짓지 않고, 내가 내 취향을 선택해야 하는 곳은 바로 도서관이다. 도서관을 한 바퀴 돌고 마음에 드는 제목을 골라 집고 싶다. 누가 나에게 뭘 보고 뭘 들으라고 말하지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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