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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면 Aug 17. 2023

14. 괜찮은 척과 잊혀짐

심연: 찢어진 마음 들여다보기

 그렇게 다시 생활해보려고 하는 과정 중에서 이제는 괜찮냐고 물어보는 지인들이 있었다. 나는 "그냥 뭐 그렇게 사는 거지"라고 답하거나 "전보단 나아"라는 답을 했다. 그러면 지인들은(위로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예상대로 "그래 다들 그렇게 사는 거지 뭐"라거나 "역시 시간이 약이다"라거나 "잘됐다. 다행이네" 등의 말을 했다. 아예 예전부터 남의 일이었던 지인은 자기 얘기만 하거나 놀아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아직 그러한 질문조자 버거워하고 있었다. "잘하고 있다,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더 나아질 거다" 등 응원이나 격려를 해주는 지인들도 많았고 물론 고마운 말이지만 그런 말들을 듣고 싶지도 않았다. 잘하는 것, 노력하는 것 더 이상 그런 것은 싫다. 평가도 싫다.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더 나아질지 아닐지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연상이 되는 모든 것이 싫었다.


 한 번은 어떠한 일로 자기소개서를 쓰게 되었는데 인생에서 제일 힘든 일은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쓰라는 항목을 보고 매우 괴로워했다. 그에 나는 '인생의 매 순간 힘들일은 많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그 힘든 일을 넘겼다 해도 힘든 일이 늘 새롭게 찾아오기에 제일 힘든 일을 꼽으라면 어렵습니다. 그러한 일이 생길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 부터하면서 한걸음한걸음 나아갔습니다.'라고 에둘러 말하였다. 그러나 해당 기관에서 굳이 굳이 한 가지 사건을 꼽아 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평이한 일을 말하였는데 내 머릿속에서는 그 일로 가득 차있는 바람에 결국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 말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다행히 그날은 대화는 잘 마무리되었으나 앞으로 같은 질문에 내가 견딜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에 눈앞이 캄캄했다. 누군가의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건 딱히 좋지 않으니까.


 그리고 참 애석하게도 빛을 잃어서 날 멀리하던 지인들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우울해서 싫다던 지인들이 돌아와서 다시 나를 좋은 사람, 좋은 친구라 칭하며 자기 하소연이나 가십거리, 자랑거리를 늘어놓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사람들은 빛날 때만 가치 있어한다는 것을 또 한 번 느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다 남이고 어떠한 것도 기대하지 않기로 다짐한 지 꽤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세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함께 살아가는 게 인간관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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