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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면 Aug 04. 2023

13. 아직은 그럴 수 없었지만

심연: 찢어진 마음 들여다보기

 앞서 나는 나의 상황과 상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우선이라 말하였지만 아직은 그럴 수 없었다. 나 자신과 이별을 하기엔 너무나도 빨랐다. 그렇게 그 일이 있은 후 한 달 정도는 하루에도 몇 번씩 충동과 씨름하였고 그다음 한 달은 무력감과 좌절에 씨름하였다.


 매우 지쳐있던 내가 살기 위한 첫걸음으로 제일 먼저 했던 것은 정신과 방문이었다. 그리고 미뤄왔던 자살 예방센터에 먼저 전화를 걸어 방문 예약을 하였다.

 다시 방문하게 된 정신과에서 중증 우울 심각단계 판정을 받았고 약을 꾸준히 복용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던 자살예방센터에서 또다시 나의 이야기를 하며 하염없이 울었다.


 그러한 일정을 소화하고 나서 나 스스로에게 기특하다고 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끔은 '참... 열심히 산다'라는 생각에 자괴감과 무력감이 들기도 했지만 나를 제일 잘 아는 것도 그래서 제일 잘 보듬어 줄 수 있는 것도 나이기 때문에 행동하나하나에 칭찬해 주기로 하였다. 누군가가 나를 재촉하거나 누군가가 더 멋지게 더 열심히 살라고 해도 나 스스로는 '밥도 챙겨 먹고 병원도 가고 중증우울증 환자치고 잘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다. 나만의 기준으로 내 인생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 웃긴 이야기지만 처음엔 침대밖으로 나오는 것도 어려워 애벌레가 이동하듯이 반바퀴씩 굴러서 침대에 떨어지면 일어나기도 했다.

 가끔은 무기력이 심해 또는 피로감이 심해 센터 약속을 취소하거나 미루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런 날이면 이런 거 하나 제대로 못하냐고 스스로 질책하게 되는 모습을 보고 내가 나를 질책하지 않게 최대한 일정을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내 몸상태를 내 상황을 받아들이는 건 사실 외면에 가까웠다. 아예 생각하지 않는 것. 끝나지 않은 싸움이라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조마조마함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 내 힘으로는 그걸 미루는 게 최선이었다.


 언젠가 내 상태와 상황을 정말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더 생각하는 것도 이제 피곤하다. 한 걸음씩 할 수 있는 것만 해보기로 했다. 그 한계가 딱 세 걸음이더라도 그럼 일단 세 걸음만 걸어가 보고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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