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하기 전에 지인들에게 어떤 수술을 할 것인지 이미 말했었고 수술 직후 잘못된 것을 바로 몰랐던 나는, 다들 궁금해했기 때문에 수술 전후와 회복기까지 실시간으로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자연히 망하는 과정을 직관하던 지인들은 내가 우울한 사람이 되었을 땐 더 이상의 후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도 우울한 기운이 지인을 멀어지게 한다는 건 충분히 아는 나이였기에 그때부터는 점점 무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우리는 소소하고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무리였기에 심리테스트 링크를 공유하며 결과를 서로 보여주고 흥미로워했고 각자 사고픈 물건을 보여주며 평가해주기도 했고 취미 생활 결과물을 공유하며 칭찬해주기도 했던 따듯한 관계였다. 그러나 내가 그러지 못한 사람이 된 이후로 나는 늘 단체 채팅방에서 침묵을 담당했고 지인들은 더 이상 나를 찾지 않았다.
지인들에게 많이 미안했다. 분위기 메이커 중 한 명이었던 내가 그 속에 어울려서 같이 즐기지 못하고 어울리지 못하는 것도 미안했고 서로서로 평범하게 대화하는 지인들을 보며 부러워하고 있는 내가 싫었다.
연인에게도 참 미안했다. 힘든 수험생활 끝에 최근 어려운 공무원 시험에 최종합격하고 교육을 수료 중인데 그 안에서 다양한 업적까지 쌓으며 성적 우수자였던 장하고 멋진 나의 남자친구는 한 없이 축하받고 응원받아 마땅했다. 그러나 내가 그런 일이 생기는 바람에 합격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던 남자친구의 기대는 깨져버렸다. 늘 우울하고 불안한 나의 상태를 지켜봐야만 했고 해결할 수 없고 싸워보지도 못하는 무력감을 같이 느껴야만 했다.
반려동물에게도 미안했다. 나만 바라보고 내 집에서 나와 같이 있는 한없이 예쁜 반려동물인데 늘 예뻐하고 안아주었는데 어느덧 눈길을 많이 주지 않았고 방구석에 앉아 하는 일 없이 천장만 보는 주제에 예뻐해 달라고 우는 반려동물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다.
가족이 미웠다. 나를 그런 수술로 이끌었던 새엄마의 모든 학대들이 죽을 만큼 억울하고 분노하였다. 이러한 사건을 겪고도 기대기는커녕 알리거나 티조차 낼 부모가 없다는 사실에 미웠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트라우마의 모든 연결고리가 떠오르면서 내가 간과했던 사실까지 알게 되어 더 괴롭고 미웠다.
물론 이 일을 만든 장본인인 그 병원과 의사가 제일 미웠다. 수술만 제대로 했다면 난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 것이고 학대트라우마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이라는 점과 내 성격으로 인해 비교적 잘 이겨내며 살았을 것이다.
세상이 미웠다. 그 모진 학대를 겪다가 겨우 벗어나서 무일푼으로 독립을 시작했고 누구보다 멋지게 살아가는 중이었는데 나는 그렇게 살면 안 되는 팔자였던 것이었던 건가. 말도 안 되게 세상이 나를 짓밟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 좌절시키는 게 목적이라 그런 모진 시련을 주었음에도 감히 잘 사는 것 같아서 더 확실히 꺾어버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남들은 아무 병원 가서 수술받아도 너무 잘됐다고 하는 수술인데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같은 의사에게 수술받은 사람도 누구는 다르게 수술했던데 왜 하필 나일까? 나는 세상의 실험쥐인가.
그러나 그중에서 내가 제일 미웠다. 지인들이 무심코 던진 말에 상처받아 서운하고 때로는 잠시 미워했던 내가 미웠고 참 초라해 보였다. 때로는 지인들에게 어려움이 닥치거나 고민거리가 생기기도 하였고 아프기도 하였는데 내 아픔이 눈을 가려 그들을 챙겨주지 못해 미안했다. 모든 세상을 부정하고 좌절하는 내가 한심하고 미웠다. 사람과 세상을 미워하는 내가 싫었다. 어느덧 세상이 나를 밀어내는지 내가 세상을 밀어내는지 조차 희미해졌다.
그렇게 점차 나는 못난 사람이 되어갔고 그렇게 죄인이 되어갔다. 늘 마음 한켠에 '그 일만 아니었으면 모든 사람과 잘 지냈을 텐데... 그 일만 아니었으면 행복했을 텐데...'라는 생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