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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면 Jun 22. 2023

08. 죽을 용기 - 죽음으로까지의 길

심연: 찢어진 마음 들여다보기

 죽을 용기로 살아라!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많을 것이다. 나 또한 어렸을 때는 그렇게 다짐하고 살았던 적이 있었고 특히나 뉴스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나 업무과다로 인한 자살사건을 안타까워하며 '퇴사부터 해보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죽을 용기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아마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죽음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크겠지만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과정과 결국 죽음을 택하게 되는 순간을 겪어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용기가 있어서 죽는 것이 아니다. 죽을 용기는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앞으로 놓인 삶이, 살아가야 할 날이 너무 두려워서 죽는 것보다 더 두려워졌을 때 조금은 덜 두려워진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미디어매체에서 나오는 자살의 원인으로는 학교폭력, 직장 내 괴롭힘, 가정 내 불화, 성적비관, 취업실패, 사기나 투자로 인한 금전적 손해 등으로 다양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근본적인 이유이자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한 이중성을 가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인생에 큰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상실감, 고통, 후회,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이 발생하게 되는데 제일 독이 되는 것은 후회와 자책이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때 이랬다면 달랐을까? 저랬다면 달랐을까?

 그러한 생각들은 사건이 원인이 내가 아닐 때도 하게 된다.


  어릴 적 학대를 당했을 때는 맞을 때마다 조금이라도 눈에 띄게 됐던 순간들을 후회했다. 그것은 너무나도 내 탓이 아니었지만 '바로 방에 들어갈 걸, 빨리빨리 끝낼 걸, 오해받지 않게 무서진 물건 근처에 가지 말 걸, 일기장에 그런 내용 쓰지 말 걸, 선물 받은 물건을 잘 숨길걸' 등 여지를 주었던 모든 행동들을 탓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릴 때였던지라 단순했던 지라 그저 그 순간만 지나가면 '끝났다!'하고 하루하루 살았던 것 같다.


 의료사고를 겪었을 때는 매우 심했다. 그 수술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어릴 적 모진 학대로 인한 신체 변형과 트라우마 때문이었고, 병원을 선택한 이유는 지역 맘카페의 압도적 추천과 브로커 때문이었고, 수술을 망친 이유는 자세한 설명 없이 의사가 수술해 버렸는데 과하게 돼버려서 망친 것이지만 그 수술을 하기로 마음먹은 건 나였기에, 커뮤니티 홍보에 속고 브로커에 속아서 그 병원을 선택한 건 나였기에, 상담 때 더 상세히 파헤치지 못한 것도 나였기에  후회와 자책은 미친듯이 나를 때렸다. 내 탓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쉬운 마음에 좀 더 잘 알아보지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역시 내가 좀 더 그랬어야 했겠지? 내가 왜 그랬지?' 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재건 수술을 알아보기 위해 다른 병원을 찾았을 때도 "자기 몸인데 소중히 해야지, 잘 알아봤어야죠, 그건 환자가 멍청해서 당한 거예요"등 갖은 말을 들었을 때도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내가 내 몸을 소중히 하기 위해 병원을 찾은 것이고 더 나아진 나를 위해 수술을 택한 것인데 일반인은 이해하기 힘든 의료지식 가진 의사의 말을 믿은 것뿐인데 피해자가 되어야 하는  구조가 참 억울하긴 하지만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내가 너무 순진했구나 멍청했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탓을 하는 게 제일 쉬웠다.


 그 일 이후로 피폐해진 나는 지인들과 거리가 생기게 되었고 내 애인은 나를 멀리할 수 없는 이유로 우울한 기운을 감당해야 했으며, 꿈을 이루기 위해 계획했던 일들도 다 어긋나 버렸다. 반려동물과 집안 관리에 소홀해졌고 재정상황도 크게 변했으며 건강도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모든 주변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미안했고 가끔은 그들을 미워하는 내가 미웠고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하는 내 현재 상황도 싫었다. 이 일로 인해 인생 계획이 틀어진 것도 너무나 큰 고통이었고 나만 바라봐주는 반려동물에게도 몹쓸 짓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건강을 우선시하던 다치기라도 할까 봐 늘 조심하며 내 몸을 아끼던 내가 나를 버린 것은 아주 큰 변화였다.


 '이 일만 아니었으면 지인들과 하하호호 웃으며 잘 지냈을 것이며 애인에게는 무한한 축하와 응원을 보냈을 텐데... 내 꿈을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하며 반려동물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텐데... 이일만 아니었다면...'라는 생각에 과거로 돌아가는 것에 집착하게 되었지만 얼마못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관두게 되었다. 정말 성공했다면 그것은 내가 미친것일 거라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빛이 나고 긍정적인 기운을 뿜은 사람만 찾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난  못난 사람. 가치 없는 사람. 불행한 사람. 어두운 사람. 꺾인 사람. 짓밟힌 꿈. 망한 인생. 갖은 타이틀을 가져다 붙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못나져 버렸다. 사람들이 나는 성가셔할게 뻔하고 귀찮아할게 뻔하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빨리 극복해서 같이 하하호호하는 순간만 있길 바란다. 아마 이 일이 그들에게는 아는 사람이야기, 아는 사람한테 발생한 사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 일 없었던 척하기가 너무 힘들다. 뇌가 우울과 절망에 푹 절여진 느낌이었다. 한눈에 봐도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그것은 아닌척해도 단번에 티가 날 만큼 지독했다. 쉽사리 빠지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이 배였다. 버리는 것이 제일 빠를 것이다.


 계속된 절망과 자책은 뇌를 더 썩어가게 만들었다. 이 모든 상황은 결국 내가 직접 걸어온 길인데 모든 주변인에게 피해 주는 게 너무 싫었다. 썩은 사과가 주변을 다 썩게 만드는 거 같았다. 나만 없으면 다들 편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없어지면 잠시는 슬플지도 모르지. 그러나 이 역시도 아는 사람에게 생길일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에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겠지.


 모든 생각들이 쳇바퀴처럼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오고 돌아올 때마다 더 지독하게 돌아왔다. 지쳤다.


 이번생은 너무 많이 힘들었기에 딱 여기까지만 힘들자 라는 생각이 너무 간절했다. 용기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냥 그저 그만 힘들고 싶은 사람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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