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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면 Jul 03. 2023

09. 벼랑 끝에서 생긴 일 - 상

심연: 찢어진 마음 들여다보기

모든 일에 대한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후회하지 않았던 일도 후회하기 시작했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다면, 그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달랐을까' 등 살아온 모든 사건에 대한 나비효과로 '그랬다면 나를 그 사건으로 데려가지 않을 수 있었을까, 피해 갈 수 있었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인생의 전반을 부정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며칠 내내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정 속에서는 아무 일 없는 척 곧 잘 웃어 보이지만 고개만 돌리면 울었다. 잘 보여야 하는 대상이 없으면 버스, 지하철, 길거리 할 것 없이 쉬지 않고 눈물이 흘렀다. 그 넓은 세상 속에서 벽을 치고 나 혼자만의 공간이 있는 것처럼.


 주변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내가 너무 망가져서 반려동물들을 이뻐해주지 못하고 챙겨주지 못하는 게 너무 미안했다. 항상 그 자리에서 늘 이쁘게 있는 아이들인데 내가 너무 달라졌다. 그래서 동생에게 대신 키워달라고 할 참이었다.

 남자친구를 정리하려고 하려고 하였다. 함께하면서 행복을 주고 싶었던 남자친구에게 걱정과 고통만 안겨주고 있는 게 너무 미안했다.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었기에 그 사람은 좀 더 행복해야 했다.

 그 외 정리할 가족은 없었다. 다 따로 살며 연락도 거의 하지 않았기에, 지금 힘듬마저 말할 수 없는 대상이었기에 정리할 가족이랄 만한 사람은 없었다.


 나의 소중한 대상들에게, 미안한 대상들에게 내가 그만큼 잘해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자신이 없었다. 내가 언제 이겨내고 회복할 수 있을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 막막한 어둠만 존재하였다.


 나름의 노력도 해보았다. 살아가야 하는 이유, 자살하면 안 되는 이유를 검색해 보며 유명한 교수의 강연을 들었지만 딱히 효과는 없었다. 주변인들이 슬퍼하니까, 남은 유족들이 선입견으로 인해 욕먹고 상처받을 수 있으니까, 죽는 것에 실패하면 더 힘들게 살아야 하니까. 그러나 나에 대한 이유는 무엇인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나를 위한 이유와 존재 가치는 무엇인가? 물었을 때 답이 될 수 있는 건 없었다. 살아야 하는 이유조차 설명하지 못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죽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우스웠다. 인구감소에 따른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그렇게 막으려고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없어진다면 당분간은 매우 슬프겠지. 그러나 그 또한 금방 잊히리. 금방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리라 믿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정신이 온전치 않게 깨어난다면 주변사람들을 너무 힘들게 할 것이다. 몸을 쓸 수 없게 된 상태로 다시 깨어나게 된다면 난 지옥 속에서 아무것도 못한 채 평생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실패하지 않고 안녕할 수 있는 방법을 물색했다.

 세상에 대해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해 마지막 편지를 썼다. 정말 쉽지 않은 순간이었다. 세상과의 마지막 인사를 하며 써 내려간 글씨는 떨리는 손으로 인해 겨우 알아볼 수 있는 형체였다. 할 말이 많았고 작은 내 재산을 정확하고 공평하게 나누기 위해 잘 써야 했다. 쓰다가 지쳐서 고이 접어두다가 이 순간까지 온 모든 것들이 화가 나 구겨 던져버리고 다시 주워 들고 써 내려가길 반복. 다 쓰기까지 꼬박 이틀이 걸렸다.

 모든 준비를 마치자 갑자기 마음이 차분해지고 말도 안 되게 평온해졌다. 이 마음은 무슨 마음일까 궁금했다. 한편으론 내가 죽고 싶은 게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그래서 익명으로 지식인들에게 물어보았다. 유서를 쓰고 싶다는 마음은 어떤 마음인지. 누군가는 정신과적 응급상황이라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한 것도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한 사람은 상조회사 사람인듯하였는데 남겨진 사람이 재산 등의 이유로 분란을 일으키지 않게 잘 써야 한다며 유서를 쓰는 꿀팁(?)을 알려주었다. 정말 웃기다고 생각하며 휴대폰을 던져두었다.

 그리고 실행만 앞둔 상황에서 정말 많이 울었다. 미친 듯이 울었다. 세상과의 나의 인생과의 이별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나에게도 이별에 대한 준비가 필요했나 보다. 모든 걸 다 쏟아내는 것처럼 쉴 새 없이 울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울다 지쳐 문득 잠이 들었다.

 그러나 새벽에 들려오는 미친듯한  굉음에 나는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깜짝 놀라며 잠이 깨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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