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럼을 배운다고 하면 종종 음악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어떤 음악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오래 음악을 배운 사람은 어떤 음악을 듣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숨겨진 보물 같은 음악을 알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 같다.
한국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을 몇 알고, 그 음악들을 카피해 본 건 맞다. 최근에야 카피하고 싶은 곡을 직접 고르고 악보를 그리지만 15년 전엔 선생님이 고른 곡을, 선생님이 그린 악보로 연주했다. 누구나 알 만큼 유명한 뮤지션도 있었고 처음 접한 뮤지션도 있었다. 한국 뮤지션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뮤지션도 있었다. 어쨌거나 직접 연주해 본 모든 곡은 각별하다. 아마 드럼을 배우지 않았다면, 우리 드럼 선생님이 내 스승이 아니었다면 평생 몰랐을 수도 있는 음악들이었다.
그러나 난 온갖 음악을 다 듣는다. K-POP, 노래방 인기차트 TOP 100, 클래식, 뮤지컬 OST, 쇼미더머니 경연곡 등등 장르를 불문하고 다 듣는다. 어떤 순간과 시기에 내게 확 들어온 음악은, 시간이 흘러도 그때의 감정과 공간을 소환한다. 그래서 내게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는 건 유튜브 알고리즘을 공유하는 것만큼 어쩐지 쑥스럽다. 내밀한 속내를 드러내는 것 같다.
직장인 시절엔 2, 3세대 아이돌의 노래와 가사를 알 수 없는 힙합을 많이 들었다. 업무 속도를 내야 할 땐 K-POP을 들었고 전투력이 필요할 땐 힙합을 들었다.
언젠가 이어폰을 꽂고 일해도 되는 직장에 다녔을 때, 언젠가 옆자리 동료가 일할 때 주로 어떤 음악을 듣냐고 물었다.
"케이팝이요. 소녀시대, 원더걸스, 티아라, 오렌지캬라멜, 레드벨벳 선생님들. 근데 요즘엔 주로 힙합 들어요."
동료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언제나 차분하고 이성적인 그는 무해하게 웃으며 자신도 요즘 힙합을 듣는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무려 국(내)힙(합). 최애는 사이먼도미닉. 우리는 각자의 취향과 플레이리스트를 약간은 부끄러워하며 공유했다. 힙합은 마음 편히, 당당히 좋아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인류애 떨어지는 혐오적인 가사, 우스꽝스럽게 거들먹거리는 래퍼들의 이미지까지. 희망적이지도 않고, 어딘가 화가 나 있고, 자신이 얼마나 잘났는지 노래하는 그 음악들.
사람과 서류에 치여 지내던 어느 날, 동료가 갑자기 힙합 플레이리스트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전투력과 심신의 안정이 동시에 필요할 땐 역시 힙합이다. 어떤 링크를 보냈다. 각자 이어폰을 꽂고, 이따금 통화를 하고 모니터를 응시하며 몇 시간을 보냈다. 거래처와 메일로 약간의 기 싸움을 마친 후 이어폰을 빼고 “힙합이네.” “힙합이네요.”라며 자축했다. 그리고 각자 이어폰을 꽂고 퇴근했다. 힙합 덕분에 가까스로 전투력을 유지하고, 자신을 보호하며 하루를 마무리한 날이다.
아직도 좋은 음악이 뭔지 정의하지 못하겠다. 가사가 깊이 들어온 음악이 있고, 장르와 가사를 불문하고 훅 들어온 음악이 있다. 평화롭고 한적한 라오스 메콩강변에서 서정적인 인디 음악 대신, 이별을 노래하는 거친 락음악이 내게 확 들어오는 경우 처럼 말이다.
힙합을 즐겨 들었던 저 시절의 이야기는 수많은 순간 중 하나다. 강해지고 싶던 시기, 쉬고 싶던 시기, 화를 내고 싶던 시기, 용서하고 싶던 시기, 위로받고 싶던 시기, 사랑에 빠진 시기, 사랑에 실패한 시기, 모든 때 어떤 음악이 내게 들어왔다.
요즘 내가 무슨 음악을 듣는지 생각한다. 자주 들은 음악은 왜 자주 들었는지 생각해 본다. 일기를 쓰지 않아도 그 음악을 들으면 그때의 상황과 사건이 생각나곤 한다. 음악이 이토록 대단하다. 각자의 플레이리스트를 부끄러워하지 않길. 다 이유가 있는 선곡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