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의 한계, 오류인가 또는 기준일까
1.
다양성의 그 끝은 어디인가. 안 보인다 안 보여.
아이를 국제학교에 보내면서 얻을 수 있는 큰 이점 중 하나가 다양한 종교, 언어, 인종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학기 초에 배운 노래 가사에도 diversity가 들어가 지금도 음가가 머리에 맴돈다. 의도적으로 시간을 떼내 배우든, 자연스럽게 접하든 간에 매일매일 다양한 자극점들 있다.
World Launguage 시간에 배우는 베트남어, 아빠는 백인인데 얼굴이 까만 프랑스 친구, (엄마가 아프리칸 프렌치인건데 아이입장에선 신기했나 보다), 교내행사 날 빨간 화관과 전통복을 입었던 불가리아 친구, 자기 생일이 유대인 명절과 같은 날이라며 그 의미를 설명했던 이스라엘 친구, '최애의 아이'라는 애니메이션 노래를 대신 불러주는 일본 친구 등. 실제로 60여 개국의 아이가 한 학교에 있다.
비단 인종, 언어뿐만이 아니다. 학교 곳곳에 무지개 플래그가 있다. 교실 문에 스티커가 붙어 있기도 하고, 캠퍼스에서 만날 때면 그중 반은 무지개 옷을 입고 있는 선생님도 계신다. 등교 첫 주, 유난히 어른과 이야길 나누는 걸 좋아하는 딸아이는 한 친구가 가슴팍에 무지개가 그려져 있는 옷을 입었는데 식당에서 만난 한 선생님이 "I like your shirt!"라고 말을 걸었다면서 질투 어린 이야길 하기도 했다. 응 그게 단순히 옷 칭찬뿐만은 아니었을 텐데 너는 모를 것이야.
2.
작년엔 고등학년이 발표하는 연극이 궁금해서 티켓을 구매해 아이와 관람했는데 주인공은 동성애자였고, 애인은 자살했으며, 대사에는 게이, 섹스가 자주 등장했다. 이게 초등학생한테 보여줘도 되는 연극인가. 유교녀 엄마 가슴만 콩닥콩닥 놀랄 뿐, 당시 만 8살이었던 아이가 알아들었을 리 만무했다. 단지 우리 모녀가 Gender에 관해 그 어떤 이야기도 나눠보지 않았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내 욕심에는 나랑 비슷한 레벨이었으면 좋겠지만 그걸 내가 강요할 수는 없겠지. 대화 방법에 대해 고민만 하다가 학기가 끝났다.
3.
새로 시작된 새 학기. 아이들과 소소한 파티도 열고 돈독한 유대관계를 쌓는 선생님으로 소문난 한 남자 선생님의 반에 배정이 되었다. 총 4개 반에서 기쁘게도 아이가 되고 싶다고 했던 반이었다. 새 학년 첫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자기를 호칭은 빼고 그냥 이름으로 부르라고 하셨단다.
"나는 Mr. Jason(가명)이 아냐. 그냥 Jason 이야. 앞으로 이름으로 부르면 돼."
와 너네 선생님 정말 프렌들리 하시구나!!! 나중에 알았다. 그들의 정체성이라는 것. Mr/Ms/Mrs 그 어떤 것도 아닌 그냥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3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나는 그의 맨 이름을 불러보지 못했다. 그를 존중하려면 Mr. 를 빼야 하는데 그렇다고 이름만 부르자니 너무 예의가 없는 것 같고, 생각 많은 유교녀는 아마 쭉 인칭대명사만 사용할 것 같다.
4.
그리고 어느 날, 아이랑 대화 중에 처음 듣는 선생님 이름이 나왔다.
딸: "엄마! Jullie 선생님이 말이야, bla bla~ (역시 가명)"
나: "Jullie가 누구야?"
딸: "여자랑 결혼한 선생님! 근데 딸이 있어."
나: "... 아 그래?"
딸: "어 우리 학교 다녀. 근데 여자끼리 결혼을 해도 애가 생겨?
나: "아.. 아니 이전에 남자랑 결혼해서 출산을 했을 수도 있고, 입양을 했을 수도 있고... 글쎄 잘 모르겠네."
당황스러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상황에서 말이 발사되듯 나오다가 멈췄었다. 다시금 Gender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던 순간이었다. 아 임신 출산에 대해서도 내가 먼저 알려줘야 하나. 어디 보자 한국에서는 성교육 커리큘럼이 몇 학년부터지...
5.
얼마 뒤 아이와 신문기사를 읽다가 양성평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스페인에서는 분홍색 장난감은 여자아이 것, 경찰 군인 장난감은 남자아이 것이라는 식의 광고를 하면 불법이라는 것이었다. 식탁 옆에 놓여있는 아이의 분홍색 가방, 분홍색 텀블러, 분홍색 런치박스를 홀로 흘겨보며 각자 예를 들기로 했다.
나: "의사는 남자, 간호사는 여자로 표현하는 건 옳지 않아."
딸: "2학년 중에 매일 원피스를 입고 등교하는 남자애가 있어. 그건 걔의 자유야."
원피스는 여자 옷이 맞아!!!! 가 입 끝까지 차올랐다가 내뱉지 않았다. 이게 "바지는 남자만 입을 수 있어"와 뭐가 다른 말인가.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원피스는 남자도 입을 수 있어가 100% 동의가 안 됐다. 그 옛날 김원준 아저씨가 입은 치렁치렁한 치마 같은 무대의상이나, 뮤지컬 배우의 복장은 괜찮지만, 원피스/드레스라 함은 마치 못된 형아가 어린 남동생 골탕 먹이려고 입힌 듯한 혹은 누나를 잘 따르는 남동생이 누나 옷을 꺼내 입고 기념사진 찍은 것까지만 인정이 된다 이 말이지.
아 묵은 기억을 들춰보니 2년 전 아이랑 봤던 <빌리엘리어트> 에도 나왔었네. 옷장 속 다양한 드레스를 입고 함께 춤췄던 빌리의 친구. 창작물을 보는 것과 내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것과 밀도가 다르게 느꼈던 걸까. 아니면 게이는 그래도 되고, 게이가 아니면 그런 건 안된다고 또 홀로 나도 모르게 정해둔 걸까.
빈틈을 훅 치고 들어오는 아이의 한마디에 <다름을 인정하자>라는 말이, 결국 내 나름대로의 다름까지만 인정하자가 아닌지 반문해 보게 된다. 여전히 한편으로는 존재는 인정은 하지만 다른 생각을 가진 나도 인정해달라고 하고 싶기도 하고.
6.
학교에서 각자의 가족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나 보다. 유럽친구 한 명이 자기는 a mom and two dads랑 산다고 했단다. 솔직히 속으로 '아니 이건 또 뭐야!' 싶었다. 당황할수록 말을 아껴야 했는데 당시엔 그 교훈을 미처 적용하지 못해브렀지. 시키지도 않은 변명을 당사자 대신 생각하느라 바빴다.
나: "아~ 엄마가 재혼을 했나 보구나"
딸: "아니 two dads랑 산다고 했다니까"
나: "삼촌이랑 사는데 편하게 대디라고 부르는 걸 수도 있어" (아 이 모지리야. 그 입을 다물라)
딸: "아니라니까. 애들이 놀라서 더 묻고 싶었는데 선생님이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어"
다자간 연애인가. 일처다부제인가. 중동국가 아이가 아닌데... 아... 모르겠다.
이젠 눈물 차오르는 눈을 하고 먼산을 바라보는 김상중 아저씨가 된 느낌이다.
아. 참으로 다양하도다.
7.
성 정체성과는 별개로 얼마 전엔 둘이 누워 이런저런 이야길 하며 내가 보통사람이란 단어를 썼다가 딸에게 된통 혼났다.
"잠깐 엄마 보통사람이라는 게 뭐야? 그런 단어는 없어.
눈이 작고 피부가 까만색이면 보통사람이 아니야? 팔이 하나 없으면 보통 사람이 아니야?"
'아니... 엄마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쥐구멍으로 숨고 싶다는 표현을 이때 하는 걸까.
"네가 맞아" 하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