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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나 Jan 18. 2023

오랜만에 떠나보려고 해

발리로 떠날 결심

발작과 같이 찾아 오는 기억들이 있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 온 기억들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이불킥을 하거나 당시에 못 한 말들을 뒤늦게 내뱉어 본다거나 깰 수 없는 긴 침묵에 빠지곤 한다. 특히 남에게 보여지는 나를 중요시 여겼던 날들이나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생채기를 낸 기억들은 파편만으로도 나를 괴롭혔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서인가. 어쨌거나 센 나이만큼이나 발전없는 인성은 아니겠으나 아마도 나를 이렇게 짓누르는 건 엄마가 되었다는 책임감이었다. 한 사람을 올바르게 키워내는 일. 그렇기에 엎어진 지난 기억들 속의 부끄러운 내가 흐르는데로 놔둘 수밖에 없었다. 부끄럽고 부끄럽고 부끄러워하며 더 나아지기 위하여. 네 앞에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떠나기로 결심한 건 단지 숨구멍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으면서도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 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숨이 막혔던 건 사실이지만, 나는 어디로 떠나지 않고도 갑자기 떠밀려진 상황에 질식되지 않고 다시 숨 쉬는 법을 배울 만큼 강해졌고 무너져도 다시 일어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아마도 이건 아이가 내게 준 슈퍼파워 같은 것.

이번에 떠나기로 마음 먹은 건 단지 떠나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초심을 되찾고 싶었다. 이미 떠나기로 결심한 것 자체가 초심을 되찾았다는 신호일수 있을까. 엄마가 된다는 건 내 몸에서 일부를 덜어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삶은 살아갈만 하다는 만족과 행복을 주었지만 내게 찾아 온 새로운 생명의 엄청난 존재감 속에 끊없이 마모되어가는 자신을 잃지 않고 새롭게 다듬어야 하는 수행이기도 했다. 엄마가 된다는 건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과 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사이의 균형을 찾는 일이라고, 나는 그렇게 여기고 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었다. 나이가 되면 누구나 가는 정규 교육과정과 같은 것이라 여겼던 나는 당연하고 손쉽게 통과할 단계처럼 여겼고 아이에게는 어쩌면 드디어 세상의 모서리부터 차근히 인식해나가던 중 사회화의 첫 스텝일지도 몰랐다. 새로운 사람들과 환경에 손쉽게 녹아내릴지도 어쩌면 첫 단추부터 꿰지 못 하고 잔뜩 긴장만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랬는데 막상 상황이 닥치고보니 반대였다. 그동안 집과 가까운 위치 순으로 어린이집을 선택해 왔던 내게 여러 나라에서 온 유럽식 교육과정이나 영어의 사용 유무에 따라 다른 색을 지닌 유치원들과 그에 맞춘 원비들이 무한수열처럼 내 앞에 놓여졌다. 입학 설명회를 다녀오고 보면 교육과정에 감탄했다기 보단 이곳에 보내면 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사실상 가늠도 예측도 불가능한 가능성에 걱정만 많아졌다. 홍수처럼 밀어닥친 정보 속 아이를 낳고 특별히 고려해본 적도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던 영어 유치원이 불쑥 선택지에 들어온 것처럼 느껴지면서 한달 생활비의 절반에 맞먹는 원비를 보고 경악했다. 누군가는 손쉽게 또는 아이에게 그만한 투자를 한다는게 놀랍고 부럽고 혹은 나는 감당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매일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 아이가 느리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성적인 성격이 다른 사람들에겐 필요 이상의 걱정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가 같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 순간만큼은 내 아이를 다른 아이에 맞춰 생각하는 걸 피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을 고민하면서도 결정하지 못 내리는 상황 속 나는 조금 지쳤던 걸까. 모든 게 다 부질없이 느껴졌다.

고작 유치원인데? 아마도 그들이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아이들의 갈래가 나뉘게 되는 거야. 이것도 맞는 말일지도.

맞춰가면 되는 거지. 아이는 생각보다 강하고 유연해. 맞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지 말라는 명언처럼 평생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 귀는 바람에 흔들리다 못 해 생선처럼 파닥거리고 내 마음이 유리였다면 수없이 깨졌다 주워 붙여 가루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래도 내겐 강한 탄성으로 돌아올 수 있는 리셋 버튼이 있었다.

리셋이 필요한 순간. 리셋을 누를 수 있는 순간 또한 역시 아이가 내 품에 안 겨올 때였다.

문득 아이를 낳기 전 막연히 아이와 함께 하는 하루들에 대해 가졌던 이상적인 장면들을 떠올렸다. 웃음, 녹지에서 뛰는 아이, 아이의 모든 걱정과 불안을 순식간에 녹여버리는 내 품, 같이 잡고 걷는 손, 산책, 바다, 웃음, 자라면서 나와 나란해지는 어깨. 이상은 이상이였고 현실은 늘어난 티셔츠와 마지막으로 써본 게 언제인지 굳어가는 색조 화장품들이었지만 그 모든 순간에도 내가 바랬던 건, 

'건강하게만 자라라오, 살면서 만나게 될 고통이나 불행을 펼 수 있는 주름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을 가지길, 넘어져도 쓰러져도 칼에 베인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모든 순간에 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일어나주길' 이었다.



그래서 문득 갑자기 떠나기로 결심했다. 떠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지만 가장 나다운 방법을 선택했다.

리셋 버튼을 누르기 위해, 나를 사랑하고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 균형을 찾기 위해, 아이를 낳기 전의 나를 조금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에, 아이에게 낯설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행복을 채워주고 싶어서, 잠시나마 모든 것을 잊고 아이와 둘만 함께하는 행복에 집중하기 위해.


조금은 빠듯한 예산과 아빠 없이 단 둘이 해야만 하는 긴장, 끝나고 나면 아이가 어린데 가능할까, 힘들진 않을까 하며 몸 사리고 지레 걱정했던 일들을 조금 더 과감하게 할 수 있는 용기와 배짱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별로 대단하지 않은 발리 여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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