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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나 Nov 02. 2023

16 자살이 불법이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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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송사에서 마인드 박스를 중심으로 가상과 현실 자아에 대한 특집을 방영했고 방송사의 의도와는 정 반대로 대중의 반응은 폭발했다. 오히려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에게 죽어도 된다고 불을 지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검증된 천국을 발견한 것처럼 눈물을 흘렸다. 논란만 남긴 특집 방송 이후 한국에서만 마인드 박스로 들어간 사람만 150명이 되었다. 

여전히 보수적인 대한민국에서 100명이 넘는 숫자는 한동안 큰 의미를 가졌다. 전 세계로 따지면 70000명이 넘었다. 한국에서 최초로 디지털 휴먼이라고 명명된 김수정 다음으로 30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끊는 데는 두 달도 걸리지 않았다. 증명된 사후 세계로 향하는 길목은 북적거렸다.

자살이 불법이 될 수 있는가. 

안락사와 같은 관점으로 마인드 박스는 불법이 될 수 있다. 자살 방조도 가능할 것이다. 어떤 방식이든 이를 막을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것이 국회의 새로운 사명이 되었다. 일부 원리주의 단체에선 엑스에게 현상금까지 내걸었지만 해커들 중 아무도 그를 잡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제시되는 숫자와 달리 현실에서 체감되는 대부분 반응은 비슷했다. 


이해는 될 것 같아. 그래도 미쳤어. 미친놈들. 다 현실 부적응자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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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전쟁 또한 하나의 이벤트처럼 소비되는 시대에 마인드 박스 사건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사람이 죽어 나가고 수십 개의 데이터가 만들어졌지만 세상은 한 사람의 빈 공간조차 생기지 않은 것처럼 바쁘게 굴러갔다. 매일같이 죽어 나가는 사람들의 잔해를 청소하면서 그 잔해 속에서 더 이상 발견할 것이 권태와 피로밖에 남지 않았다는 건 남자에게 아무런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남자는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욕실로 향했다. 구석구석 정성 들여 비누 거품을 발랐다. 이 일을 시작하고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샤워 시간이 길어졌다는 것이었다. 일의 시작 전과 후에 몸에 붙은 죽음의 잔해를 티끌도 남기지 않겠다는 것처럼 몸을 꼼꼼히 세척했다.

전날 확인해 두었던 스케줄에 따라 지정된 청소지로 바로 출근했다. 

서 있는 게 용하게 보이는 오래된 빌라와 그나마 연식이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 빌라들이 구별 없이 서 있고 그 사이 반듯한 것은 도로밖에 없었다. 기술이 발전하고 시대가 변하면 기존에 고민하던 문제가 설탕이 물에 녹듯 해결될 것처럼 여겨졌지만 빌라촌의 주차난과 무단 쓰레기 배출은 여전했다. 어쩜 이렇게 진부할까. 자신의 할머니와 어머니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보아 왔던 건축양식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쉽게 사각형에 집착하는 건축 양식을 버리지 못했다. 그건 단지 미적 취향의 문제라기보단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자본의 흐름 때문이기도 했다. 높고 둥글고 반짝반짝 빛나는 기하학무늬들은 이 골목까지 들어오지 못했을 뿐이었다.


시간은 칼같이 지키는 성격이라 일찍 도착해 정시까지 문 앞에 서서 기다리다 열고 들어갔다. 맞닥뜨린 것은 예상외의 것이었다. 느낌이 좋지 않은데. 현관문을 여는데 앞이 육중한 물체에 막힌 것 같이 움직이지 않았다. 꽤나 힘을 들여 어렵사리 문을 열자마자 바깥으로 조금씩 새어 나오던 응축된 악취가 급습했다. 악취의 원인인 세간 살이라 말하기 민망한 쓰레기들이 집 안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남자는 집주인의 저장 강박증을 의심했다. 발 디딜 틈을 만들 생각도 하지 않고 쓰레기 더미 위를 밟고 건너갔다. 공간의 한 부분은 산을 타듯 매달려 가야 하기도 했다.

남자는 파트너가 오기 전에 어떤 동선으로 일을 해야 할지 확인하고 싶었다. 방 두 칸짜리 집에서 방 하나씩 전담하는 걸로 나누면 간단한 일인데 그래도 남자는 조금이라도 수월한 쪽을 하고 싶었다. 아마도 안방이겠지, 방문을 밀었는데 현관문과 마찬가지로 문 뒤로 쌓인 쓰레기 더미 덕에 꽤 힘을 써야 했다. 남자의 힘에 밀려 물건들이 떨어지고 밀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미 쓰레기 더미로 가득한 공간에 질서가 좀 흐트러졌다고 한들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남자는 자신의 신발 아래 구겨진 최초의 민간 우주 여행사 시대 도래라고 써진 월간지를 옆으로 밀어 넣었다. 우주여행을 가고 싶었던 걸까. 이미 구독물의 기능을 잃은 지 오래인 잡지가 죽은 이에겐 어떤 의미였던 걸까. 


남자는 남은 방문을 열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쓰레기더미에 걸려 방문이 반쯤 열리다 말았다. 힘을 주어 문을 밀던 남자는 거대한 물체에 시야가 막힌 채로 당황하여 순간 힘을 잃고 뒤로 미끄러졌다.

아이씨 재수 없게. 시체를 보는 일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남자는 방안에 덩그러니 매달려 있는 시체에게 등을 돌리고 전화를 걸었다. 원래 청소 전에 시체는 수거해 가야 하는데 요즘은 하도 사망률이 높아지다 보니 수거반부터 스케줄이 밀리기 시작했다. 업무 과부하로 스케줄이 꼬여 수거 완료 되지 않은 방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종종 건너 듣긴 했지만 막상 맞닥뜨려보니 불쾌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해는 되지만 이해가 된다고 모든 게 용납되는 건 아니었다.


"여기 수거 안 됐잖아! 아니 이미 와 있는데! 마감 처리를 해야 다음 청소를 하러 가지 이래선 아무 데도 못 가잖아! 빨리 사람 보내!"


남자가 이 일을 시작하면서 배운 건 상대의 사정을 봐주자면 끝이 없고 불똥은 늘 인정을 베푸는 쪽에 튀기 마련이란 것이었다.


세상엔 단절된 사람들이 많았다. 

누구와도 연결되지 못하고 홀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남자는 직접 발로 뛰며 깨달았다.  남자는 고개를 돌려 죽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집 안의 가장 높은 곳에 목을 매달았음에도 바닥과 발이 멀지 않은 곳에서 대롱거리고 있었다. 남자의 꺾인 목 뒤로 삽입된 칩의 흔적이 보였다. 그럼 그렇지. 마인드 박스에 들어가겠다고 지 목을 부러뜨린 놈이구만. 목 뒤에 난 난잡한 구멍에 꽂혀 있었을 연결선들이 바닥에 떨어지려다 남자의 다리에 걸려 매달려 있었다. 매끄럽지 않은 이 모든 것이 불법 시술의 증거였다. 이런 고통스러운 방법을 선택하는 건 어지간히 돈이 없는 놈이었단 뜻이기도 했다. 원래라면 당국에 신고해야 했으나 이런 케이스가 하도 많아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도 그냥 넘어갈 것이 뻔했다.


사태가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자 정부에선 마인드 박스를 불법으로 규정했지만 늦은 결정이었다. 마인드 박스를 불법으로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냥 자살과 마인드 박스행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면피성 법안이었다. 죽음은 죽음으로 끝내야 한다. 정신을 복제하려는 시도나 행위는 불법이다. 법은 아무런 집행력도 갖지 못했다.

천국으로 갈 방법이 있다는 데 작은 오류가 있었다 한들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생이 죽음보다 못했던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죽음뿐, 이 세상을 벗어난다는데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보통 불법적인 방법으로 마인드 박스에 접속하려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법은 약물이었다. 그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었지만 일단 뒷생각 없이 주입만 하고 나면 몽롱해지고 뭐가 일어나는지도 모르니까, 설사 마지막에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고 한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편리함 때문에 인기 있었다. 그런데 그럴 수도 없었다는 건 말 다 한 셈이었다. 

그나저나 성공은 했을까? 업로딩 중 생체 반응이 제대로 싱크 되지 않으면 에러가 나서 실패하기도 한다던데. 사기당한 것은 아닐까. 티끌만큼 남기고 간 인간의 존엄성을 비웃듯이 오물이 바지단을 타고 내려왔다. 남자는 곧 합류할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여유가 생긴 틈에 아침을 먹고 들어오자 수거가 끝나 있었다. 늦게 와도 된다고 했건만 후배는 제시간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다녀오셨어요.”

“어, 오래간만에 시간이 나서 아점.”


표정을 보니 또 혼자 감상에 빠져 있는 모양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주변에 친한 가족과 연인이 모두 마인드 박스에 들어가기 위해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그는 따라갈 용기도 혼자 살아갈 자신도 없어 상실감조차 모두 잊기로 결심했는지 모른다. 그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잊고 그들을 상실했다는 자신조차 잊기로.


막상 작업을 시작하니 생각보다 쓰레기가 더 많았다. 마음이 텅 빈 사람들은 마음의 공허만큼 방을 비워내지 못했다. 멀쩡한 물건을 가져다 쓰레기로 만들고 온 집안을 가득 채우고도 마음을 채우기엔 부족해 계속해서 무언갈 이 방에 처넣었을지도 몰랐다. 아마도 그런 심정이었겠지. 남자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참을 수 없었다. 이 일을 시작하고 난 뒤 짜증이 쉽게 올랐다 내렸다. 그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아이 씨발. 죽기 전에 청소나 좀 하고 가지.”


해서는 안 될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말들이 쉽게 나왔다. 뱉어진 말에 그래도 후배 눈치를 좀 봤는데 후배가 멍하니 모니터 화면을 보고 서 있었다. 


“그래그래, 돈이 없건 있건 이제 저거 없으면 살 수나 있겠냐”

“유서인가 봐요.”


남자의 말은 무시하고 후배가 말했다. 화면의 죽은 이의 아바타가 띄워져 있었다. 터치하면 금방이라도 자신의 슬픔을 줄줄이 토해낼 기세였다. 어쩜 아바타도 지 같이 만들었을까, 이번엔 육성으로 옮기진 않았다. 남자는 후배가 화면을 건드릴까 싶어 재빠르게 모니터를 통째로 비닐봉지에 넣었다. 남자에게 타인의 유서는 신파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초반엔 죽은 사람들의 공허와 슬픔에 며칠을 힘들어하기도 했던 남자였지만 어느새 슬픔도 고통도 모두 지겹도록 보고 나니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지겹다 지겨워. 무의식적으로 지겹다는 말을 내뱉으며 쓰레기를 담던 남자에게 후배는 영원히 등을 쫓는 남자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마 자기 얘기일 것이라 짐작은 하지만 묻지도 대꾸하지도 않았다. 매번 반복되는 후배의 이야기도 시작과 함께 지겨웠지만 후배에겐 차마 지겹다란 말을 내뱉지 못했다. 대신 남자는 창문 너머 둥글고 높고 빛나는 건물의 꼭대기가 어제보다 높아져 낡은 건물들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걸 바라보았다. 

이 풍경 또한 지겹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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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5분 뉴스


지난 달 XX동 일가족이 번개탄을 피우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 곳에 거주하던 8살 아이에게 장애가 있었다고 합니다. 아이는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1살 정도의 지능으로 부모 모두 양육과 생활고로 지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족이 지내던 반지하 원룸입니다. 반지하의 주거 형태는 모두 없어졌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테지만 아직도 도시 곳곳에서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의 최전선으로 남아 있습니다. 발견한 이웃의 말에 따르면 아이를 24시간 케어해야 했기 때문에 주변에서 아이와 엄마를 자주 본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

“가끔 아이가 너무 울어서 민원이 들어왔다는 말을 듣기는 했었는데 실제로 본 적은…”

아버지의 월급으로 생활비와 아이의 의료비를 전부 케어하기 힘들었지만 정부에서 나오는 지원금의 대상이 되지 못 했습니다.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아이를 품에 안고 있어 주변의 안타까움이 더했습니다. 어머니가 남긴 유서에 따르면 일가족 모두 마인드 박스로 들어가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곳이 불완전한 천국일지라도 우리 아이와 저에겐 이 곳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아이의 어머니가 남긴 유서의 일부입니다.


반면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을 살해한 아내가 남편을 마인드 박스에 엑세스를 시도한 것으로 위장하려다 경찰 조사에서 발각되었습니다. 남편 앞으로 든 여러 개의 사망 보험금을 노린 범행으로 밝혀졌는데요, 유사 범죄가 우려되는 만큼 주의를 기울여야겠습니다.


최근 들어 마인드 박스가 한국에서 불법화되면서 불법적인 경로로 마인드 박스에 엑세스 하려는 시도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은 약물 사용은 물론 이를 이용해 돈벌이를 하거나 사기를 치는 해커들도 많습니다. 전문가 말에 따르면 이들 중 대부분이 사기일 확률이 높고 전문가의 도움 없이 마인드 박스에 들어갈 수 있다고 보증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또한 실패할 경우 예상할 수 없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우려가 된다고 하는데요. 이에 사람들은 무작정 마인드 박스를 불법화보다 현실을 포기 하지 않도록 정부 차원에서 음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먼저라고 말합니다.


남자가 귀 깊은 곳에서 콩알 같이 생긴 이어폰을 꺼냈다. 인공지능은 더 이상 이 영상을 보고 싶지 않아, 라는 남자의 요구를 읽고 자동으로 화면을 종료하였다.

이번 정류장은 - 때마침 나오는 안내 방송에 남자는 버스에서 내렸다. 목적지를 향해 망설임 없이 가는 발걸음에 어떤 감정도 실려있지 않은듯. 휘적휘적. 제 갈길을 가는 우직스러운 다리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건 이미 영혼이 새어나간 것 같던 남자의 눈 때문이었을까. 

5분에 한번, 혹은 더 자주 남자는 습관처럼 말했다. 지겹다 지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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