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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샘 장철호 Jan 08. 2021

뜬금없는 만남

# 편견의 오류




회색 도시에서 살고 있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유행처럼 생겨났다는 혁신으로 포장한 도시! 보랏빛 날개를 달고 와서는 동네의 분위기를 한껏 바꿔 버렸다. 새소리, 바람 소리로 가득했던 뒷산 언저리는 공사장의 연기와 소음들로 가득해졌고, 아파트와 관공서들이 들어와 터를 잡았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서울이나 수도권에 있다가 거의 반강제적으로 내려와 있는 터라 주말이면 다시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되돌아갔다. 마치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는 듯한 느낌이랄까? 이곳 직원들이 습관처럼 하는 말이 있다. “이전 당했다.” 또는 “끌려 내려왔다.” 등의 수동태가 지배적으로 사용된다. 이 피동적이고 바라지 않던 삶을 하릴없이 계속하다 보면 차츰차츰 자신을 볼모로 삼은 철학자가 되어간다. 

  무엇보다 나의 생활루틴에도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주해 온 수많은 사람과 뒤섞여 살아가면서 발걸음이 왠지 모르게 빨라지고 심적 여유도 조금씩 잃어갔다. 원치 않게 먼 타지로 내려올 수밖에 없는 심정을 어느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무표정한 표정,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항상 이어폰을 꽂고 달리는 모습들. 인사를 나누는 건 둘째치고 눈 한번 마주칠 여유가 없으니 다들 쌍둥이인 줄 착각이 들 정도였다. 뭘 그렇게까지야? 조금은 민감한 생각일 수도 있겠다. 

  “도시에서 사는 생활이 다 그렇지 않은가?”라고 반문하면 할 말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문득 이전의 동네 분위기가 떠오른다. 본래 이 동네는 고구마 한 소쿠리를 들고 가면 되돌아오는 소쿠리에는 옥수수가 빈자리를 채워서 돌아왔다. 고급스러운 왕래는 아닐지라도 소박한 인간미가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동네 주민 중엔 자신의 땅과 집을 팔고 외지로 나가버린 영향 탓도 있겠지만, 예전의 사람 냄새났던 그 동네가 새삼 그리워지곤 하는 이유다.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게 들어서고 단독주택들이 지어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똑같은 표정과 발걸음으로 바삐 움직인다. 꼭 자신이 다니는 길에 검은 줄을 긋고 자석에 끌리듯 이동한다. 지금의 동네 느낌을 표현해보라고 한다면 회색빛에 검은 줄이 정답일 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고정관념처럼 메말라가던 단단한 껍데기의 벽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갈 때쯤 퇴근길의 한 모퉁이에서 우연을 가장한 녀석을 만나게 되었다. 

  “아옹~”귀여운 소리에 귀가 솔깃해졌다.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엎드려 있는 새끼고양이였다. 고양이 쪽으로 다가가려고 한 발짝 움직이니 그대로 멀리 도망가 버렸다. 예전부터 근처에 살던 것 같았는데 도둑고양이나 들고양인 것처럼 보였다. 원래 동물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눈여겨보지 않던 사소한 것들에게 관심이 갔다.

  다음날 똑같은 시각 근처 울타리 옆에서 녀석을 다시 만났다. 맘에 드는 누군가를 다시 만나는 것처럼 묘한 기분. 요리조리 눈치만 살피고 있길래 마침 가지고 있던 햄버거를 조금 떼서 던져 주었다. 그랬더니 살금살금 다가와서 혀를 날름거렸다. 겁을 먹어서인지 꼬리는 잔뜩 내리고 경계는 절대로 늦추지 않았다. 순간 오래 함께한 친구와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따뜻한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그 녀석 입이 고급지더라고요.”

  그때 등 뒤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되돌아보니 이름은 모르지만 낯설지 않은, 아마도 집 앞에서 수백 번은 더 봤을 법한 선한 얼굴의 남성이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아! 그런가요? 고양이를 안 지 오래되었나 보네요?”

  그동안 말을 걸어오기를 기다렸다는 사람처럼 어색한 대답을 했다. 

  “고양이가 숙소 앞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더라고요.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랬을까 생각하며 과자 하나를 던져 줬죠? 아니 글쎄, 킁킁! 냄새만 맞고는 안 먹더라고요.”

  말을 전혀 할 것 같지 않았던 그의 입술은 한풀이라도 하듯 춤을 췄다. 

  “다음날엔 치킨 한 조각을 던져 주었죠. 예상대로 그건 잘 먹데요. 나름 재미도 있고 해서 고양이와 거의 매일 만났죠. 녀석도 나를 기다리는 것 같고….”

  그는 역시나 공기업 기관의 직원이었고, 가족들을 서울에 두고 혼자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식구들과 멀리 떨어져 있으니 외로운 시간이 많고,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생활에 무료해지고 있다고도 했다. 괜스레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에게 관심을 가지는 건 쓸쓸함을 달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까? 고양이에서 파생된 말의 가지들은 거미줄처럼 엉켜서 우리를 둘러쌌다. 입에서 입으로, 눈에서 눈으로, 비슷한 공감대를 만난 사람들처럼 시시덕거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네에서 다른 누군가와 선 자리에서 대화를 해본 지가 언제였던가?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나의 또 다른 뇌는 오류를 일으키고 있었다.

  ‘참, 고집스럽게도. 왜? 사람들을 나의 고정된 틀 속에 가두려고 했을까? 그 사람들도 자기만의 생각과 리듬을 가지고 잘 살아갈 텐데….’

  편견의 오류에서 오는 민망함은 나의 시계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했다. 혼탁해져 갔던 마음이 조금은 맑아지는 것 같았다. 

  “내일은 제가 저 녀석 간식 당번이네요?”

  그의 농담 같은 진담에 우리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다음은 마치 짜여진 각본처럼 흘러갔다. 너무나 당연한 듯이 자연스러웠다. 그와는 마주칠 때마다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고, 주인 없는 애완동물? 아니 둘만의 반려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공동 취미 또한 가질 수 있었다.

  일상이 지쳐갈 때쯤 뜬금없이 나타났던 작은 고양이 한 마리, 아니 지구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해준 그 남자의 덤덤했던 말 한마디!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던 마음에 색깔을 입혀 주었다. 그렇다. 일상의 소소하고 즐거운 만남은 언제든 뜬금없이 찾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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