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한 부부관계를 소망하시는 분들께-
오늘은 우리 부부가 결혼한 지 딱 30년이 되는 날입니다. 1991년 9월 1일에 결혼했거든요. 참 많은 세월이 흘렀어요. 그 사이 두 딸은 자라 자신들의 삶을 잘 꾸려가고 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결혼 30주년이 되면 “리마인드 웨딩 사진을 찍을까? 어떤 선물을 주고받을까? 어디로 여행을 갈까?” 하고 고민을 했지요. 그런데 코로나-19로 지쳐서인지 우리 부부는 작은 리츄얼 한 가지만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일요일에 집에서 가까운 은해사에 가서 30년을 추억하며, 반성도 하고 앞으로 남은 결혼생활에 대해 설계를 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지난 30년을 돌아보니 좋았던 일보다 고통스럽고 힘든 일들이 떠올라 눈물이 났습니다. 과일을 깎다가 칼에 손을 베면 피도 나고 쓰라리고 아픕니다. 남편과의 불화로 싸우고 험한 말이 오갈 때는 가슴이 칼에 베인 것처럼 너무도 아프고 괴로웠습니다. 아이들 교육 문제로 다투었을 때도 모든 잘못을 나에게만 전가시키는 것 같아 또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릅니다. 남편도 저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모든 것을 제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려하고, 기분이나 감정에 따라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습관을 받아주는 것이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사랑해서 결혼했고 가장 행복하게 잘 지내야 하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가깝고 만만하다는 이유로 우리는 서로에게 무례해지고 상처를 주고 힘들게 한 적이 많았습니다.
은해사 가는 길에 우리는 예전에 너무 철이 없었고 무지했다고 서로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이제 남은 삶은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살아보자고 손을 잡았습니다. 지난날 좀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삶을 살았다면 좋았겠지만 고통과 시련의 시간이 있었기에 우리는 성숙해졌고 또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부부가 30년 동안 생활하면서 터득한 상처 치유법을 다음과 같이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상대방의 언어를 해석해 보세요.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힘들다고 하자 남편은 “그러게 한의원에 가지 왜 그렇게 병을 묵히노?”라고 말을 하는데 제가 듣기에 마치 화를 내고 타박을 하는 것으로 들렸습니다. 처음엔 가슴 속에서 저항감이 확 밀려오며 기분이 나빠져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의도를 생각해 보니 그 말은 “당신 속 아픈 게 너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워. 그러니 빨리 치료를 하면 좋겠어.”라고 외국어를 번역하듯 마음을 헤아려 들으니 완전히 다르게 들렸습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나오는 말투나 태도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편도 제가 무심코 내 뱉은 말투에 화를 내는 것으로 오해를 하곤 하거든요. 그러니 습관의 저 아래 묻힌 진짜 마음을 해석해 보세요. 그러면 상처받은 마음이 조금이나마 치유가 될 것입니다.
둘째, 가벼운 스킨십을 활용해 보세요. 우리 부부는 싸우거나 힘든 일이 있어도 아침에 출근할 때는 항상 가볍게 포옹을 하고 나갑니다. 기분이 나빠도 그것은 별개이고 때가 되면 식사를 하는 것처럼 합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니 행복하다.”라는 말이 있지요. 매일 매일 가벼운 포옹을 하게 되면 신기하게도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됩니다. 그래서인지 웬만한 나쁜 일은 잊어버리고 저녁엔 웃으며 맞이하곤 합니다. 또 저는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에도 그것과 별개로 남편에게 주물러 달라는 소리를 잘 합니다. 어깨나 허리가 아플 때 남편이 주물러 주면 기분 나쁜 일도 잊어버리고 주물러 주는 그 자체로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됩니다.
셋째, 평소 하던 일은 멈추지 말고 해 보세요. 보통 부부싸움을 하거나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에라, 모르겠다.’라고 해야 할 일을 내팽개치고 싶어집니다. 식사준비도 집안일도 하기 싫고, 집에도 들어가기 싫고 그저 회피하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우리 부부는 싸움은 싸움이고 할 일은 평소와 똑 같이 합니다. 간밤에 심하게 싸워도 다음날 아침 저는 정성들여 밥을 해 줍니다. 물론 남편도 해야 할 집안일을 묵묵히 합니다. 그러다 보면 서로 바라보며 피식 웃으며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 나갑니다. 가령 부부싸움을 했다고 밥을 하지 않거나 집안일을 미루면서 거리를 두면 관계는 계속 더 악화됩니다. 불만이나 화가 눈덩이처럼 쌓여서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넷째, 정말 어쩔 수 없을 땐 기대를 버리고 자신에게 몰입해 보세요.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배우자와의 관계가 어긋나기만 할 때는 기대를 버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해 보세요. 기대를 버리는 일이 마음같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을 때도 있지요. 저도 젊었을 때 남편과 사이가 너무 안 좋았는데 회복될 기미가 없었어요. 회피의 방법이긴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공부와 일에 몰입했습니다. 사회 속에서 점점 인정도 받고 자존감도 올라가니 즐겁고 행복해지기 시작했어요. 저의 에너지가 긍정적으로 변하니 남편과의 관계도 조금씩 좋아지고 상처도 조금씩 치유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관계 속에서 오는 문제의 원인이 나로부터 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남편과 삶 속에서 한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부부사이에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간에 많은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신혼에는 드러나지 않던 문제들이 자녀를 낳고 양육하면서, 또 양가의 대소사를 거치면서 조금씩 불거지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만 아프고 괴롭다고 토로하기 싶습니다. 서로를 보듬고 위로해 줄 여력이 없지요. 또 한편으로는 상처나 아픔도 꾹꾹 누르며 무거운 마음으로 살아갈 때도 있습니다.
저처럼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깨닫게 됩니다. 참으로 소중한 시간을 너무 아웅다웅 하면서 허비했다는 것을. 순간의 기분이나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해 상대방에게 심한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배려와 친절을 베풀어야 할 소중한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무신경하게 행동해서 상처를 주거나 좋지 않은 말 습관으로 상처를 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에게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요? 이 소중한 시간을 상처받지 않도록 서로 노력하고 만약 상처를 받았다면 위의 네 가지 방법으로 치유해 보시길 권해 봅니다. 여러분 모두 소중한 영혼의 단짝이 되어 주시고, 축복 가득한 부부가 되시길 빌어봅니다.
* 위의 사진은 은해사 입구 방문객들이 쌓아올린 돌탑: 직찍
* 메인의 포옹 사진 출처: unsplash
*자녀의 성공과 행복을 위해서 원하는 것을 다해주고 뒷바라지 해주는데 내 맘같이 자라주지 않아 마음 고생하시는 분, 자녀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분이시라면 저의 책 '초등엄마 거리두기 법칙'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