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지키고 행복해 지는 법-
『숲속의 자본주의자』의 작가 박혜윤은 일상에서 화가 날 때 재빨리 ‘몸이 화라는 목욕탕 뜨거운 물에 들어가고 있고 거기서 몸을 일으켜 물 밖으로 나오면 끝이라는 상상’을 한다고 한다. 나도 화가 날 일이 있을 때 이와 비슷한 상상을 하곤 한다. 화가 날 어떤 상황이나 일 앞에 가상의 유리벽을 세우고 나와 차단시킨다. 마음속으로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게 되면 신기하게도 화가 잘 나지 않는다. 그래서 감정적인 대처보다는 이성적인 대처를 먼저 하는 편이다.
직장처럼 사회 관계 속에서나 우리 딸들과 관계된 일에는 솔직히 이 상상이 잘 먹히고 화를 잘 내지 않는 편인데 유독 남편과의 관계에선 그렇지 않다. 아킬레스건인 셈이다. 결혼 후 30년을 살면서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많았다. 결혼 초에는 우울증에 공황장애까지 앓으면서 삶의 끈을 놓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나는 왜 유독 남편과의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지 스스로 탐구해 보고 싶었다. 솔직히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결과 남편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고 행복해 지기 위해 결단(decision)→진단(diagnosis)→실행(implement)의 3단계의 과정을 생각해냈다.
가장 먼저 나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로 결단을 내렸다. 이것은 더 이상 남편과의 관계에서 힘든 일로 질질 끌려 다니며 괴로워하는 삶을 거부하겠다는 신념을 세우는 것과 같다. 물론 세상을 살다보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삶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확고하게 세우는 것만으로도 이를 극복할 에너지가 생겨난다. 그렇다고 남편이 일방적으로 나에게 고통과 상처를 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마 남편 입장에서 보면 더 상처를 받고 고통을 받았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서로 스스로를 지키고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그래서 이 방법은 남편에게도 해당되는 방법이다.
두 번째로 내가 왜 남편과의 결혼생활에서 그렇게 힘들어 했는지 스스로 탐구해 보고 진단해 보았다. 그것은 내가 남편을 나와 동일시했고, 너무 기대를 했기 때문이다. 남녀가 서로 사랑하고 결혼을 하면서 착각하는 것이 하나있다. 그것은 배우자가 나와 똑 같은 관점에서 생각하고 다 해주어야 한다는 착각이다. 나도 그랬다. 사랑해서 결혼했고 남편이라면 나를 무조건 사랑해주고 어떤 일이 있어도 수호신처럼 나를 감싸주고 힘든 일도 도와주어야 한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남편도 그가 가진 고유의 성격과 특성이 있는데 나와 똑 같이 맞춰주길 바라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일이라는 것을 한참 뒤에야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를 완벽하게 알려고 한다던 지 모든 것을 내가 컨트롤해야 한다던 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내려놓아야 한다.
남편은 리모컨이나 핸드폰과 같은 전자기기에 굉장히 민감하다. 테이블 모서리에 이런 기기들을 놓으면 화를 벌컥 내며 행동을 바로 잡으려 한다. 나는 순간적으로 상처를 받으면서 ‘그게 뭐 그리 대수일까?’ 라는 태도로 시큰둥하게 반응한다. 그런데 어쩌다 자동차 키를 안가지고 내려간 날 남편이 “엘리베이터에 자동차 키 좀 넣고 1층으로 내려줘.”라고 말하면 나는 키를 잃어버릴까봐 불안해서 일층까지 내려가 가져다준다. 불안이 작동하는 지점이 다른 것이다.
또 결혼생활 30년 동안 늦게 들어오는 남편의 습관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남편은 노는 것 좋아하고 사람 좋아해서인지 자주 사람들과 어울린다. 그런데 문제는 지나치게 늦게 들어오는 날이 있다는 것이다. 남편이 늦게 들어와도 어느 정도 시간까지는 별 어려움 없이 일상생활을 해 나가다가 임계치를 넘기게 되면 나는 발작 수준의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다. 『최악을 극복하는 힘』에서 엘리자베스 스탠리가 말하듯이 외부 자극을 견딜 수 있는 범위인 인내의 창이 특정 영역에서 몹시 좁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부정적인 성향이 강화되어 남편을 의심하고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상상으로 괴롭다. 남편이 늦게 들어오는 날은 내 불행의 모든 원인이 남편이라며 비난하기도 한다. 이것은 순전히 남편의 특성과 나의 특성이 만나서 일어나는 화학작용 같은 것으로 생각된다.
세 번째로 나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마인드 체인지를 실행하고 있다. 남편과의 충돌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고통을 받으면 나는 신체화 현상이 바로 나타난다. 머리가 어지럽고 멍해지거나 온 몸이 독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통증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심할 때는 호흡곤란까지 온다. 내가 빨리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나름의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던 중 박혜윤 작가를 통해 짐 볼트 테일러의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감정이 내 몸에 계속 남아 있게 할지, 아니면 내 몸에서 곧장 흘러 나가게 해야 하는지 판단할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라는 대목은 내가 바로 감정을 유리벽이 있다고 생각하고 차단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또 뇌 가소성을 믿고, 경험을 우뇌에 접속하는 새로운 회로를 만들어가는 방법은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 경험을 어떻게 지각하고 받아 들이냐에 따라 결과는 사뭇 다르기에 마인드 체인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이는 현재 처해진 상황을 세심하게 살피고 마음을 돌본 다음 긍정적으로 재해석하고 내가 이 상황을 컨트롤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리고 나쁜 상황을 예측해보고 연결회로를 끊어버리는 방법도 포함한다.
남편과의 관계에서 유독 어려움을 느끼는 데는 어렸을 때 트라우마도 어느 정도 작동했으리라 생각된다. 가정폭력이 일어났던 조부모에 대한 기억과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무의식 속에서 불에 덴 상처처럼 나타났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불만을 빈정거리는 말투로 이야기하는 것,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정들을 부글부글 끓는 냄비 같은 상태로 저장하고 있는 것도 좋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현재 나의 상태를 바로 알아가면서 상처 받거나 고통 받을 때 정확한 상태를 인식하고 연결회로를 바꾸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남편이 가졌을 트라우마나 어려움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재해석하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이제는 남편에게도 나의 상황이나 기분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이야기 한다.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부부 사이의 문제로 상처를 전혀 받지 않을 수는 없지만 조금씩 개선해 가고 있으며,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인내의 창도 넓혀가고 있다.
주변에 부부간의 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본다. 수십 년을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각자의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자체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결혼 초기엔 사랑의 힘으로 극복이 되다가도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면 조금씩 문제가 불거진다. 사소한 말투 때문에, 습관 때문에 성격 때문에 신념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준다. 만약 여러분이 부부사이에 상처로 괴로움을 겪고 계신다면 결단-진단-실행의 3단계 방법을 활용하셔서 행복한 부부관계를 회복하시길 권해 본다.
* 자녀의 성공과 행복을 위해서 원하는 것을 다해주고 뒷바라지 해주는데 내 맘같이 자라주지 않아 마음 고생하시는 분, 자녀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분이시라면 저의 책 '초등엄마 거리두기 법칙'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