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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명자 May 04. 2021

윤희야, 산책 가자

- 내 영혼을 나눠가진 그를 찾아 헤매던 나에게 -


 

친구란 두 개의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지난겨울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도예가 변훈 선생의 도자기는 쓰면 쓸수록 매력이 느껴진다. 도자기가 숨을 쉬어 음식이 더 신선해 지고, 품격이 느껴져 언젠가 꼭 다시 찾고 싶었다. 벼르고 벼르다 4월 말이 되어서야 짬을 낼 수 있었다. 밀양 산내로 가는 길 풍경은 쑥을 뜯어 절구에 콩콩 찧어 즙을 낸 것처럼 싱그러웠다. 밀양 산내면사무소를 지나 과수원 사이로 난 좁을 길을 따라 ‘도호요’에 도착하자 변훈 선생과 그의 아내 윤희씨가 반가운 얼굴로 맞는다.     


지난번에 짙은 색의 ‘이라보’라는 생활도자기를 샀고 이번엔 백자를 구입했다. 차실에 앉아 변훈 선생이 격불 해 준 말차를 마셨다. 잘게 부서진 연초록 차가 거품과 함께 몸속으로 들어가니 마음까지 맑아진다. 맑은 영혼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는 변훈 선생은 오로지 전통 방식만을 고집하는 분이다. 작가가 직접 땅 속에서 아주 오래 있었던 돌을 찾아 곱게 부수어 성형을 하고, 참나무만을 태워 수개월 동안 수비를 해 얻어진 귀한 유약을 만들어 입히고 ‘전통 망생이 장작 가마’에 구워 태어난 그의 도자기는 정성 그자체이다. 게다가 도자기 위에 섬세하게 그려낸 윤희씨의 솜씨는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차를 따르다 말고 무엇이 필요했는지 변훈 선생이 그의 아내 윤희씨에게 정감어린 부산 사투리로 “윤희야”라고 부른다. 그 말투 속에는 아내를 향한 절절한 사랑이 흘러넘쳤다. 마치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아, 어쩜 저렇게 다정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한참을 변훈 선생의 도자기에 대한 철학을 듣고 있는 동안 윤희씨가 어느 새 머위 잎을 따가 쌈밥을 만들고 소박한 저녁상을 차려냈다.   

 

식사를 하면서 나는 아까 변선생이 부르던 그 이름이 너무 정겨워 “윤희야” 다음에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냐고 짓궂게 물었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산책 가자”라고 한다. 그 모습엔 평생을 살아도 지겹지 않을 아내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느껴졌다. 그 ‘산책’이란 단어 속에는 소소하지만 더 없이 소중한 둘 만의 시간이 화면처럼 흐르는 것 같았다.       


조셉 캠벨이 『신화의 힘』에서 ‘결혼은 분리되어 있던 한 쌍의 재회(再會)’라고 했는데 딱 이 부부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이 세상에서 둘로 존재하던 사람이 결혼을 통해 영적 동일성을 찾게 된 것만 같았다. 어쩌면 편안한 친구 같기도 하고 연인 같기도 한 이 부부를 보면서 가슴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맛있는 커피까지 마셨다. 돌아오는 길엔 보름달이 훤했다.     


오랜만에 커피를 마신 탓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이 되어도 눈이 말똥말똥했다. 출근을 위해 눈을 좀 붙여하지 하고 누웠는데 갑자기 “윤희야”라고 부르는 소리가 가슴에서 슬며시 일어났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아, 내게도 이렇게 뜨거운 마음으로 이름을 불러준 사람이 었었던가? 아, 나도 하나의 영혼으로 맞닿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었구나!’     


뜬 눈으로 밤을 새운 그 새벽, 출근하는 남편을 불러 세웠다. 그리고 간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윤희야, 산책 가자!" 처럼 따뜻한 온도의 말을 듣고 싶었노라고. 그 소리를 듣던 남편이 미소를 지으며 내 앞에 섰다. 살며시 나를 안으며 “이 바보야, 니 옆에 내가 있잖아.”한다. 평소 무뚝뚝한 남편이 그렇게 나를 안아주는 것이 고마워 눈물을 흘렸다. 남편과 나의 영혼이 아직 하나로 겹쳐진 느낌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수련을 통해 하나가 될 수도 있으리라. ‘결혼한 사람은 자기 정체성을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하고, 관계 안에서 둘이 하나가 된다’는 조셉 캠벨의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돈다. 어쩌면 우리부부는 아직도 하나가 되기 위해 서로를 향해 조금씩 걸어가고 있는 중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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