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던져진 그 운명의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을
마치 핏자국 같았다. 데친 전복을 먹으려고 초장을 찍다가 앞치마에 흘리고 말았다. 양이 많았는지 속에 입고 있던 티셔츠까지 초장 범벅이 되었다. 그 자국은 칼에 벤 상처에서 나온 피처럼 붉고 선명했다. 섬찟 했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기려나?’ 섬광처럼 아주 잠깐 불길한 예감이 스쳐지나갔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남편은 일이 있다고 사무실로 다시 출근을 하고, 나는 갑자기 피곤이 몰려와서 ‘설거지는 조금만 자고 나서 해야지.’ 하고는 잠이 들고 말았다. “민아, 빨리 일어나봐.” 남편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다급한 목소리에 잠을 깨고 앉아서도 멍하니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으려니 “큰일 났어. 웬 놈이 가만히 서 있는 차 박살을 내놨어.” 그때까지도 나는 잠에서 덜 깬 눈으로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나?’하고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게 왜 맨날 지하에 차를 세우더니 오늘따라 지상에 주차를 내 놓은 거야?” 화가 단단히 난 남편이 큰 소리를 치며 책망을 하고 있었다. 그제 서야 나는 상황파악을 하고는 “응, 오늘 짐이 많아서 그랬지. 좀 있다 지하에 주차하려고 했는데…….”
급하게 내려가 보니, 음주를 한 50대 남자가 주차해 놓은 내 차를 박아서 그야말로 박살이 나 있었다. 얼마나 세게 박았는지 내 차가 왼쪽으로 밀려서 다른 차까지 피해를 입힌 상황이었다. 사고를 낸 그 사람은 선처를 해 달라고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한 눈에 그가 만취상태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곧이어 경찰차 세 대가 불빛을 번쩍거리며 도착했다. 아파트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와중에 부슬부슬 비까지 내렸다. 부서진 차를 보고 있으려니 화가 치밀고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우선은 내일 아침 지인들과 함께 충북 괴산에 있는 여우숲 학교에 문요한선생 강의를 들으러 가기로 한 약속이 문제였다. 형편이 여의치 않아서 내가 운전을 하려고 했는데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망가진 차를 보고 있으니 살이 떨리고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웠다. 불길한 예감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내일 호우와 강풍이 몰아친다는데 렌트카를 몰고 그 멀리까지 갈 수 있을까?’ 지인들에게 이 상황을 알렸더니 모두 예감이 좋지 않으니 약속을 취소하자고 입을 모았다.
우리가 얼마나 기대하고 고대하던 시간이었는가? 코로나19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지인들이기에 1박 2일 동안 못 다한 이야기도 나누고, 산막이 옛길을 걷기로 약속했는데, 행복한 기대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R은 “액땜했다고 생각하세요. 더 나쁜 일을 막으라는 신호일 수 있잖아요.” 라고 위로 했다. 사실 나는 이 여행을 계획하고서도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하고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나를 막고 있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R의 충고가 고마움으로 느껴진걸 보면 불길한 예감에 대한 트라우마가 꽤나 컸던 모양이다.
청송의 한 오지학교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3년째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1990년 5월 4일 아침, 머리를 감고 드라이를 하다가 책상 위에 임시로 세워둔 거울을 잘 못 건드려서 순식간에 박살이 났다. 가로 40센티 세로 70센티 정도의 크기에 나무 테두리로 된 거울이었는데 못이 빠져서 책상 위에 잠깐 세워 둔 것이었다. 깨진 유리를 치우면서 순간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스쳐지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다음 날이 마침 어린이날이라 설레는 마음을 안고 문경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집이 조용했다. 집을 샅샅이 뒤져도 인기척이 없기에 옆집 아주머니를 찾아가니 “아이구, 명자야. 큰일 났다. 너거 엄마 아버지 일 마치고 돌아오다 사고를 당했단다. 빨리 점촌에 있는 병원에 가봐라.”하시는 게 아닌가. 급하게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사고를 당한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직도 가시지 않은 온기가 느껴졌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 할 무렵 일을 마치고 경운기를 타고 집으로 오던 중에 무면허의 한 남자가 트럭을 몰고 가다가 미처 경운기를 보지 못하고 치고 만 것이다. 아버지는 사고 현장에서 숨을 거두셨고 엄마는 척추를 심하게 다쳐서 중환자가 되셨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것일까. 나는 내 몸에서 일어나는 예감이 두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마나 나는 혼자서 간단한 퇴마식 같은 것을 하곤 한다. 아주 행복한 장면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불길한 예감에 대적하는 것이다. 남 보기엔 아무런 의미 없는 행동일지라도 나에겐 사소한 위로가 되어주곤 한다. 우리는 살면서 운명에 어이없이 쓰러지곤 한다. 가만히 있는 차를 들이받아 박살을 내 놓는 것을 보고, 평온한 삶에서 아버지를 빼앗아 가는 것을 보면서 인간이 운명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실감한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우리에게 던져진 그 운명의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을.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영국인들은 인도에서 골치 아픈 생활을 잊고 여가도 즐길 겸 캘커타에 골프장을 만들었다. 그런데 골프를 칠 때마다 예상치 못한 방해꾼이 나타났다. 바로 원숭이였다. 원숭이들은 영국인들이 쳐올린 골프공이 필드에 떨어지자마자 얼른 집어가 엉뚱한 곳에다 떨어뜨리곤 했다. 당연히 경기는 지연되고 매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화가 난 영국인들은 골프장의 담장을 두 배로 높였지만 담타기 명수인 원숭이들이 그까짓 높이가 문제될 리 없었다. 영국인들이 그 작은 공에 그토록 미친 듯이 집착하는 것을 본 원숭이들은 더욱 신이 나서 골프공을 이리저리 굴리고 다녔다.
결국 영국인들은 새로운 골프 규칙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원숭이가 골프공을 떨어뜨린 바로 그 자리에서 경기를 진행하라”였다. 물론 이 새로운 규칙은 예상 밖의 결과를 가져왔다. 엉뚱한 곳으로 골프공이 날아갔는데 원숭이들이 그 공을 주워 다 홀컵에 떨어뜨리는 행운을 맛본 사람도 있었고, 간신히 홀컵 가까이 공을 보냈는데 원숭이가 재빨리 집어가 물속에 빠뜨리는 불운한 경우도 있었다. 행운과 불운이 매번 교차하는 사람도 있었다. (중략)
그들은 골프 경기만이 아니라 삶 또한 그렇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신의 계획대로 다 조종할 수 없다는 것을. 매번의 코스마다 긴꼬리원숭이가 튀어나와 골프공을 엉뚱한 곳에 떨어뜨려 놓는 것이 바로 우리 삶이라는 것을. (중략) 원숭이가 경기를 방해할 때마다, 원숭이가 공을 떨어뜨린 바로 그 자리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라 - 류시화의 책 『지구별 여행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