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신안뉴스는 2022년을 맞아 본지 칼럼니스트인 정영호 씨의 ‘먹거리 이야기’를 연재한다. ‘정영호의 먹거리 이야기’는 남도의 전통 맛과 먹거리를 찾아 체계화하고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마련된 코너다.(편집자 주)
장독대
“한국 음식의 기초는 장이다.”
여기서 장이라 함은 간장과 된장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 간장과 된장에는 한민족의 오랜 역사와 전통이 문화로 담겨있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한국 음식의 기초가 장인지는 의문이다. 어느 순간 음식에서 한국 고유의 장과 된장이 사라져가고 그 대신 외래음식이 파고들고 있다. 그중에서도 미국 사회를 통해 전해진 패스트푸드는 빠른 속도로 음식문화를 바꾸어 나가고 있다. 패스트푸드의 기초는 장과 된장 대신 밀가루와 식용유 설탕 소금이다. 장이라고 하는 느린 음식보다 식용유와 소금 설탕으로 만든 빠른 음식이 점점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며 식생활문화는 물론이며 먹거리경제 그리고 건강까지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다시금 장이라고 하는 고유의 느린 전통음식을 고민하게 된 것은 빠른 음식의 부작용 즉 역습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 집 식탁의 음식들은 된장이 기초다.
고기를 먹을 때 조미가공 쌈장보다는 집된장과 함께 먹으며 각종 나물을 무칠 때는 어김없이 된장으로 버무린다. 탕과 국 요리에는 된장이 모두 들어간다. 고기를 먹을 때 조미 쌈장보다 날된장으로 먹을 때 고기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날된장이 소화작용을 도와 고기를 먹고 소화가 잘된다. 봄철 머위, 미나리, 두릅, 취나물, 엄나무, 오가피 순 등등 모든 산나물은 살짝 데쳐서 된장으로 무친다. 된장은 봄나물의 참맛을 느끼게 해주며 입맛을 자극하고 소화흡수를 돕니다. 보리나 냉이 곰밤부리와 쑥국을 끓일 때 집된장은 필수다. 구수하며 속이 편안해진다. 토끼탕, 오리탕, 아귀탕, 동태탕 등 모든 탕 요리에는 된장이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육류나 생선의 잡내를 잡아주고 구수함을 더해 시원한 맛을 내게 해준다.
이렇다 보니 된장 맛이 그 집안의 음식 맛의 기초가 된다. 집마다 다른 음식 맛의 차이는 요리사의 차이기도 하지만 본질에서 된장 맛의 차이다.
집안의 맛이 다른 것은 된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콩이 된장으로 만들어지기까지는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먼저 6월에 콩을 심어 10월에 수확한 후 12월 말경에 콩을 푹 삶아 메주로 만들어 이것을 말리고 띄우며 다시 긴 건조과정을 거쳐 대보름 전에 장을 담그고 4월에 된장과 간장을 가르고 다시 된장은 최소 6개월 이상 뜨거운 여름날을 지나 먹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보면 시간상으로 된장이 만들어지기까지 1년하고도 석 달의 시간이 필요하다. 오뉴월 뜨거운 햇볕에 잘 익은 된장은 황톳빛을 닮은 노란 고운 빛을 띠는데 그 색만 보아도 입맛이 자극된다. 새 된장을 퍼와 붊은 고추를 찍어 먹으면 입맛이 돌며 여름 동안 지친 몸이 회복된다.
메주
메주를 만드는 방법은 물론이며 된장을 만드는 방법은 지역마다 마을마다 집집이 각기 다르다. 그러다 보니 된장 맛은 각기 제각각이고 각 가정의 음식 맛의 차이로 나타난다. 된장 이야기를 찾아서 무안군 해제면에서 유기농 된장 농사를 짓고 계시는 선생님과 나주 다시에서 전통음식 공부를 수행 중이신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결혼 이후 이십여 년 동안 된장 공부를 해온 나의 경험을 곁들여 된장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 모두 각기 다른 된장 만드는 방법을 지니셨고 그것은 각자가 살아온 경험의 이력에 따른 것이었다. 무엇이 옳고 그를 수 없으며 무엇이 효율적이고 비효율적이라 단정할 수 없다. 각각의 방식은 창의적이며 그 자체로 고유성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찾아온 된장을 만드는 방법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된장이 갖는 확장성의 가치는 더욱 넓고 크다. 현대 산업사회의 획일적 합리주의라는 좁은 그릇으로 담기에는 된장은 너무도 넓고 오래된 가치다. 해썹 중심의 식품위생법의 테두리로 된장을 가두다 보니 지금과 같은 출처 불명의 공장식 된장이 주류가 된 것 같다. 공장식 된장은 발효음식이 아니며 우리 콩과 무관하다. 그것은 전통과 상관없는 상업주의가 만들어낸 변종일 뿐이다.
우리집 장독대
된장의 우수성은 주변 토착미생물의 오랜 발효작용의 총화체라는 점에 있다. 된장 맛이 다른 것은 만든이가 지닌 미생물이 다른 것이며 집집이 미생물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메주를 삶아 자신들이 생활공간에서 함께 띄우고 건조했으며 집 마당에 장독대를 두고 함께 생활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된장에는 그 집안의 미생물이 함께 공존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네 집에는 장독대가 사라지고 된장과 장이 담겼던 옹기들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것은 동시에 우리 전통문화의 정체성 혼돈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대에 따라 문화가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오천 년 이어온 우리 음식문화의 총화인 장과 장독대가 사라져가는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나주선생댁 사립문
무안과 나주에서 만나본 두 분의 선생님을 통해서 공감했던 내용은 된장은 배우는데 긴 시간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요리는 언제든 짧은 시간에 가능하지만, 된장 공부는 일 년에 단 한 번만 가능하다. 된장이 단순 요리와 다른 근본적인 차이다. 된장은 요리이기도 하지만 자연의 작용이며 생활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된장에는 삶이 녹아들어 있다. 된장을 공부 중인 사람들은 된장 공부 십 년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자평한다. 나 또한 지극히 공감하고 이십여 년 된장 공부가 충분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 아직도 여전히 많이 부족하고 배울 것이 많다. 이십여 년 된장을 만들다 보니 이제 된장 맛 차이 정도를 느끼는 수준이 되었다.
이제 다시 자랑스러운 음식전통인 된장을 지켜가기 위한 사회적 국가적 노력이 절실하다. 아이들에게 된장을 먹이고 가르치는 일상적 교육은 물론이며 사회적 국가적 차원에서 된장을 지켜내는 제도개선과 투자가 절실하다. 요즘 아파트 도시 아이 중에는 생선이나 김치를 먹지 않는 아이들이 너무도 많다. 패스트푸드의 역습이다. 그로 인해 식습관이 서구화되고 역사 문화적 정체성의 상실로 이어질 것이다. 음식은 애국주의와 지역주의 기초 중의 기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젊은 세대가 정치에 관심이 없고 소위 애국심이 낮아지는 이유 중 하나가 음식문화에 대해 자기 정체성의 상실이다.
산업사회의 고도화 과정에서 가정의 역할이 날로 축소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마땅하다. 먹거리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GMO 곡물 완전표시제가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하며 아이들에게 전통의 식생활을 배우게 하는 제도적인 교육이 정규화 돼야 한다. 이를 통해 다시 우리 들녘에 콩밭이 늘어나고 그 콩으로 아이들과 메주와 장을 담그는 교육이 진행되길 바란다. 선진국은 남의 것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것을 중시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