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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변의 발화 Oct 05. 2022

오늘의 발화, 나의 발화

PROLOGUE

 먼저, [발화]라는 단어가 들어간 제목은 제가 지금보다도 더욱 더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고 생각하던 시절, 나중에 나만의 에세이집을 집필할 때 사용하기 위한 제목으로 아껴 둔 것입니다. 누가 알까 조심스럽게 갖고 있던 제목을 브런치에 처음으로 오픈해봅니다. 사실 저는 드라마 제목에 일반명사인 주인공의 제목이 들어가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데(예를 들면 드라마 자체에는 감정이 없지만 '복수의 화신'이라든가, '개인의 취향'이라든가하는 제목들), 한 가지로 적히는 단어가, 여러가지 뜻을 가지는 것은 늘 참 멋지다고 생각했거든요. 한 눈에 들어오지는 않을 수 있어도 다시 한번 발걸음을 돌려 그래서 무슨 뜻인데, 하고 붙잡는 힘이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사전적 의미로 꽃이 핀다는 의미의 발화(發花), 말을 한다는 의미의 발화(發話), 그리고 불이 붙는다는 의미의 발화(發火) 최소한 세 가지 이상의 의미가 있는 이 단어를 언젠가는 사용하고 싶었습니다. 의미에 따라 목차를 구성하지는 않을테지만, 읽으시는 분들이 각각의 의미를 한번씩 떠올리며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와 다시 읽어보니, 자칫하면 [나의 발악]이라고 읽히는 것도 같고, 발아조건의 [발아]라고 읽히기도 하는 이 단어를 고수하며 이렇게 글쓰기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저는 사내변호사로 일하고 있는데요, 학부에서는 법과 전혀 관계 없는 학문을 전공(심지어 이공계)해서, 대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까지도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한 적이 더더욱 없었고요. 3학년 때 잠시 만났던 남자친구가 로스쿨생이었는데, 그때 이미 변호사가 된 것 처럼 거들먹거리고 바쁘다고 해서 저를 많이 속상하게 했었지요. 그러던 중 제가 해외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새삼스럽게 천편일률적인 진로나, 한국 공부의 답답함도 느꼈지만.. 거의 잠수이별로 저와의 끝을 택한 그에 대한 홧김, 나도 전문직할 수 있다는 오기 등등으로 똘똘 뭉쳐, 어떤 변호사가 되어 어떤 직업관을 갖고 살 것인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바로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던 것입니다(이 과정에서 변호사가 되기까지 정말 굉장히 험난한 시절을 보냈는데 이 부분도 따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시험에 합격하기만 하면, 번듯한 직장이 생기면, 결혼을 하면, 그렇게 30대로 진입하여 열심히 나아가면 어느 정도 안정적인 직장과 가정을 이루고 꼿꼿하게 한 명 분을 다 하며 살아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바로 그렇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휠체어로 턱을 넘듯이, 매일 매일이 저에게는 도전이었고, 노력이었고, 또 수많은 실패였으니까요. 특히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정서적으로는 정말 혼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저를 이해하지 못해서 기대를 하지 않으려다보니, 남에게 부탁도 못하고 사람도 쉽게 사귀지 못해서 늘 저 혼자만의 생각의 방에 자발적으로 갇혀있었습니다. 남편은 저를 많이 편하게 해주고, 같이 걷자고 해주는 사람이라 지금은 벽이 조금 느슨해졌는데요,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더더욱 혼자만의 공간에 쪼그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사려깊은 남편을 만나, 저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던 이야기들도 제 입으로 말하기를 시작했던 것 같아요.  



 또 지금은 이직을 했지만, 로펌에서 일하면서 정말 다양한 일(사건)을 접해보았고 여러 사람과 만나보았습니다. 송무 변호사라는 직업이 어떤 사건의 서면은 사실관계에 입각해서 소금기를 쫙 뺀 담백한 어조로 작성해야 하는 반면, 어떤 사건은 억울해서 울먹거리는 마음으로 작성해야 하더라고요. 후자 같은 서면의 경우에는 똑같은 사실을 두고도 꼼꼼하게 다각도로 검토하고, 무엇보다 이야기를 끌어내야 합니다. 양형변론이나, 억울한 사실을 설명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런 것 같아요. 이혼 사건, 사기 사건, 성범죄 사건.. 다른 사람 이야기(주장)를 재판부가 최대한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 자서전 한 챕터의 대필작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일이라서, 꼭 써야 할 남의 글을 쓰면 쓸수록 지치지도 않고 오히려 제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비집고 새어나왔습니다. 집에 혼자 있을 때도 가상의 상황을 상상하거나(주로 제가 강연을 한다거나 멘토링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하고 싶었지만 못한 이야기를 해보거나, 제가 깨달은 점을 말로 해보곤 하고 그게 저 스스로의 치유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성장과정부터 시험준비생으로서 유독 힘들었던 합격, 취업도전기와 송무변과 사내변의 차이점(비변호사 상사에게 받던 스트레스), 송무과정에서 겪은 여러가지 사건들(결국 사건도 사람 사이의 감정에 관한 일이기도 하니까요), 결혼적령기에 했던 수많은 고민과 지금도 계속되는 고민 상담, 우울함과 나태함을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장수생들을 멘토링 했던 일), 현재 자리에서 한 단계라도 더 나아가려고 부쩍 열심히 사는 일상 등등. 하고 싶은 이야기의 주제는 너무나 많습니다. 잘 정제해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공감을 얻으니 그것대로 성취감도 들고 뿌듯하기도 하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혼잣말이 둥둥 떠다니며 집을 꽉 채운다고 느껴지는 이 시점에서, 제 발화를 글로 옮겨보려고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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