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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백 May 30. 2021

조기유학을 가면 정말로 좋을까? -2-

언어의 미숙함

1) 조기유학을 가면 정말로 좋을까? -1- 




언어의 미숙함에서 이어지는 것들

  유학 결정 시점까지만 해도 나는 중국어를 전혀 배워본 적도, 배울 예정도 없었던 평범한 초등학생이었다. 


  비록 비행기에 몸을 싣기까지 두어 달 정도의 여유가 있기는 했지만, 영어로 따지자면 알파벳부터 배워야 하는, 그야말로 텅 빈 공백이었기에 실제로 언어를 구사할 수준까지는 거의 가지 못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기에 짧고 다급한 속성 교육 끝에 중국 땅을 밟은 내가 3초 정도의 시간이 주어지면 머리를 쥐어짜내, '못 알아듣겠어요' 정도의 대답을 간신히 구사할 수 있는, 전형적인 언어 잃은 외국인이 된 것은 그리 예상하지 어렵지 않은 결과였을 것이다.




정말로 잘 배울 수 있을까?

  조기유학자가 들어가게 되는 학교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외국인을 받아주는 학교이다. 애초에 외국인에 대한 학비 자체도 훨씬 비싸게 책정되고, 이를 통해 쏠쏠한 부수입을 올리는 외국인 학교 특성상, 적극적으로 유학생들을 끌어오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 들어갔을 때 학교 내,  하다못해 반 내에 한국인이 한 명도 없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다. (물론 외국인 하나 없는 로컬 학교를 찾아 들어가는 경우도 없진 않지만, 대체로는.)


  말이 통하는 상대끼리 있더라도 말이 조금 더 잘 통하는 사람을 찾아 교류하게 되기 마련이다. 하다못해 배낭여행 중에도 동향인을 만나면 그리 반갑다는데, 타향 생활 중 만나는 동향인은 또 얼마나 반갑겠는가. 말을 뱉을 때 어순과 단어, 알지 못하는 문화에 기반한 재치 넘치는 뜻이 있는지 애써 해석할 필요 없이 대화할 수 있는 타인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참된 축복이다. 유학생활 중만 아니라면.




외부인으로 산다는 것

  언어를 새로 배운다는 것은, 그리고 그 미숙한 언어로만 소통하고, 이해받고, 생활할 수 있는 환경에 머문다는 것은 보기보다 사람의 심적 여유를 갉아먹는다. 

  내 뒤로 줄이 길게 늘어진 주문대에서 길죽하고 네모난 전자사전을 꺼내 한 글자 한 글자 입력하며 메뉴명을 다급하게 이해하려 할 때라던가, 더듬더듬 목적지를 말한 택시 안에서 기사가 명백히 우회하는 길로 핸들을 꺾을 때의 난처함을 기억한다. 관광객으로 머물 때와 주민으로 머물 때의 삶은 지나치게 다르다. 


  머릿속에 뭉글거리는 생각과 의견을 내가 원하는 어휘로 100% 구사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닥칠 때, 그리고 그것이 단발성이 아닌 최소 N개월,  N년 이상 지속될 때. 이를테면 같은 복통을 설명할 때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명치보다 조금 아래쪽이 못으로 쿡쿡 찌르는 듯 아파요'와 '숨 쉬면 여기가 아파요' 정도의 대답만 할 수 있을 때 달라지는 결과물들에 대해 가끔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의사와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친구와, 교사와의 소통에서 줄곧 적용되고 있었을 때 어느 순간 느껴지는 괴리감과 같은 것들도. 

  나는 말을 서툴게 할 뿐이지 생각을 서툴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생각하다가도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야 한다는 사실 자체에 스트레스받아 그만두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해외에서의 생활을 한 2년 정도 했을 때 즈음인가, 나는 문득 내 생각의 방식과 소통의 방식이 초등학생 시절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어떤 부분에서는 되려 그보다 못해졌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었다. 사고의 깊이와 언어 능력은 꽤 밀접하게 맞닿아 있지 않나. 수업에서 온전히 내용을 따라가는 대신 수업시간 내에 던져지는 온갖 생소한 단어들만 사전에 검색하며 보내고, 그렇다고 해서 한국에서 교육과정을 이수했다면 자연스레 알았을 정보들도 알지 못하는, 애매히 붕 뜬 상태도 내 불안함에 한몫했다.

  가족에게 말하자니 내 어눌한 언어능력을 드러내는 꼴이라 싫었고, 주위 다른 사람에게 말하자니 어쩐지 싫었다. 결국은 아무 텍스트나 닥치는 대로 읽으며 어영부영 보내버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미련한 짓 아니었나 싶다. 문제라는 것이 끌어안고 있으면 대체로 다 그렇긴 하지만.






  이 내용을 쓰면서 고민했다.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을 제시했으면 얄팍하게나마 그에 대한 방안을 꺼내놓아야 할 텐데, 당최 생각나는 부분이 없어서. 

  마음 밝게 먹기? 그냥 열심히 공부해서 극복하기? (이런 걸 답이라고 내어놓느니 말을 않는 게 낫겠다.)


  결국 사람의 성향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이 이야기로 주위 친구들과 몇 번 이야기 나누어보았는데, 그때마다 각기 다른 대답을 들었다. 유학이라는 상황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결국 정도와 방향의 차이일 뿐이지, 소통의 부재 자체는 누구나 겪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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