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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백 Jun 13. 2021

심해와 영생

이런 꿈을 꾸었다

  심해 밑바닥에서 영생을 누릴 방법을 찾았다 주장하던 과학자가 제 몸 바다로 던진 지 달이 지났다. 그의 행방을 -생사여부를- 알기 위한 잠수대가 꾸려졌다. 그의 사회적 지위와 외손녀의 막대한 부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가라앉는 잠수함에서 과학자의 외손녀는 시종일관 불안을 떨치지 못했다. 그는 종종 언성을 높이거나 과격한 행동을 취했다. 적막한 공간에서 그 혼자만이 살아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나는 몸 던진 과학자의 연로함을 알았기에 그 행동에 의미를 두는 대신 심해를 생각했다. 왜 하필 심해였을까. 그러니까, 이 곳에서만 찾을 수 있는 무언가였을까, 아니면 이 곳이어야만 한다는 집념이었을까.






  패인 주름 사이사이로 희열이 뚝뚝 떨어졌다. 드러난 잇몸이 보아라, 된다 했지. 말하는 듯 선연했다. 외할머니! 외치며 달려드는 외손녀에 휘청이면서도 자신만만한 웃음 흐려지지도 않았다. 골몰하는 집단이란 알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영생을 꿈꾸는 자는 생각보다 많다. 그렇지만 적막 속의 영생을 꿈꾸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태어나 살아가며 쌓아온 모든 물질적, 정신적 관계를 내려놓아야 얻을 수 있는 불멸에는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일까.

과학자의 발표는 세계를 흔들었으나 영생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에 비해 가벼웠다. 심해에 해저 도시를 건설하면 되지 않겠느냐, 묻는 기자의 말에 과학자는 딱 잘라 부정했다. 안 돼.

  뭐가 안되냐는 질문에는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여하튼 안 돼. 도시도, 뭣도. 심해의 생태계를 해치지 말라는 뜻인가. 멋대로 넘겨짚은 기자와 바로잡을 생각 없는 괴짜 과학자가 있었다.


  반쪽짜리 영원. 인류 최초의 불멸은 불완전했다.


  지원자를 모집했다.


조건: 심해 바닥에서 영원히 살 것.


  우주복, 같이... 생겼네요. 둥그렇고 투명한 그 겉을 매만지며 남자가 중얼거렸다. 이 곳도 우주와 다를 바 없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다. 텅 비고, 어두운. 자신 말고는 아무도 들여다볼 수 없는. 입 밖으로 대답을 꺼내는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여자는 매사 번거롭다는 표정을 한 채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남자는 덩치가 크고 타인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습관으로 보였다. 가불은 제쳐두고서라도, 왜 하필 번식 가능한 조합이 발탁되었을까. 우연일까. 기획 단계에서 의도된 일일까. 잠수함에 동행한 기획자는 없었기에 답을 얻지 못했다. 

  간간히 분위기를 살려보겠다며 필사적으로 던지는 남자의 유머가 저급했기에 나는 여자 쪽이 편했다.


  조명을 드릴까요. 절차상 물었지만 긍정의 대답은 없었다. 무의미한 질문이었다는 생각이 뒤늦게 뇌리에 머물렀다. 참가자들에게 비상용 버튼을 나누어준 뒤 마지막으로 경고했지만 어느 쪽도 귀 기울여 듣는 기색은 없었다. 여자는 다만 무관심해 보였고, 남자는 버튼 구석구석을 돌려보며 제 호기심을 채우느라 바빴다. 이 또한 무의미한 처사 이리라. 기묘한 확신이 폐부를 채웠다.


  둘은 심해 밑바닥에 발을 디디는 순간까지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안락사를 주관하는 의사가 된 기분으로, 잠수함의 문을 닫았다.

  완전히 닫히기 전 틈으로 본 심해는 여전히 검고 어두웠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여자는 신호기를 버렸다. 그가 향했던 방향으로 몇 발자국 지나지 않아 모래에 반쯤 파묻혀 버려진 채였다. 발 끝에 채여 다시금 부그륵 가라앉는 발신기를 주워, 챙겼다. 

  발신기를 내장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사람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을 버릴 리 없다는. 단절을 기꺼워하는 자 없으니 이것은 그들의 구명줄과도 같다는, 집단생활이 기꺼운 자 특유의 확신. 그러나, 미지의 공간에 자의로 단절되는 인간에게 그 구명줄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저는, 여기가... 좋아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요. 눈 앞에서 뭐가 헤엄쳐도 모르겠어요.

  일주일간 빛을 보지 않았을 남자를 위해 조명을 둔 채로 내린 상태였다. 야경이 있어 흐린 사물 분간은 가능했지만, 빛 없이 위치 신호기만 대조하며 돌아갈 일이 막막했다.

  그래서 더 좋아요. 

  무언가 툭, 와닿았다. 놀라 바라보니 발신기를 쥔 남자의 손이었다. 가져가세요. 받아 들지 않은 채 물끄럼 응시했다. 아직 두 번 정도 더 찾아와야 해요.

  희미하게 웃는 소리를 들었다. 그럴 필요 없을 거예요.

  불현듯, 깨달았다. 남자가 발신기를 여태 가지고 있던 이유에 자신은 없었다. 그는 단지 일평생 그가 타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살아왔었기에, 그것 또한 일종의 관성과도 같은 일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


보세요.


말에 따라 큰 돌에 걸터앉았다. 올려다본 바다는 빛 한점 없이 까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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