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백 May 09. 2021

뮤지컬 미드나잇 : 액터 뮤지션

누구나 악마죠 때로는

  느닷없이 표가 생겼다. 계획에 있던 관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계획적으로 사는 사람도 아니니 상관은 없지, 정도의 감상으로 관람하러 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소극장에서의 인증 사진은 주로 마련된 캐스팅보드를 찍는 것에서 끝난다. 마련된 포토존에서 포즈를 취하는 자기 자신을 찍는 대극장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이다.


  액터뮤지션이란 연기와 연주를 동시에 소화하는 액터-뮤지션의 합성어이다. 부제에 걸맞게도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이 (엄밀히 말하면 플레이어들이지만) 뮤지컬 내내 담당하여 연주하는 악기가 하나씩은 있다. 관람 후에야 찾아본 정보인지라 정작 뮤지컬을 관람하는 동안은 내내 저 악기 연주가 과연 진짜인가, 노래하고 춤추면서 악기까지 연주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의 고민을 짧게 했더랬다.




무대에 대한 이야기

  전개에 따라 엔카베데 본부와, 과거 회상을 넘나들면서도 극의 무대는 (대부분의 소극장이 그렇듯) 부부의 집으로 고정된다. 조명과 연출로만 바뀌는 장소, 바뀌지 않는 무대를 제시하는 과정을 보고 있자면, 아무래도 자본과 공간적인 제한이 존재하는 상황 하에서, 얼마나 설득력 있는 모양새로 극을 연출하고 끌어갈지에 대한 고민이 드러날 때 소극장의 재미가 더욱 드러나지 않나 싶다. 소소하게는 소품으로 실제 구현되지 않은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 장면이 나올 때, 무대 바깥의 플레이어가 수건걸이마냥 양 손으로 수건을 든 채 서 있는다던지.

  미드나잇: 액터뮤지션에서 이 부분은 만족스러웠고, 즐거웠다.


  문과 창문 테두리에 둘러놓은 네온도 극의 배경인 20세기 느낌을 물씬 풍기는 가구와 어우러지지 못하고 어색하게 튀어 보일 수 있었을 것 같았는데, 꽤나 잘 어우러졌다. 포스터의 푸른 네모가 아마도 이 네온을 뜻하는 듯 싶었다. 색감에 대해 아무런 감각도 지식도 없는 사람은 그저 우와, 정도의 감상만 남았지만.  장면 전환이 필요할 때마다, 극의 현재에 머물지 않는 '플레이어' 들이 네온의 경계를 오가며 재현을 돕는다. 과거에 부부의 집을 방문한 변호사 부부가 되기도 하고, 불시에 쳐들어온 엔카베데에게 잡혀가는 옆 집 가족이 되기도 한다. 현재에 머무는 이들은 견고하게 네온 라인의 안에 머문다.

  그 암묵적인 규칙을 인식하고 나니, 관람하게 되는 입장에서도 부지불식간에 그 선을 따라 인식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극 중 내용으로 넘어가 보자면,

  뮤지컬의 시대적 배경은 이렇다.

매일 사람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론가 끌려가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서로가 서로를 고발하는 공포의 시대. 그런 와중에도 서로를 위하는 한 부부에게 자신을 비밀경찰이라 소개하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인 ‘비지터’가 방문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래도 '맨'과 '우먼'은 꽤나 안전한 위치에 있다 할 수 있다. '맨'이 당의 고위 간부이기 때문에. 그 고위 간부 중에서도 의심할 여지없는 자만 받을 수 있다는 면책권, 프로텍션을 막 받아 든 참이기 때문에. 우리는 안전할 것이다. 새해를 얼마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암시장에서 남몰래 구매한 와인을 기울이고, 서로를 포옹하며 주문처럼 되뇌지만 그 순간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얄팍한 평화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전반부는 어떻게 보자면 꽤 전형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던 흐름이다. 다만 전체를 보고 나니 모두가 중후반을 위한 일종의 의도된 장치였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었지만, 그럼에도 가족을 위해 사회적으로 악한 가장 - 세상 물정 모르고 그걸 탓하는 배우자 구도는 이미 꽤나 식상하고, 그 식상함을 의도하고 사용했다 하더라도 지루하지 않게 풀어내기 어렵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자신을 위해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을까? 그 자신의 범위에는 과연 누가 들어갈 수 있을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그들을 죽인 것이 아니며 다만 죽음이 예정된 틈에 나까지 휘말리지 않도록 노력했을 뿐이다. 스스로를 세뇌하듯 중얼거리는 사람들에게 낯선 방문자, '비지터'는 속삭인다. 누구나 악마죠, 때로는.


  특이하게도 등장인물 그 누구도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주연인 '맨'과 '우먼'도, 이야기 속에 나오는 변호사 부부와, 대령님까지도. 이 이야기 내의 모든 인물들은 오직 대명사로만 불리운다. 아마도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누구도 맨이 될 수 있고 우먼이 될 수 있다. 아직 그 마땅한 기회를 맞닥트리지 못했을 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