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ithB Aug 31. 2023

시와 위로

시에서 찾은 육아의 말들 #1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의 하루가 막연하게 시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싸우고 화해하고 부딪히고 어루만지는 매일. 이것이 시가 아니면 무엇일까? 전쟁같은 양육의 현장에 서 있는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대상이 필요했다. 혹시 그런 책을 찾을 수 있을까 하며 도서관 신간 코너를 살펴보다 이 책을 발견했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 김경민, 포르체 2020>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시 교육을 공부하고 고등학교 국어 교사를 했던 작가가 공을 들여 고른 시 50편과 짧은 수필로 구성된 책이다. 사랑, 삶 그리고 시라는 부제에 맞게 선택된 작품들은 40대의 삶을 지나는 나의 현재를 새로운 언어와 이미지로 대신 표현한 듯 하다. 선정 기준은 '시를 읽지 않는 사람도 쉽게 공감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깊이와 격을 갖춘 작품' 이었다고 한다. 덕분에 나도 힘들지 않게 시를 받아들였다. 작품과 함께 수록된 수필을 통해 시를 더 깊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책은 1부 이별과 상실 그 이후, 2부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큰 주제로 나뉘고, 여러 소주제들도 이루어져 있다.

 ‘시가 눈물을 그치게 할 순 없지만 적어도 눈물을 닦아줄 수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에 실린 시들은 사랑, 이별, 슬픔, 분노와 같은 감정의 덩어리를 세밀하게 나누어 촘촘한 언어로 표현한다.

 ‘사랑’이란 말 대신 ‘그냥 있어볼 길 없는 내 곁에 /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조용한 일, 김사인>'라 말한다. '누가 내 속에 가시나무를 심어놓았다 / 그 위를 말벌이 날아다닌다 / 몸 어딘가, 쏘인 듯 아프다 <가시나무, 천양희>'는 문장은 화로 가득한 나를 표현하는 듯 하다. 시를 통해 가시나무 같은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눈물의 중력, 신철규>' 시구는 슬픔을 달래준다. 온전히 공감 받고 위로받으면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힘이 생긴다.


치열한 육체노동을 동반한 성실함의 결정체인 '육아' 앞에서 나는 매일 무너지고 다시 일어섰다. 자식이 커갈수록 평온한 인생이 찾아오리라 생각했는데 오산이다. 우리 집 10대(자신은 열 살이기 때문에 10대라고 불러 달라는 큰딸)와 크고 작은 다툼을 하면서 매일 내 그릇의 바닥을 본다. 집에 오자마자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녀석을 보며 '너는 더 바랄 게 없는 아이야. 게임하는 모습조차도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아이를 향한 화는 나의 불안함과 욕망을 통과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멈추기 쉽지 않다. 그렇게 매일 감정의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서로를 못마땅하게만 여기는 우리 모녀를 어떻게 위로해야할까?


나는 이제 벽을 부수지 않는다

따스하게 어루만질 뿐이다

벽이 물렁물렁해질 때까지 어루만지다가

마냥 조용히 웃을 뿐이다

웃다가 벽 속으로 걸어갈 뿐이다

벽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

봄눈 내리는 보리밭길을 걸을 수 있고

섬과 섬 사이로 작은 배들이 고요히 떠가는

봄바다를 한없이 바라볼 수 있다  


                      -벽 부분, 정호승



너를 향한 불안한 시선을 거두고 사랑으로 어루만지는 것. 마음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봄눈 내리는 보리밭 같은 아이만의 고유한 가치와 존재의 기쁨을 발견하는 것. 이 책으로 얻은 육아의 중요한 핵심이다.

아침밥으로 요거트와 시리얼을 먹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새벽 배송으로 구매한 요거트볼을 아침 식탁에 올리면서 혼잣말이 튀어 나왔다. ‘그래, 이게 사랑이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싶다면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50편의 시를 번갈아 읽으며 마음의 상처도 들여다보고 어루만져주니 꽃향기 나는 딱지가 된다. 시가 주는 새로운 감각과 위로가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