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전시 딱지 떼어내기
앞 글에서 적었듯 이런저런 이유로 에이전시에서 나와 본격적인 이직 준비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내가 인하우스의 기획자가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적어보려고 한다.
우선 첫 취업을 준비했을 때부터 느꼈던 건데, 에이전시와 인하우스에서 요구하는 기획자의 역량은 많이 다르다. 따라서 '나는 에이전시에서 이미 많은 사이클을 돌며 기획 업무를 경험했으니까 인하우스에서 경쟁력이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열리지 않는 회사 문을 계속 두드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는 이직을 준비했을까?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나는 취준생 때 했던 그대로 여러 회사의 채용공고를 정리한 후 무엇을 준비할지 생각했다. 다만 그때와 지금 다른 게 있다면 '1. 도메인이 핀테크로 한정되었고, 2. 인하우스(스타트업) 조직으로 한정되었다.'라는 부분이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핀테크 분야의 인하우스 회사 중 몇 개를 추려 정리한 채용공고의 자격요건 및 우대사항은 아래와 같았다.
자격요건
사용자 중심의 기획 능력
데이터 분석 / 데이터를 활용한 논리적인 사고방식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우대사항
핀테크 분야를 경험해본 사람
데이터 분석 툴 경험자
기획 문서 작성 능력
단순 나열했을 때보다 더 명확하게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 보이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내가 에이전시에서 경험한 것들과 추가로 공부해야 할 부분들을 정리했다.
에이전시를 다니며 경험한 것들 중 미리 정리해놓은 자격요건과 우대사항에 부합하는 게 있는지 혹은 부합하지는 않지만 연관 지어 내용을 다듬을 수 있는 게 있는지 정리했다. 인하우스의 기획자는 회사마다 다양한 업무를 맡고 있었고, 조건의 벽이 너무 높아 찾으면서 많이 불안하기도 했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로 발생했던 일을 예시로 들어 상황을 해소시킨 나의 역할을 주로 정리했다.
'각 포지션 간 감정적인 문제가 발생해 프로젝트가 지연됐었는데, 존중과 배려심을 갖고 완충제 역할을 해줬으며, 결국 일정에 맞춰 업무를 마무리했다.'
'코로나가 심했던 당시 확진자가 많아져 담당자들이 없는 상황에 업무가 중구난방이 되었었는데, 책임자와 자세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업무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었다.'
핀테크 분야를 경험해본 사람
에이전시에서 경험한 프로젝트 모두 금융권에 해당했는데, 대기업이었던 점을 짚어 핀테크 - 대기업 금융계열사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개인적인 의견을 정리했다.
기획 문서 작성 능력
분석 단계부터 오픈까지 작성하고 관리했던 모든 기획 문서를 캡처해 정리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보안이므로 대외비 문서나 예민한 내용이 있는지 꼼꼼하게 검토해야 한다.
데이터 분석 / 데이터를 활용한 논리적 사고방식
데이터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던 나는 지금은 못했지만, 경험해보고 활용해보고 싶은 것으로 정리했다. 시니어급이었다면 당연히 이미 다룰 수 있고, 경험했어야 할 부분이겠지만 주니어였기 때문에 데이터에 대한 욕심과 바라는 이상을 정리했다.
'데이터 분석은 해본 적 없다. 하지만 실무에서 사용자가 주는 다양한 데이터를 적재적소에 활용해 보다 효율적인 기획을 경험해보고 싶다. 현재 데이터를 얕게나마 공부하고 있지만, 실무에서 직접 만난다면 더 빠르게 적응하고 배워나갈 자신이 있다.'
사용자 중심의 기획 능력
에이전시에서 부딪힌 현실의 벽을 인지하고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정리했다.
'에이전시 업무 특성상 수동적인 기획만 가능했기 때문에 답답함을 느꼈고, 내가 한 업무를 돌아보며 고민을 하고 이유를 찾아냈던 경험과 이후 이러한 환경에서 벗어나 쓸모 있는 기획을 하기 위해 이직을 준비했다. 이 과정을 겪으며 혼자 역기획, 핀테크 앱 간 비교/분석, 사이드 프로젝트 등 다양한 공부를 하며 실무를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이직을 준비할 때 가장 신경을 많이 썼던 부분이다. 어쩌면 포트폴리오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이직 준비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합격 전에는 면접을 봐야 하고, 면접을 보려면 서류에 합격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니어] [기획자]의 포트폴리오는 성과는 둘째치고 기획 경험조차도 미비한 경우가 많아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난감하기 일쑤다(나 또한 만들면서 한숨만 땅이 꺼져라 쉬기도 했...).
그렇기 때문에 포트폴리오에 대해 자세히 다루지 않을 예정이지만, 내가 직접 면접을 보면서 습득한 몇 가지 꿀팁(?)을 공유해보려 한다.
포트폴리오 꿀팁(맹신 금지 / only 참고)
이쁘게 만들 시간에 내용을 고민할 것
ㄴ 화면설계서를 작성할 때도 나오는 말이다. 물론, 능력이 좋아 이쁘게 만들 수 있다면 경쟁력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포트폴리오(=자신의 경력, 이력, 실력 등을 타인이 알아볼 수 있게끔 작성한 자신의 기록 모음)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구글링 하면 보이는 디자이너 포트폴리오를 따라가기에 많이 벅차다면, 과감하게 포기하고 회사의 JD를 파악하고 이를 내용에 녹이는 게 더 효율적일 것이다.
사실에 기반할 것
ㄴ 거짓으로 작성된 포트폴리오는 어차피 면접에서 걸린다. 실무자들은 주니어 지원자라면 더더욱 어느 정도 수준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에 [기여도], [성과의 수치] 등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과대 포장하지 않는 게 좋다. 차라리 실패한 경험이 있더라도 이를 회고하며 앞으로를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를 서술하는 것이 적절한 방법이다.
툴의 숙련도보다 툴의 활용 능력
ㄴ 기획자는 슬랙, 지라, 노션, 피그마 등 다양한 업무 관련 툴을 다룰 수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숙련도를 상중하 / 숫자로 수치화해서 보여주는 게 전부다. 하지만, 툴의 숙련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반복 숙달하면 업무에 지장 없을 정도로 끌어올릴 수 있다. 숙련도보다 중요한 것은 '나는 어떤 툴을 어떤 상황에 활용하여 업무를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의 활용 능력을 어필하는 것이다. 나는 현 회사에 입사 전까지만 해도 지라를 다룰 줄 몰랐으나 이제 슬슬 적응해나가고 있다. 이처럼, 사용 가능한 툴이 있다면 활용 능력을 적어 어필해보는 게 좋다.
직무에 관련된 것만 넣을 것
ㄴ 초등학교 ~ 고등학교 졸업 / 취미 / MBTI 등 대부분 갖고 있는 내용이나, 지극히 개인적인 정보는 빼거나 하단에 살짝만 노출한다. 감독이 선수를 뽑을 때 자주 보는 것은 실력이지 어떤 초등학교를 나왔는지, 취미가 뭔지는 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나를 면접관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려면 자신이 회사의 업무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 하루에 수십에서 수백 건의 포트폴리오를 보는 입장에서는 TMI는 굉장히 진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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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더 있지만... 사실 내가 피드백받은 내용이고, 이 정도만 포트폴리오에 적용해도 서류를 모두 탈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류 합격에 대한 기쁨도 잠시, 촉박하게 잡혀버린 면접 일정은 단숨에 턱끝까지 압박해온다. 게다가 면접관에게 허를 찔린다면 진땀 흘리는 긴 시간이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과거 장사를 할 때 직원 면접을 많이 봤던 경험이 있어 면접에는 자신이 있던 나는, 대부분의 면접을 합격했다. 아직 주니어 기획자인 내가 생각했을 때 면접 시 필요한 몇 가지를 적어보려고 한다.
포트폴리오와 JD 숙지하기
면접관과 사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면접관은 지원자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회사의 JD를 대조하며 평가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포트폴리오와 JD를 잘 숙지해서 면접관이 보고 있는 내용을 머리에 그리며 대답해간다면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
만약 질답이 오가는 중 포트폴리오에 기재된 내용과 다른, 혹은 JD와 거리가 먼 내용이 오간다면...(이래서 포트폴리오는 사실대로, JD는 잘 파악해야)
분위기를 띄우는 and you
나는 장사할 때 같이 일할 때 시무룩해 보이는 사람과 일하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미소를 지으며 웃는 게 아니더라도 밝은 분위기를 살짝이나마 풍기는 사람을 뽑곤 했다. 나는 사실 평소 웃는 얼굴이 아니지만, 대화하는 것을 좋아해서 띄워지는 분위기에 무뚝뚝한 인상이 묻히는 편이다. 물론 면접관마다 다르겠지만 질문에 대한 살짝의 'and you?'는 일방적인 면접관 - 지원자 간의 온도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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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병준 님에게 성공한 경험이 있나요?
A. 저는 ~ 에서 ~ 한 경험을 성공으로 정의했습니다. 그 이유는 ~ 때문인데요, 면접관님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건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여러 회사 면접 체험하기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자리인 만큼 정형화된 합격 공식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최대한 많은 데이터를 축적해 유연하게 활용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회사에게는 미안할 수 있지만, 간절함 앞에 그런 것을 따질 수는 없기 때문에 다양한 면접관을 대하며 사람에 적응해야 한다. 사람에 적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면접 때 자주 나오는 질문이 보일 것이다.
긴 과정을 거쳐 최종 합격을 하게 되었다. 이제 또 다른 회사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해 공부를 해야겠지만, 돌아보니 취업 준비를 했던 기간 동안 정말 많은 공부를 한 것 같아 뿌듯했다. 회사 다닐 때는 느끼지 못했던 내가 걷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에 대해 재정비할 수 있었고,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더 빨리 갈 수 있는지 고민할 기회를 얻었다. 또한, 불합격한 회사가 생길 때면 스스로에게 자극제가 되어 열정이 생기기도 했다.
앞으로 또 어떤 이직을 할지 모르지만 이제는 '합격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운 여정보다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를 찾기 위한 기대되는 여정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