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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보는옆집개 Jan 15. 2021

<서치 아웃>

진실을 마주한 나의 선택, 나를 말하는 유일한 방법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객의 공포심리를 자극하는 영화나 드라마. 미스터리 영화나 범죄 영화, 때에 따라서는 모험 영화, 첩보 영화 등도 스릴러로 본다. 이야기 전개는 대개 문제 해결을 뒤로하고 관객의 관심을 유지시키면서 서스펜스를 점증시킨다." 다음 백과사전에서 '스릴러'를 검색하면 나오는 설명이다. 여기서 핵심은 '문제 해결을 뒤로하고 관객의 관심을 유지시키면서'라고 생각한다. 즉 스릴러는 그 성패가 관객들이 계속 호기심을 가지고 사건 전개를 궁금해하는지에 달려있다는 점에서 엔터테인먼트적 성격이 강한 장르라 볼 수 있다.

 스릴러 혹은 범죄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종류로 구분된다. 주인공이 범죄자를 잡아 처단하는 데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그 두 가지에서 성공과 실패의 원인에 따라 다양한 파생이 생긴다. <셜록 홈즈> 시리즈는 '주인공이 범죄자보다 똑똑하고 전문적이어서' 처단에 성공하는 반면,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영화 <세븐>의 경우 '범죄자가 주인공보다 더 치밀하고 악랄해서' 처단에 실패한다.

 앞서 밝혔듯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범죄자 처단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관객이 그 과정을 계속 호기심을 갖고 볼 수 있게끔 만드는 것이다. 로버트 맥키는 <STORY: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 "아이디어대 역아이디어의 리듬은 시나리오라는 예술 형식의 근본 토대이다."(p.187)라고 밝히고 있다. 이때 아이디어는 '주제'라고 말할 수도 있으며, 역아이디어는 그 반대항이다.

 가령 '범죄자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라는 아이디어를 담은 대부분의 스릴러 영화는 초반부에서 범인이 수사망을 잘 빠져나가는 '역아이디어'를 담고 있는 장면을 펼쳐낸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주로 주인공이 범인이 남긴 실마리를 찾아내 문제를 해결하는 긍정적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 실마리로 찾아낸 용의자는 범인이 설치한 함정이었다는 '역아이디어'가 다시 발생하며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당연히 그 과정은 예측 불가함으로써 서스펜스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스릴러 장르는 범인이 대가를 치르냐, 그렇지 못하느냐라는 이분법적 주제(아이디어)가 반대되는 성격의 사건들(역아이디어)과 변증법적 관계를 맺어가며 발생시키는 역동성, 그 과정의 서스펜스가 핵심이라 할 수 있겠다. 이 핵심을 잘 달성하는 동시에 부가적 아이디어까지 탁월하게 성취한 대표적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부패하고 무능해서' 범죄자 처단에 실패하는 경우인데, 부패와 무능의 주체가 경찰이라는 국가조직이다. 즉 영화 내적으로 서스펜스를 즐기고 나서 '국가'와 '사회'라는 영화 외적인 맥락에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는 점이 영화를 한 단계 더 상승시키는 주된 요인인 것이다.


 영화 <서치 아웃>의 주인공은 형사나 탐정이 아닌 비전문가 청년들이다. '에레쉬키갈(ereshikigal)'이라는 SNS 아이디를 가진 범죄자를 쫓는 주인공은 취준생 준혁(김성철)과 같은 고시원에 사는 경찰공무원 고시생 성민(이시언)이며, 그들의 조력자 누리(허가윤)는 직장을 그만두고 잠시 흥신소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다. 이처럼 사회 내에서 안정된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니라 그럴듯한 일자리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중에 있는 이들이 문제 해결을 주도한다는 점이 이 영화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컴퓨터 앞에서 고민에 빠진 준혁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진실이란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의미가 있고, 그렇기에 당연히 밝혀져야만 하는 가치다. 하지만 그 진실이라는 것이 때로는 누군가를 아프게 할 수도 있고 오히려 누군가를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

 영화를 여는 준혁의 내레이션이다. 영화는 SNS 속 사람들이 다들 행복하고 멀쩡해 보이지만 그들의 실상, 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준혁 역시 SNS 애호가로, 인스타그램에서 '소원지기'로 활동하며 그에게 부탁한 이들의 소원을 들어준다. 누군가의 이삿짐을 옮겨주기도 하고, 정신과 의사 서원(김서연)의 청소년 취준생 상담 부스 홍보도 해주는 등 선행을 하는 것이다. 다만 팔로워 수가 많은 신청자의 소원만 들어줌으로써 자신의 팔로워 수를 늘리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계속 취업에 실패하는 취준생이기 때문에 자신의 얼굴을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

 사건은 준혁이 같은 고시원에 사는 아이돌 연습생 민지(故 고수정)로부터 우울증에 시달린다며 고민 상담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받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준혁은 취준생인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평소 알고 지내던 민지의 상담 요청을 거절한다. 며칠 후 민지는 방에서 자살한 채로 발견되고, 죄책감에 시달린 준혁은 민지의 인스타그램을 뒤적이다가 '에레쉬키갈'이라는 아이디로부터 "당신의 삶은 어떤 의미인가요?"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대수롭지 않게 메시지를 삭제하려는데 죽은 민지의 아이디로부터 대답을 재촉하는 메시지가 온다.

 이상하게 여긴 준혁은 민지의 인스타그램에도 죽기 전에 같은 질문이 답글로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민지의 죽음이 단순 자살이 아니라 생각하며 성민과 함께 경찰서를 찾아간다. 하지만 설명을 들은 고 형사(고정일)는 관심이 없고 도리어 짜증을 내며 둘을 돌려보낸다. 이미 자살로 종결된 사건이라면서. 결국 준혁과 성민은 직접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둘은 준혁의 '소원지기' 활동 때 도와준 적이 있는 흥신소를 찾아간다. 흥신소 직원이자 해커 누리와 함께 '에레쉬키갈'의 계정을 추적해보니 자살한 수십 명의 계정에도 “당신의 삶은 어떤 의미인가요?”라는 동일한 글이 남겨져 있었다. 수많은 이들의 죽음과 그가 관련되어있는 것이다. 준혁과 성민은 피해자 유가족도 찾아가 봤지만 도움을 받지 못하고, 소원지기 활동으로 연을 맺은 정신과 의사 서원을 찾아가 봐도 그녀는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 취준이나 하라며 그들을 돌려보낸다.

범인을 추적하는 성민과 준혁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세 사람을 돕는 유일한 사람은 준혁의 친구 민수(정민규) 뿐. 제법 인지도가 있는 민수의 먹방에서 '에레쉬키갈'의 위험성을 알린 세 사람은 그들을 계속 미행하며 촬영하던 카메라 든 남자를 잡아 취조한다. 그 남자는 처음에는 '에레쉬키갈'과 인스타 친구로 지냈는데, 어느 날 '에레쉬키갈'이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다며 어떤 여자의 뒤를 밟아 기록하는 미션을 줬다고 한다. 미션을 수행하지 않으면 비밀을, 진실을 폭로하겠다고.

 이렇게 '에레쉬키갈'은 SNS로 피해자들에게 접근해 그들이 숨기고 있는 사생활의 정보를 알아낸 후 일련의 미션을 수행하지 않으면 폭로하겠다고 협박해온 것이다. 문제는 미션이 단순히 음악을 청취하는 것부터 시작해 자해와 자살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미션에서 듣도록 하는 음악은 최면 효과까지 있어 피해자들로 하여금 '에레쉬키갈'에게 더 빠져들게 만든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준혁과 성민, 누리는 범인을 잡아내는데, 범인은 영화 초반에 등장했던 정신과 의사 서원이다. 사실 준혁은 이 사건들이 발생하기 전 SNS에 곰팡이 핀 치킨을 고발하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 글 때문에 치킨 회사는 망하게 되고, 해당 회사의 사장인 서원의 아버지가 온라인상의 갖은 비난 끝에 자살을 했다. 이로 인해 서원은 SNS를 통해 불특정 다수를 향한 복수를 시작했던 것이다.


 이 영화는 실제로 러시아에서 2015년 '흰 긴 수염고래 게임'을 통해 100명이 넘는 청소년들을 자살로 몰고 간 사건을 각색한 영화다. 실제 사건에서도 피해자들은 미션을 수행해야 했는데, 밤새 공포영화 보기, 24시간 동안 외부와 소통 차단하기, 팔에 자해를 통해 글씨 새기기 등 폭력적이고 끝내 자신을 망치게 되는 미션들을 포함한다. 이러한 요소들을 차용해 한국 현실에 맞게끔 구성한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쓰기까지 다른 글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솔직한 이유는 영화를 보고 큰 감흥이 없어서였다. 리뷰를 쓰는 에너지 중 반 이상은 어떤 이야기를 쓸지를 생각하는 데에 사용하게 된다. 어떤 작품들은 보는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어떤 작품들은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떠오르기도 한다. 문제는 이 영화는 보고 난 후 시간이 꽤 흘러도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왜, 어떤 이유 때문에 쓸 수 없었을까?

 초두에 언급한 '아이디어'의 설정은 나쁘지 않았다. 영화 초반 준혁의 내레이션에서 말하듯 이 영화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좋은 일인 것만은 아님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밝힐 것이냐, 그것은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 아이디어다. 이를 중심으로 범죄자의 진실을 밝히려는 준혁과 성민, 그것으로부터 빠져나가려는 '에레쉬키갈'의 싸움이 서로 작용과 반작용을 이뤄내며 영화를 흘러가게 한다. 또한 준혁 스스로도 현실의 취준생 신분을 숨기고 sns 상에서는 '소원지기'로 살고 있다는 점에서 '진실'에서 모순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에레쉬키갈'의 온라인상 흔적을 추적하는 준혁, 누리, 성민 (사진 출처: 다음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아쉬웠던 이유는 범죄를 피상적으로 다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스릴러 영화를 보며 관객들이 빠져드는 동시에 긴장하는 이유는 해당 범죄가 충분히 '있을 법한’ 범죄고, 그것이 보는 나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으리라 느끼기 때문이다. 가령 <살인의 추억>이 담아낸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생각해보자. 인적 드문 으스스한 시골길, 비 오는 날씨, 들려오던 노래들, 특정된 피해자들, 그리고 특유의 범죄 방식에 대한 세세한 묘사까지. 이러한 구체성 때문에 영화 속 범죄가 더 '있을 법한’ 일로 다가오는 것이다.

 <살인의 추억>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자연히 그러한 설득력을 얻은 것은 아니다. <서치 아웃>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은가. 실화든 허구이든 영화는 적절한 선택과 구성을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영화 속 사건을 '믿게' 만들어야 하고, 그래야 관객은 등장인물과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러한 작업이 부족했던 것으로 느껴진다.

 '에레쉬키갈'이 피해자들을 조종하다시피 해 자살에 이르게 한 무기는 크게 두 가지이다. 피해자의 사생활 중 감추고 싶은 정보를 쥐고 있다는 사실과 음악을 통한 최면이다. 범인은 정신과 의사였기 때문에 후자는 더욱 설득력이 생긴다. 하지만 영화는 이 두 가지 무기를 범인이 어떻게 사용하는지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피해자의 사생활을 쥐고 있다'는 점은 대사를 통해서 전달될 뿐이지 장면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어떤 사생활을 쥐고 있는지, 그 사생활은 어떻게 폭로될 수 있는지, 폭로되면 피해자는 어떤 타격을 입는지, 그리고 피해자는 그것에 대해 얼마만큼 절박하게 반응하는지는 영화에서 시간을 할애해 '장면'으로 묘사되지 않으면 관객은 알 수 없다.

 최면 역시 마찬가지이다. 피해자들은 공통적으로 이어폰으로 특정 음악을 들은 후 죽음까지 이르렀는데, 이 음악을 들으면 어떤 반응이 오는지, 음악의 어떤 요소 때문에 최면이 발생하는지 등이 장면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위의 사실들을 말로 전해 듣거나 아주 잠깐의 쇼트들로 어림짐작 할 수 있을 뿐이다. 왜 남이 시키는 대로 자살까지 하는지 장면으로 자세히 다루지 않기 때문에 그 일이 있을 법 하지도, 나에게 일어날 것 같다고 느껴지지도 못했던 것이다.

 관객은 직접 보고 들은 것만 믿는다. 영화의 본질이 보고 듣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을지라도 영화에 담을 것을 충분히 담아주지 않는다면 보는 이는 따라갈 수가 없다. SNS를 통해 실생활을 좌지우지하는 여러 심각한 범죄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시의성이 있다는 점에서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게 다가오는 듯하다.

 이 영화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좋은 일인지, 삶의 의미란 무엇인지는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진실을 마주한 내가 어떤 선택을 내리는지가 중요하며, 취준생이든, '소원지기'이든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것은 오직 진실을 마주한 순간 내가 내리는 선택이라는 의미와도 같을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실을 마주하고 영화로 만들 때, 그 사실을 둘러싼 여러 현상들 중 어떤 것을 드러낼지 말지는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그 판단들이 쌓인 결과물이 바로 영화인 것이며, 만드는 이를 말해주는 것은 오직 그 결과물로서의 영화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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