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보다 '일'이 앞설 때 우리 안에서는 무언가가 서서히 부서져간다
인터넷 설치기사인 주인공은 회사에서 저성과자로 분류되어 권고사직을 권유받는다. 주인공이 이를 거절하자 회사는 그가 자발적으로 그만둘 수밖에 없도록 집요하게 괴롭히기 시작한다. 열악한 환경으로 연이어 파견을 보내고 업무를 지속하기 어렵도록 갖가지 트집을 잡으며 모멸감을 주는 방식으로. 주인공은 26년을 근속한 직장에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고 자신이 성실하게 일한만큼의 당연한 보상을 받을 것이라 기대했기에 이 상황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는 모멸을 견디고 또 견디면서도 회사의 지시사항을 어떻게든 충실히 이행한다. 스스로도 그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끝까지 버티기만 한다면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일’에 집착하는지에 대한 정답을 찾을 수 있을거라 기대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점점 자신의 고유하고 중요한 무언가가 부서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싫어하는 것을 견디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나는, 주인공이 회사의 권고사직 제안을 거절하고 버티기를 결심하는 순간부터 그를 이해할 수 없었으나 소설을 읽을수록 그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자신을 버린 회사에게 ‘일’로서 존재증명을 해 보이고 말겠다는 그 오기와, 그것이 자신을 파괴하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끝을 보고 말겠다는 마음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이해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독하게 성실하기만 했던 자신의 삶의 결과물이 왜 이런 모멸감뿐인건지를.
자신이 지켜야 할 것들에만 충실한 삶. 그가 보는 건 그런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겐 너무나 차갑고 혹독했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일지도 몰랐다.(172p)
더 많은 타인과, 더 넓은 세상과 연결되지 못했기에 다른 삶을 상상하지 못했고, 그래서 삶보다 일이 앞서버린 주인공을 통해 소설은 말하고 있었다. 생계노동으로 인해 종종 다치거나 서서히 아프고 말라가는 이들이라면 ‘일’이 우리 삶에서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야한다고.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그 질문이 어쩌면 우리를 지금까지와는 ‘다른’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