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만에 알게 된, 픽사가 디즈니에 간 이유
토이스토리, 몬스터주식회사 등 픽사 에니메이션을 정말 좋아했는데 2006년,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했다는 걸 알고 정말 놀랐었다. 디즈니는 당시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고 픽사는 승승장구 중이었는데 도대체 왜 디즈니에 갔지? 뭐가 아쉬워서? 라고 생각했다. 이후 15년이 지나서야 디즈니 회장 로버트 아이거의 책 <디즈니만이 하는 것>을 읽고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로버트는 ABC방송국 말단 연출보조로 일했고 이후 승진을 거듭하다 41세의 나이에 ABC방송국 사장이 된다. 이후 방송국이 디즈니에 인수되면서 당시 회장 마이클 아이스너 밑에서 일하게 되고, 아이스너가 이사회와의 갈등으로 물러난 후 회장직에 오른다. 당시 내리막이었던 디즈니에는 변화를 주도할 새 인물이 필요했는데 아이스너의 2인자 출신인 로버트는 이사회가 보기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나름의 확신과 비전을 가지고 강도 높은 이사회의 검증과정을 거쳐 디즈니의 회장직에 오른다. 이후 그는 디즈니를 변화시키기 위해 과감한 기업인수를 진행한다. 그게 바로 픽사, 마블, 루카스필름이었다.
픽사 인수과정에서 로버트와 스티브잡스가 나눈 대화들, 픽사에 직접 방문한 로버트가 그 기업문화에 받은 충격 등 내가 몰랐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가득해 이 부분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픽사 인수 성공 이후, 디즈니가 마블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스티브잡스의 도움을 받은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한 편도 본 적이 없어서 루카스필름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렇게까지 인수에 공을 들여야 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저 유명하다는 것만 알지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 실감을 못해서 스타워즈 덕후인 남편에게 궁금한걸 많이 물어보기도 했다.
이 책은 결국 리더십에 관한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디즈니를 과거의 가장 빛나던 순간들보다 현재의 더 큰 영광의 자리로 올려놓은 로버트 회장 리더십 비결이 궁금했다. 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며 그것은 아마도 자신을 가장 빛나는 자리에 올려놓지 않으려는 그의 부단한 애씀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성공한 이들의 뻔한 성공담, 뻔한 리더십 책과 같지 않다고 느낀 지점은 그 부분이었다. 로버트는 자신의 리더십 비결을, “나에게 막강한 힘이 있고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온 세상이 부추기더라도 본질적 자아에 대한 인식을 놓치지 않는 것”(398p)이라고 말한다. 그가 가진 그 힘이 결국은 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었고 디즈니 내부를 혁신하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픽사 인수금액 70억달러, 마블 인수금액 40억달러 같은 숫자를 보며 새삼 내가 사랑하는 애니메이션들이 철저히 자본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실감하기도 했다. 그 작품들은 결국 인간을 위로하고 우리가 잃어서는 안 될 본질적인 것들을 이야기하지만 그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내가 그 작품을 보기위해서는 그 자본이 필요하다.
글로벌기업, 자본주의같은 단어를 떠올리면 부정적인 감정이 먼저 올라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보니 사실 이 책을 온전히 마음을 열고 읽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로버트가 사내 미투로 인해 자신의 오른팔과 마찬가지인 직원에게 망설임없이 징계를 내리고, 인종차별 발언을 한 배우로 인해 그 배우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바로 폐지하는 등 디즈니가 추구하는 가치를 지키기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며 디즈니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고 앞으로도 디즈니가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에 맞는 기업문화를 지켜내 주기를 바라게 되었다.
로버트의 회장 임기는 2021년까지라고 한다. 그는 이후 회장직을 계속 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디즈니가 정점에 오른 지금 다음 회장이 되는 사람은 아마도 더 큰 부담감을 가지고 임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회장 또한 부디, 로버트가 그랬던 것처럼 세상의 변화를 민감하게 인지하고 더 큰 고귀함을 추구해 주기를, 이를 통해 계속해서 훌륭한 콘텐츠들을 만들어 주길 디즈니를 사랑하는 팬으로서 바라며 책의 마지막장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