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취의 곁에는 언제나 상처가 있다
1년 전 이맘때 박상영 작가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박상영 작가의 글은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났는데 너무나 내 스타일의 문체라 읽으며 폭소하고 데굴데굴 굴렀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고단한 회사생활, 반복되는 다이어트의 실패, 그 와중에 잠을 쪼개가며 치열하게 소설을 쓴 작가의 이야기가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작가의 고통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얼마든지 극대화해서 보여줄 수 있는 소재임에도 작가는 그 이야기를 너무나 유쾌하게 풀어냈고 당시 출산 후 찐 살을 빼기 위해 3년째 다이어트중이었던 나는 깊이 공감하며 읽은 기억이 난다.
이후 박상영 작가의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고 이 작가, 정말 내 스타일이야! 를 외치며 주변에 엄청 추천을 하고 다녔는데 며칠 전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가 또 읽고 싶어 졌다. 그리고 1년 만에 이 책을 다시 읽은 나는 많이 웃지 못했다. 이 책이 성취 곁엔 언제나 ‘상처’가 함께 한다는 걸 내게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 양극성 장애와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았으나 병원의 치료 권고를 무시한 부모님 때문에 작가는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다. 그리고 그 상처를 각종 살찌는 음식으로 달래다 살이 찌게 된다. 대학 입학 후 살을 빼 쉬지 않고 연애를 하던 시기를 지나 취직을 하고 나서는 극한 업무량과 각종 스트레스로 인해 그는 다시 서서히 살이 찐다. 몇 번의 퇴사를 반복하다 칼퇴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정착한, 책 초반에 등장하는 회사를 다니면서는 매번 다이어트 결심을 하지만 야식을 끊지 못하고 급기야 100kg이 넘는 몸을 가지게 된다.
끊임없이 외모 평가를 받아야 하고 자기혐오에 빠져야 하는, 살찐 사람이 겪는 고통을 가진 작가를 보며 1년 전엔 솔직히 그래도 못 빼는 건 핑계 아닌가... 내심 생각했다. 노력과 의지로 분명한 성과를 내는 영역은 내 몸뿐이라고 믿었던, 당시 3년 차 다이어터이자 어느 정도 목표한 감량에 성공했던 내 오만함이 가져온 생각이었다.
두 번째로 이 책을 읽으니 그가 야식을 끊지 못하고 계속해서 다이어트에 실패한 것이 소설가 등단과 젊은 작가상 대상이라는 성취를 이룬 그의 곁에 따라온 ‘상처’였음이 보인다. 회사생활을 하며 잠자는 시간을 쪼개 필사적으로 글을 쓴 그의 성취는 분명 빛나는 것이지만 그는 그 성취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자신의 일상이 망가졌는지를 책에서 이야기한다.
“때때로 나는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해서 일했고, 어떤 순간은 나 자신이 혐오스러울 정도로 게을렀지만 마음속은 언제나 전쟁터처럼 치열했다. 멀쩡히 계단을 오르다가도 몇 번이고 숨을 골랐고, SNS를 하다가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올라 손이 떨리기도 했다. 그럴 일도 아닌데 자주 짜증을 냈고 술을 마셔도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잠들지 못한 새벽에는 이유 없이 서러운 기분이 들었고 개연성 없는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병원에서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병행해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 1년간 먹어야 하는 약의 양은 더 늘었고, 몸무게는 여전히 제자리였으며, 상담을 받을 때면 잠깐 힘을 낼 수 있었으나 혼자 남겨지는 순간에는 더없이 공허했다. 매일 밤 어김없이 배달 음식을 시키고 그것에 의존하는 내 모습을 보며 얼마간은 혐오를 하고 또 얼마간은 이제 편하게 잠들 수 있겠다는 안도감을 느끼곤 했다.” 254P
그토록 꿈꾸던 퇴사를 하고, 전업작가라는 꿈을 이룬 그는 “나는 이제 더 이상 거창한 꿈과 목표를, 희망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 삶이 어떤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감각하고 있는 현실의 연속이라 여기기로 했다.”(257P)라고 말한다. 성취 지상주의인 우리 사회는 누군가가 이룬 빛나는 성취를 늘 강조하고 그것 때문에 잃은 것들 마저도 성취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감내해야 할 것으로 포장한다. 실패조차 성취에 이르기 위한 당연한 과정임을 말하며 무조건 견디라고 말한다.
성취에 곁에 당연히 따라오는 상처가 사실은 우리를 얼마나 지속적으로 고통스럽게 하고 현실의 감각을 잊게 만드는지, 사실은 가장 중요한 걸 잃어버리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이는 드물다. 성취하지 못하는 삶은 수치스러운 것이며 그 과정에서 받는 상처는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라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이런 생각이 내게도 얼마나 내면화되어있는지를 깨달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박상영 작가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다이어트의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하는 생각이었다.
얻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것이 있다는 인생의 당연한 진리를 깨닫기 위해 나는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아야 하는 걸까. 얼마나 많은 타인의 상처를 들여다보아야 할까. 성장하는 것, 목표한 것을 노력해 이루는 것은 소중한 가치가 맞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일상의 감각을 잃어버리거나, 나 자신과 타인에게 가혹해지거나, 실패하는 나 자신과 타인을 혐오하는 일만은 막고 싶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기에 다시금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성취’를 얻기 위해 묻어두었던 ‘상처’를 꺼내본다. 박상영 작가처럼 언젠가 용기 있게 내 ‘상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