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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묘 Aug 13. 2022

(에세이) 18. 나르시시즘은 장애다.

우울한 감정을 느꼈다고 우울증에 걸린 환자가 아닌 것처럼 자기애를 가진 사람 모두를 나르시시스트라고 단정할 수 없다. 자기애는 인간의 생존 본능이고, 이성적인 사람은 자신의 가치가 소중하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선을 넘는 게 문제다. 나르시시스트는 정도를 한참 넘은 사람이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걸러내야 한다.


내가 겪은 나르시시스트는 다행히 극단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일반적인 나르시시즘의 특징을 가진 사람이었고, 겉으로 보기엔 단지 자기애가 좀 강한 사람 정도로 보일 뿐이었다. 그 사람은 자신의 모든 면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세상을 자기중심적으로 바라봤다. 자신의 생각이 상식이고, 가족을 포함한 다른 사람을 비상식에 오답 투성이로 바라봤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대, 같은 일을 겪어도 그 사람의 세상은 분명 나랑 다른 차원에 존재했다. 나는 그 사람을 망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 성격 장애에 시달리는 가여운 사람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르시시스트들은 대체로 외모가 평균 이상이며, 총명하고 자기 확신이 강하기 때문에 자신감이 넘친다. 이런 모습에 일반 사람들은 쉽게 끌리기도 하고, 그들을 처음 만나는 순간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르시시스트는 왕자(공주) 병이나 도끼병을 달고 사는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 나르시시스트에 느낀 호감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그들의 이기심과 무논리적인 자기 위주 편향에 질려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그녀는 분명 나르시시스트였다. 그녀를 향한 나의 마음은 금방 불타 올랐고, 이내 식어버렸다. 그녀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가시 많은 장미'였다.


어릴 때 다세대 주택이 밀집된 동네에 살았다. 집집마다 도둑이 드는 걸 막기 위해 담 끝에 쇠창살을 다는 집도 있었고, 유리병 깬 조각을 담 끝에 얹어 시멘트로 굳게 만든 집도 있었다. 그런 집들 틈에 어떤 낭만적인 집은 담벼락을 장미 덩굴로 장식했다. 장미에 가시가 돋았다는 것도 모를 어린 나이. 새빨간 장미는 소나기가 갠 후 하늘에 걸린 무지개처럼 오묘했다. 장미를 꺾어다 친누나에게 주고 싶었던 것 같다. 몇 송이를 꺾기 위해 장미 덩굴을 한 움큼 잡았고 사람한테 발을 밟힌 새끼 강아지 마냥 비명소리를 지르며 울음을 터트렸다. 손에 가시가 여러 개 박 났다.


가시에 찔려 본 사람만이 안다. 장미를 얼마나 조심히 다뤄야 하는지. 예쁘다고 지체 없이 손을 뻗으면, 내 손에선 피가 난다는 사실을. 예쁜 건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충분하다. 나는 그녀를 장미처럼 대했다. 그녀에게 무언가를 바라거나 내가 원하는 대로 조종하지 않았다. 그런 짓은 오히려 나를 상처 입게 만든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그 예쁜 꽃을 바라보듯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녀를 이해하려고 하지도, 나를 이해해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덩굴 속에 핀 장미 앞에 서서 온전하게 바라보듯 그녀를 대했다.


아무리 예쁜 꽃도 매일 보면 무뎌진다. 그리고, 꽃은 반드시 시든다. 시든 꽃은 시든 대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활짝 핀 꽃 보다 아름 다울 수 있을까? 어떤 장미는 자신이 시든 걸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시들다'란 단어는 없을 테니깐.


지금까지 살면서 겪은 나르시시스트들의 공통점은, 겉으로는 자기애가 강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자기혐오에 빠진 사람들이다. 자신의 부족한 면이나 자신감 자존감 없는 모습을 드러내 보이지 않기 위해 그 반대 모습을 과장해서 보여준다. 마치 하룻강아지가 짖어대는 것처럼 실제보다 과장되게 포장한. 언제나 완벽하고 흠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는 허점 투성이다. 자신은 완벽한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에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오히려 당신을 잘못된 사람으로 몰고 갈 것이다. 그들에게 논리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나르시시스트에게 자신이나 자신의 것 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 항상 자기중심적으로 말하는 사람, 자신의 주장만 소중한 사람,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남 탓만 하는 사람, 자신이 받는 것은 당연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을 만난다면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라. 자신까지 오염돼서 인생이 위태로워질 것이다. 언젠간 파탄날 관계는 하루라도 빨리 정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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