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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묘 Oct 28. 2022

(에세이) 23. 애인의 과거가 중요할까요?

연애는 아무나 하지만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다. 사랑은 자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자격이라고 을 수 있는 것들은 책임감이나 인성, 감정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집착도 포함시키고 싶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감당해내야 하는 것이다.


얼마 전 친구의 연애 상담을 통해 나의 연애관 철학 따위가 흔들렸다. 애인의 과거에 집착하게 됐다는 친구. 처음 사연을 들었을 때는 공감보다 반감이 들었다. 내가 가진 생각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되돌릴 수도 없는 과거의 일, 내 영향력이 전혀 미칠 수 없던 시절 일어난 일. 집착해봤자 감정 소모만 있을 뿐 그 어떤 의미도 없는 것들이라 생각했다.


친구는 누가 봐도 한눈에 반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를 만났다. 딱 봐도 에게 그녀는 과분해 보였다. 그녀의 인기만큼이나 친구의 걱정과 불안은 커졌다. 노심초사 하루를 보내는 게 일상이었는 데 아마도 그 녀석은 그런 모습을 진실한 사랑이라고 착각한 것 같다. 은연중에 나오는 그녀의 과거 속 남자 얘기. 친구는 애써 쿨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분노를 삭였다.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지, 또 그녀가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인지 구구절절 쏟아 내는 구의 얘기를 받아내자  마음속에 점점 공감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쿨한 건 뭐고 집착은 뭘까? 친구의 물음에 바로 답을 떠올리지 못했지만, 쿨한 건 허상이고 집착은 불안과 욕심의 표출이었겠지.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과거는 현재의 연인 관계에 어떤 의미일까?


애인을 온전히 담지 못하는 친구의 작은 그릇. 자꾸만 넘치는 그녀를 버거워하며 초췌해져만 가는 친구. 그 녀석을 가까이서 바라다. 내가 지금까지 가졌던 인의 거에 대한 관념들은 어쩌면 진실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을 때 정립된 것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연인의 과거를 판도라의 상자에 비유한다. 열기 전에는 너무 궁금해서 열고 싶지만, 막상 열게 되면 무조건 후회하게 되는 상자. 지나친 솔직함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리는 실수를 범한다. 별로 알고 싶지도 유쾌할 것 같지도 않은 과거 연 얘기를 꺼내버리면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게 돼버린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그것도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나친 솔직함은 치명타만 남길 뿐. 물론 단순한 호기심으로 상대의 과거를 가볍게  수 다. 하지만, 지나치게 혹은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과거를 회상하는 애인을 보고 있노라면 화가 나고 슬진다.


과거는 말 그대로 이미 지난 일. 잡히지도 보이지도 않는 별것도 아닌 것이 때로는 질투의 원인이 된다. 그녀의 과거의 연인, 나를 만나기 한참 전이건 직전이건 시점은 무의미하다. 바람아니지만, 나 아닌 누군가와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질투가 난다. 물론 질투 조차 사랑의 일부다. 그러나 지나치면 자기 자신과 연인 모두를 괴롭힌다. 물론 연인과 좋은 사이를 이어갈 때는 아무런 문제 되지 않는다. 반대로 사이가 좋지 않아 마음에 불이 난다면, 활활 타오르게 할 땔감이 될지도 모른다. 핸드폰에 남겨진 낯선 이성의 메시지를 그냥 아는 오빠, 동생 사이라고 둘러댈 때 질투와 의심은 끝없이 커 갈 것이다.


이성적으로는 질투 자체가 의미 없는 행위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감정은 이성을 배반한다. '그녀는 나보다 옛사람을 더 사랑한 게 아닐까? 그 사람은 나보다 더 잘난 사람이었을까? 그녀는 과거의 사람과 날 비교하는 게 아닐까?'궁금하지만 절대 알고 싶지 않은 의문들이 떠오르면 내 몸에 박힌 화살촉을 뽑아내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진다. 심지어 다툼이라도 생기면 아픈 마음은 더 증폭돼 '왜? 과거에 그 사람은 안 그랬나 보지?'라는 삐딱한 마음이 들까 두렵다.


우연히 보게 된 예능프로 마녀사냥에서 젊은 여성 MC가 '자만추'란 줄임말을 요즘 젊은 세대가 어떤 뜻으로 쓰는지 설명했다. '자고 나서 만남 추구'. 세대가 어려질수록 확실히 오픈마인드의 쿨한 연애가 대세인 것 같다. 물론 그런 행위 자체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연애 방식이 자유롭고 누군가를 쉽게 사랑한 게 잘못이나 흠은 아니다. 나는 서른 훌쩍 넘기면서, 연애경험이 누적될수록 상대의 과거 신경 쓰는 마음 점점 약. 히려 을 때나 연애경험이 적었을 때 그런 부분에 더욱 집착다. 지금은 정상적인 연애였다면 연인의 과거는 모두 받아들야 한다고 생각한다.


판도라의 상자열어봤자 열에 아홉은 후회밖에 남지 않는다. 잘 알면서도 열고 싶은 충동은 상대에 대한 사랑과 관심의 반증이기도 하다. 도라의 상자 앞에서 고뇌에 빠졌거나 안달 난 연인을 마주할 때는 솔직함보다는 선의의 거짓말이 더 필요하다. 사랑하니까 모든 걸 이해해준다고? 연인 사이엔 비밀이 없어야 한다고? 천만에, 사랑하니까 오히려 더 이해 못 하는 것도 있다.


이미 연인이 된 사람이 과거에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연애를 했는가는 더 이상 선택 사항이나 호불호 영역이 아니다. 그냥 과거 그 자체로써 전생으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그게 안 되면 자존감을 더 키우던지 자신이 사랑할 자격을 갖췄는지 밀도 있게 고찰해봐야 한다.


흘러간 일에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보다 고맙다는 감사의 말 누적될수록 연인 사이는 돈독해진다. 함께 펼쳐나갈 미래속삭이기에도 모자란 시간. 과거에 대한 집착은  하루빨리 거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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