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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묘 Jul 03. 2023

(에세이) 27. 연인 사이의 갈등은 필연이다.

친구는 몇 개월째 연애 중인 애인과 단 한 번도 갈등을 겪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어떻게 한 번도 안 싸울 수가 있어?" 내 물음에 친구는 무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싸울 힘없어." 사랑을 하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건조한 목소리였다. "사랑은 해?" 나는 다시 물었고, 친구는 즉답을 피했다.

연인 관계를 떠나서 세상에 갈등 없는 인간관계가 어디 있겠는가?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그런 건 관계라기보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중 한 명에 가깝다. 안타깝게도 친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연애의 종료를 알렸다. 헤어진 게 아니라 '종료'됐다고 말했다. 은은 불꽃은 활활 타올라보지도 못하고, 바람 앞에 한 번 흔들려보지 않은 채 소멸해 버린 것이다. 아마도 그들의 이별은 갈등을 외면한 대가였을지도 모른다.


연인 사이의 갈등은 주로 콩깍지가 벗겨지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그 시점을 화학적으로 해석하자면 도파민 분비가 줄어드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를 겪었던 연인들은 한 번쯤 해봤을 말이 있다. "넌 변했어." 사실은 변한 게 아니라 참고 있던 본심이 나온 것이다. 도파민이 꾹꾹 누르고 있던 본성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와 임계점을 뚫고 나온 순간 "쟨 왜 저럴까? 그건 아니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콩깍지가 벗겨졌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다 다만 텐션(긴장감)이 떨어졌을 뿐, 그리고 이런 현상은 사람이라면 무조건 겪는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다. 매우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20대 때 여러 번 이별을 경험했다. 모두 갈등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싸우고, 헤어지고, 사과하고, 재결합하고 또 싸우고...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연애 행위 자체가 지겨워진다. 애인을 향한 감정도 점점 사그라든다. 결국, 사랑이 완전히 소멸했다는 것을 직감한다. 진짜 이별을 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 시절 나는 연애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 하나 있었다. '연인 사이는 싸우(갈등을 겪으)면서 맞춰가는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싸움(갈등)의 정당성에만 매몰되어 있었지 싸우는 방법까지는 헤아려 보지 않았던 것 같다.


항상 갈등을 극복하지 못해서 헤어졌지만, 난 여전히 갈등 없는 관계는 사랑도 없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애증'이란 단어와는 별개다. 사랑과 미움이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미움을 배제한 사랑을 하기 위해 갈등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항상 어려운 것은 'What'이 아니라 'How'이다. 그래서 어떻게 갈등을 슬기롭게 극복할 것인가?


대부분의 갈등은 생각의 차이가 원인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 개개인은 모두 생각의 주체로써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갈등의 진짜 원인은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고수하는 고집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다르다'의 개념 자체가 없는 사람도 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은 틀린 생각으로 규정해 버린다. 이런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연애를 하면 안 된다. 상대방도 고달프게 만들지만 자신도 고달프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연애뿐만 아니라 회사, 취미활동, 가족, 친구 등 여러 관계에서 갈등만 일으키고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왕왕 마주한다. 갈등이 생기면 바로 로그아웃 할 수 있는 온라인 생활이 이런 사람들을 점점 양성시키는 게 아닌지 의문이다.


어릴 때 고집을 피우면 엄마한테 효자손으로 여기저기 맞았던 게 기억난다. 지금은 고집을 피워도 어느 누구도 발 벗고 나서서 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피해 갈 뿐이다. (사회생활이면 고립될 것이고 연인 사이라면 헤어질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이런 고집쟁이들을 겪으면서 설득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가 말한 설득의 3요소는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가 있다. 하지만, 연인 사이의 갈등 앞에 현자의 말씀 또한 소용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뻔한 얘기 같지만(뻔한 얘기는 뻔한 상황에 뻔한 결과가 예상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바꾸기보다, 즉 상대방의 고집을 꺾기보다 차라리 나 자신 스스로의 마음을 바꿔 먹는 게 한결 쉽고 편할 것이다. 


이미 사랑에 빠져버렸는데 애인이 고집을 부리거나, 내가 고집을 부리고 싶은 상황이 온다면, 다름이 주는 긍정적인 면을 찾도록 노력해 보자. 인스타에 본 인상적인 피드가 있다. 외향형과 내향형은 성향이 극명하게 갈리지만, 두 유형이 연애하면 오히려 궁합이 더 좋다는 것이다. 서로 고수하는 연애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번갈아가면서 다채로운 데이트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취미도 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을 섞는 게 좋다. 운동과 독서를 병행하면 몸과 마음 모두 정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만물은 한 가지에만 치우치면 반드시 결핍이 생기고 균형이 깨진다. 머지않아 부작용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내 생각만 고집하는 건 다른 생각과 시너지가 날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리는 것이다. 애인의 다른 생각을 선의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 서로의 다름을 즐기자. 연애가 주는 행복이 배 이상 커질 것이다.


갈등이 생겼다고 해서 연인 사이가 끝난 것은 아니다. 남녀 사이는 수많은 갈등을 극복해 나가면서 더 돈독해진다. 비 온 뒤에는 항상 땅이 굳는다. 척박한 환경에 자란 화초가 온실 속의 화초 보다 생명력이 강한 것은 자명한 일이다. 갈등이 생겼다면 오히려 더 돈독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고집을 부리기보다 다름을 인정하자. 나랑은 도저히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할 때만큼 쾌감이 밀려오는 순간도 없다. 그래서 다르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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