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마지막 학기, 과테말라행 항공권을 끊게 된 사연
주위 사람들이 물어봐요.
"스페인어 왜 배우는 거야?"
"그냥요. 재밌잖아요."
처음엔 그냥 남미가 가고 싶었어요. 뭔가 세계여행의 끝판왕을 정복한 느낌이 들 것 같았어요. 흔히 아는 플래시 게임 같은 데서 대왕 적을 무찌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요. 남미에 얽힌 아름다움과, 또 그에 반하는 역경을 겪은 사람들의 말에 귀가 기울여졌어요. 그런데 남미 여행을 위해서는 스페인어를 조금 공부하는 게 좋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남미를 향한 구체적인 날짜가 계획되어있는 상태도 아니지만 언젠간 갈 여행을 위해서요. 오죽하면 신혼여행으로 남미 일주를 하는 게 로망이라고 말하고 다녔겠어요? 내 젊은 날에 꼭 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소망이었죠.
스페인어는 당장 내 인생에 꼭 필요한 중요한 공부가 아니에요. 26세를 바라보는 2022년, 친구들은 취업 준비에 매진을 하고 있거나 사회의 신입생으로 치열하게 살고 있더라고요. 마찬가지로 졸업을 하고 커리어를 시작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어요. 당연히 스페인어를 전공하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지금 아니면 안 되겠더라고요. 또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것. 그만큼 제가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넓어지는 게 아닐까요? 당장 1,2년은 스스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 부러워도, 공백기라는 단어와 한바탕 싸움이 예상되더라도 말이에요.
몇 달간 친구와 같은 색을 사서 함께 스페인어를 공부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의무 없이 하는 공부는 우선순위에서 밀려 흐지부지 되기 십상이었죠. 완전한 새로운 언어를 스스로 공부한다는 것에 한계도 많이 느껴졌고요.
전 세계적인 전염병으로 계획했던 해외 인턴 활동이 무산되고 따분한 하루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이제는 종결만 기다리고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앞으로 일을 시작한다면 긴 시간을 내기도 힘들 것 같았고요. 여러 가지 기회가 상황과 환경 탓으로 포기하고 좌절되었지만 젊은 날 스스로의 의지로 만든 기회는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정말 배우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떠나기로 했어요. 스페인어를 쓰는 어딘가로요. 거기서 어학원도 다니고, 친구도 사귀고, 식당에서 스페인어로 주문도 해보는 거예요.
가장 먼저 떠올랐던 스페인 가려고 했어요. 모아두었던 예산으로 한 달 정도는 즐겁게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러나 막상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니 뭔가 아쉬웠어요. 한 달이라는 기간도,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발도장을 찍었던 나라라는 사실도, 새로운 대륙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욕망도요.
며칠간 새로운 장소를 탐색한 결과 과테말라 안티구아라는 도시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정보를 얻었어요. 과테말라는 중앙아메리카에 멕시코 밑에 있는 작은 나라예요. 특히나 안티구아는 우리에게 커피로 익숙하죠.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를 일주하는 여행자들이 그곳에서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이상 머물며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지나간다고 해요. 저는 카페인에 예민한 편이라서 커피를 즐기지 않아요. 혼자 남미를 일주할 자신도 없고요. 그냥 한국과의 거리만큼 현실에서 많이 동떨어져 있는 곳으로, 스페인어라는 하나의 목적만 가지고 가요. 현재 한국에서 직항 비행기도 없는, 평범한 대학생인 저에게 무척 생소한 곳으로요.
재미로 공부하면서 과테말라까지 가는 저의 여정, 참 기대되지 않아요? 누가 어떻게 알아요! 미래에 스페인어가 제 인생을 어떻게 바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