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두려움
나는 5세 아이를 키우는 아이 엄마이다. 나는 약 15개월 가량을 아이의 발달을 걱정하며 보냈다. 아이가 조금 느리다고 느꼈던건 30개월 즈음이었던 것 같다. 어린이집 같은 반 친구 엄마가 전해주는 '아이의 말'은 내 기준 1년 내지 1년 반 정도 빠른 언니오빠들의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당시 우리 아이의 말의 반 이상은 책이나 영상, 엄마 아빠 말을 그대로 따온 말이었고 아이만의 시각을 담은 말들은 잘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의 말을 듣게 됐다.
어머니, 전문가 상담을 받아보면 어떨까요?
나의 고민은 배가 됐다. 매일 밤 느린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 카페에 들어가 글을 읽었다. 자폐 스페트럼 진단을 받았다는 아이 부모의 지난 글들을 찾아보며 우리 아이와 닮은 점이 있는지 살폈다. 자폐 아동을 키우는 부모의 유튜브도 빠짐없이 봤다. 내가 찾아본 자폐의 정보에 아이가 조금이라도 유사한 행동을 하면 화가 나고 절망스러웠다.
전문가의 진단이 두려웠다.
혹여 나의 의심이 진짜이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자폐 진단을 잘한다는 연대 소아정신과 교수님은 약 1년 반에서 2년을 기다려야 했다. 자폐 발달 치료의 골든타임은 36개월이라던데 2년을 기다리면 아이는 그동안 어떤 교육을 시켜야 하나. 아득했다. 살펴보니 동네의 작은 소아정신과는 일주일 정도의 예약으로 갈 수 있다는 정보를 찾게 됐다. 예약을 했다 취소하기를 반복할 40개월 즈음 언어치료센터를 방문했다.
자폐가 아니었다.
언어치료 상담사는 긴 경력과 안목을 가진 원장님이셨다. 아이를 2시간 가량 살펴보시더니 10개월 가량 언어가 다소 지연된 상황이라 진단 내렸다. 언어/놀이 치료는 권하지 않았다. 안심이 되는 동시에 다른 전문가를 찾아봐야 하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됐다. 한편으로 내가 아이의 자폐를 진단해줄 의사를 찾아 다니는 건가 싶기도 했다.
아이가 자폐가 아니란 것을 확신한 건 이로부터 10개월이 지나서였다.
8월. 퇴사와 함께, 아이와 동생네가 있는 캐나다 여행을 계획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던 터라 여행 계획을 세울 힘이 나지 않았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곳만 찾아 토론토 근교를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은 두고 나, 엄마, 아이 이렇게 셋이 떠났다. 여행 목적이 아이의 경험이었기 때문에 철저히 아이의 취향과 컨디션에 따라 움직였다. 아이의 발걸음 속도에 맞춰 아침 산책을 하고 낮 수영을 한 뒤엔 돗자리에서 낮잠도 잤다. 저녁밥을 먹고 난 후엔 또 저녁 산책을 했다. 계단식 성장을 하는 아이의 성장시기가 우연히 맞춰졌었는지, 특별한 경험들이 아이를 성장 시켰는지는 미지수이지만 아이가 갑자기 훅- 자랐다.
그간 작은 머릿속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꺼내기 시작했고, 과거에 있었던 일들도 3형식의 간단한 문장이지만 자기만의 말들을 지어 말하기 시작했다.
안도했다. 그리고 기억한다.
아이가 자폐가 아니라는 점에 크게 안도했다. 그 동안 아닐거라고 이야기는 했지만 내심 불안했던 양가 조부모님도 안심했다. 모두가 안도하고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지난 20개월 간의 조바심과 염려를 기억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아이가 혹시 자폐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를 염려하는 엄마와 '자폐인 내 아이가 내가 떠난 뒤에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밤 지새우는 엄마들을 생각한다.(보통 엄마다. 느린 아이 카페에도 작성자들은 90%가 엄마였다.) 내가 구독해온 자폐 아동 유튜브를 기억한다.
장애 아이도 비장애 아이처럼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없을까
출생률이 최대 걱정인 나라에서 심심치 않게 노키즈 존을 찾을 수 있는 나라. 비장애 아동도 눈치를 받는 사회에서 때때로 예기치 않은 돌발 행동을 하는 장애 아동이 함께 공존할 수 있을까? 답은 무조건 '있다'여야 한다. 우리 어른들이 책임 의식을 갖고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내 아이가 자폐가 아니라 다행이다.'에서 그치지 않고, 장애를 가진 아이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어른들의 목표가 되었으면 한다.